연극은 끝이 났습니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서 우리랑 함께 배우고 놀고 자란 9학년 친구들이 매듭을 짓고 떠나는 날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작업으로 연극을 만들고 상연하던 일도 벌써 두 해째입니다. 한 해의 배움을 마무리하는 일답게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리는 일은 배움터의 모든 식구들이 함께 어울리는 일이었습니다. 크게 스텝과 연기, 그리고 몇 달 전부터 마무리 배움으로 연극을 고민하던 일로 나눠서 어울렸습니다. 우리의 배움은 모두가, 모든 일이 어울리고 끼워맞출 수 있었기에 올해가 저물어 갈 때 비로소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 빛날 수 있었습니다. 연극은 끝이 났고 아이들과 부모들은 집으로 혹은 작은집으로 돌아갔고 9학년은 에세이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 남았습니다. 객석과 무대가 따로 없이 내뿜던 도서관의 열기는 활짝 열어젖힌 유리창을 넘어서 맑고 청량한 겨울날 밤하늘로 높이 올라갔습니다.
바보 이반의 나라에서는
손과 등으로 일하지요.
모두 괜찮아!
그렇게 하세요.
바보 이반은 헤헤!
스스로 일해서 먹고 남으면 나누고 돈이 필요 없어요.
바보 이반의 나라에선 모두 괜찮아. 헤헤!
머리로 일하는 거보다 손과 등으로 일하는 우린
함께 어울려 노는 이반의 사랑어린사람들!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민들레을 따라서 노래 <이반의 나라>를 배웁니다. 함께 노래하고 율동을 하며 연극을 기다립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민담을 모아서 아이들과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다시 썼습니다. <바보 이반의 이야기>는 그 중 한 편입니다. 우리는 9월이 시작되고 가을바람이 서서히 불어 올 때 도서관에 둘러 앉았습니다. 우리는 올해를 마무리하는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특별하게 그려진 그림은 없었으며 우리는 다만, 모여서 이야기 해보면 뭔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연극이라는 것이 여러 인간 군상이 모여 함께 어울리는 일이고 그 안에 치유가 있을 것이며 그 기운을 받아보자고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바보 이반의 이야기>를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매주 수요일에 만나서 이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반 안에 들어있는 나와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이반을 이야기했습니다. 10월이 오기 전에 대본 초고 만들고 역할을 정해 읽었습니다. 한 편의 연극이 아닌 짧은 단막극 등 형식에 대해서 열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극이나 대본에 집중하기보다는 원작을 100번은 읽어서 원작에 대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보자는 데에 마음을 함께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11월까지 만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인 장면을 대본으로 만들어 연극을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반의 사랑과 이반의 헌신과 용기 등에 대해 그리고 이번 연극을 통해서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이반을 만나보자는 데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초고와 장면별 대본을 엮어서 완성본을 만들었습니다. 11월 중순 연극선생님께서 공연을 마치고 오셨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서 함께 돌려 읽었습니다. 연극선생님께서 사랑어린배움터의 연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극단을 운영하며 느끼는 어려움 같은 것에 대해 그리고 연극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연극의 본질은 서로 어울리며 노는 것인데, 이것은 연습을 통해서 찾고 즐기는 것이며 이러한 모습은 자신에게도 힘이 된다고도 하셨답니다. 연극선생님의 합류로 본격적인 연극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들 중에 연기를 하고 싶은 친구들을 모으고 스텝 분야도 나누었습니다.
연기팀 아이들은 연습을 통해서 배역이 바뀌기도 하고,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배우로 연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을 내놓고 그와 만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 앞에 벽이 쏟구치고 장막이 쳐진다고 합니다. 자기에게 다가오는 벽을 넘어서야하고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그와 만날 수 있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어렵게 넘어서고 걷어내면 또 다른 벽과 장막이 다가온다고도 합니다. 눈물을 쏟는 것은 그 벽과 장막을 떠내려보내기 위한 거대한 강물의 발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눈물을 바라보던 연극선생님과 어른들이 함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스텝을 맡은 친구들은 어른들과 함께 대본을 읽고 필요한 소품이며 의상, 무대 장치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직접 만들었습니다. 가위로 오리고 색칠하고 바느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연기팀의 연습 과정을 함께 지켜봤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소품, 의상이 어떻게 쓰이는지, 연기 중에 맞지 않다면 직접 보면서 그렇겠구나, 하고 교실로 돌아와 다시 만들었습니다. 대본을 통해서 그려진 소품과 의상 같은 것들을 만들고 배우들이 사용하는 걸 보며 어떻게 하면 더 적합할지 고민했습니다. 때론 연기팀은 따뜻한 도서관에서 연습하고 소품팀은 추위에 떤다며 투덜대기도 했지만 연기팀의 어려움 또한 알기에 연습을 보며 힘껏 박수를 쳐주었답니다. 그리고 장면에 맞는 음악을 연주하고, 무대 위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는 조명을 설치하고 조정하는 일, 도서관을 연극극장으로 만드는 일, 연습 과정을 지켜보며 기록을 하는 일들까지 하나둘 공연일을 향해 준비해 나갔습니다. 이제 객석에 관객이 들어오고,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고, 조명이 켜질 때 배우들은 그동안 연습했던 첫 대사를 긴장 속에서 내뱉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바보 이반>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연극은 끝이 났습니다. 무대와 객석은 깨끗하게 정리되었고 이런저런 장비와 소품은 치워졌습니다. 아이들은 여느때처럼 도서관을 뛰어다니고, 9학년은 컴퓨터랑 씨름을 하고 있고, 어른들은 모임에 따라서 둘러 앉기도 하고, 풍경소리방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는 싱크대 주변을 기웃거립니다. 뭔가 먹을 거라도 있나 하고... 사진을 정리하며 연극의 흐름에 따라서 줄거리와 함께 할까 하다가 그냥 두고 사진만 보기로 합니다.
연극은 끝이 났고 준비 과정에서 있었던 일, 그때 그 배우의 손짓과 대사 같은 것들은 그런 게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린 연극을 준비했던 걸까, 공연을 한 것이었을까 먼 옛날 일처럼 아련합니다. 연극의 끝과 함께 모든 게 사라져버린 듯 싶습니다. 다만, 우리는 살며시 생각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그 무대 위에서 이반을 만났을까요? 연습과 준비 과정에서 우리는 이반을 만났을까요? 지금, 우리 안에 누구라도 이반이 있을까요? 하지만 뭐 어때요. 없으면 없는 대로 괜찮겠지요? 우리는 또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