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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몇 장

봄 맞으러 가야지 여수 오동도에 동백꽃은 피었을까, 은하수가 말했다. 이제 겨울은 막바지인지 하루가 다르게 해는 서서히 길어지고, 햇살은 포근하고, 바람은 따스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길목에 동백은 꽃을 피울 텐데, 꽃이 지기 시작하면 가차 없을 텐데. 조바심이었을까. 몇 년 전에 구빈이랑 셋이서 오동도 동백숲을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동도 동백꽃이 보고 싶었나 보다. 지금쯤 피었을 거 같은데, 갈까? 이번 주말에 일도 없는데, 했다. 주말에는 주중에 해결하지 못 한 일을 처리한다. 대체로 토요일 오전이나 오후 한나절이면 해결되기도 하지만 온종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 봐야 한 달에 두어 번이긴 하다. 이런 일이 없을 때나 일요일에는 은하수랑 돌아다닌다. 절집 구경을 하며 숲길을 걷거나, 쇼핑몰에 가서 하릴없.. 더보기
상처와 분노, 고통에서 해방 되는 길 아이, 봐서 머헐 것이냐. 송아지 둠벙 쳐다보기당께. 그때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더라면 뭐가 달라져도 달라졌을까.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시간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니 알 수 없는 일이며, 알 수 없는 일은 알 수 없는 대로 가만히 흘러간다. 다만, 기어코 알아야겠다며 악다구니를 쓰니 상처로 시작해서 분노 속에서 헤매다가 고통에 매여 사는 일이 어디 이것뿐일까. 그가 할머니 말을 되새긴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는 때때로 할머니 음성을 들었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다. 아이, 머시기야. 냅둬불어라. 그것이 송아지 둠벙 쳐다보기당께 자꼬 그랬싼다이. 그럴 때마다 그는 그래, 송아지가 둠벙을 쳐다보며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수면 아래 붕어를 잡을 수 있을까, 우렁이를 건질 수 있을까, 그저 수면에 비친 자기.. 더보기
그가 죽었다 두더지의 부음을 보리밥으로부터 들었을 때 당황스러웠습니다. 살아있는 죽음의 장례식이라니. 부음을 전하면서 보리밥은, 그의 죽음은 대사일번大死一番 절후소생絶後蘇生을 위함이며, 죽음에 따른 장례 절차를 3일에 걸쳐서 치른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대사일번 절후소생이 무엇인가요? 크게 한 번 죽어야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 진리의 깨달음, 스승으로부터 깨달음에 이르러 지난날의 자신을 버리고 새롭게 산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니 대사일번은 죽음에 대한 은유일 텐데, 실제로 장례 절차를 진행한다니, 또는 그 3일에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따위에 당황스러웠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보리밥은 부음과 장례 절차를 전하며 나도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 마음이 생길지 지켜볼 뿐 잘 모르겠다,며 우리는 각자 자신.. 더보기
연극은 끝났다 연극이 끝났습니다. 연극이 끝난 뒤 9학년 친구들은 매듭을 짓고 떠났습니다. 9학년 친구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서 다시 떠나며 새로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연극은 또 다른 이야기로 무대에 오를 것입니다. 끝난 것은 끝난 것이고, 끝난 것은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날에 매듭을 짓고 길을 떠나는 여리고 작은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일은 슬픕니다. 아이가 느끼는 들뜸과 설렘, 걱정과 불안에 더하여 격려와 토닥임이 먼저일 테지만 슬픕니다. 연극이 끝나고 모두가 떠난 뒤 소품이 정리된 텅 빈 무대를 보는 일도 그렇습니다. 끝난 연극을 그대로 다시 할 수 없는 노릇이고, 매듭을 짓고 떠난 아이에게 매듭을 풀라고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지금은 다만, 다 끝난 일은 다 끝난 일이니, .. 더보기
몽하리 사람들 경주 역사 기행 몽하리 소식지 창간준비1호가 나온 2020년 12월 어느 날 송년회를 겸해서 소식지를 돌려봤다. 이 자리에서 누군가 여행이든 기행이든 몽하리 사람들이 함께 떠나자고 했고, 사람들은 좋아라, 했다. 기왕이면 역사 기행이면 좋겠다고 했고, 후마가 중심이 되어 준비하기로 했고, 2021년 4월쯤을 목표로 했다. 그렇지만 여러 문제로 미뤄지다가 드디어 2022년 10월 한글날 연휴에 2박 3일 일정으로 경주역사기행을 다녀왔다. 역사기행에 대해 생각하고 말이 나온 지 근 2년 만이었다. 언제나 여행은 설레는 일이다. 출발 전날 몽하리 사람들 카톡방이 시끌벅적했다. 오랜만에 여러 가족이 떠나는 여행이라 긴장된다고 했더니 후마가 맴 단디 잡수이소~, 했다. 누구는 숯을, 누구는 불판을, 또 누구는 캠핑용 의자며 텐트.. 더보기
9월 이별꽃스콜레 박필수 선생님 어느 날인가 나는 어젯밤에 당신 꿈을 꾸었어요,하며 꿈 이야기를 당신에게 말했어요. 당신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했어요. 그리고 당신은 몇 모금 남지 않은 커피잔을 쥔 내 손등을 쓰다듬으며 꿈은 반대라고 하잖아요,라고 말했어요. 그 말을 할 때 당신 눈동자는 커피보다 진해 보였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처럼 깊어 보였어요. 걱정 말아요, 꿈은 반대라니까,라고 다시 말하면서 당신이 환한 미소를 지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조바심이 일어나는 걸 느꼈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래요, 꿈은 반대라니까,하며 조바심을 살며시 밀어 넣었어요. 짙은 안개에 휩싸여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어서 우두커니 서 있었어요. 그러다 불현듯 햇살이 내리쬐고 안개가 걷히고 사방이 환해졌지만 당신은 내 곁에 없었어요. 조금 전까지 .. 더보기
이별꽃스콜레_한돌쌤 이별이라는 아픔 안에 숨어 있는 사랑, 연민 그리고 죽음이라는 슬픔 속에 감춰진 평화로움, 고요 등 삶의 깊은 지혜를 이야기 하는 마당이며, 모든 이들이 이별, 이혼, 죽음 이런 것들이 결코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만 아니라 다르게, 새롭게, 깊게 봄으로써 고통에서 피어나는 한송이 꽃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 라고 합니다. 지난번 8월 다섯 번째 는 9월 2일, 순천판에서 한돌 선생님을 이야기 손님으로 모시고 함께했습니다. 이제 이번주 금요일, 9월 30일 저녁 굿하는 사람, 박필수 선생님을 모시고 여섯 번째 이별꽃을 피웁니다.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는 다섯 번째 마당을 한돌 선생님 말씀을 살짝 곁들여서 다시 보고 여섯 번째 마당을 준비합니다. 한돌 선생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하시는 게 너.. 더보기
<살맛 나네요> 농부 박승호, 김은종 7월 22일, 여름날의 태양이 제 할 일을 다하고 서쪽 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여름날의 태양은 서서히 사위어 가며 서쪽 하늘을 불태울 준비를 하고, 사람들은 뜨거운 여름날 하루를 살아낸 뒤 자기 안에 담긴 삶의 조각을 나누기 위해 둘러 앉습니다. 순천판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모을 때 여름날의 매미도 따라서 노래합니다. 오랜만에 순천판이 아이들과 어른들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살맛 나는 이야기를 하고, 듣습니다. 는 보리밥이 계당마을 이장인 박승호 님과 낙안 금산마을 김은종 님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고, 바람빛이 편집하여 만든 책입니다. 두 분은 몇날 며칠 동안 근 20여 시간에 걸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두 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