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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모 하나 몽하리사람들 백제를 만나다 그믐밤 자시(子時)에 별이 총총했다. 상관은 다급하게 석부리를 찾았다. 석부리가 상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때까지 한식경이 온밤이라도 되는 양 더디게 갔다. 상관은, 여전히 잠결인지 조막손으로 눈두덩을 비비며 휘적거리는 석부리를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다그쳤다. 왕께서 침소에 아니 계신다. 그런디요? 석부리가 하품을 하며 상관을 빤히 쳐다봤다. 네 이놈. 갑자기 높아진 목청에 스스로 놀란 상관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석부리의 귓불을 틀어쥐고 추켜올리며 주위를 살핀 뒤 귀에 대고 나지막이 엄포를 놨다. 이놈아, 정녕 니가 명을 다하고 싶지 않은 것이냐? 숨도 쉬지 말고 이 길로 별궁으로 가서 왕의 그림자를 찾아라. 아아, 아파요. 석부리가 버둥거렸다. 이놈이 그래도. 상관이 손에 힘을 줘 다시 한번 틀어쥐고.. 더보기
  • 사진 한 장 몽하리 라이딩 볕이 좋은 날에 아이들이 뭉쳤습니다. 관율이는 얀을 자전거에 태우고 라율이는 킥보드를 타고 라이딩에 나섰습니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타지 못했던 자전거와 킥보드를 얀이네 집 마당에서 마음껏 탔습니다. 바퀴에 바람도 든든히 넣고 지칠 때까지 신나게 달렸습니다. 킥보드로 유유자적하는 라율이, 힘껏 페달을 밟는 관율이와 뒤에서 살짝 겁먹은 듯 안장을 꽉 잡은 얀에게 봄날 따스한 햇볕이 쏟아졌습니다. 관율이는 이제 형이 되었습니다. 형으로서 역할에 충실하느라 동생 얀을 챙기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얀은 관율이 형을 롤모델로 따릅니다. 아이들은 킥보드와 자전거를 사이좋게 바꾸어 타며 라이딩을 즐겼습니다. 계절은 제 갈 길을 향하여 느리거나 빠르게 달려가는 것으로 제 할 일을 하고, 몽하리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노.. 더보기
  • 메모 하나 봄이 온다 아직 일렀나 보다. 동백나무가 뒤덮고 있는 섬에 붉디붉은 동백꽃은 피지 않았고 그러니만큼 툭, 떨어져서 꽃 천지를 이루지도 않았지만,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는 듯이 늘어선 사람들은 저마다 동백나무 앞에 서서 스마트폰을 높이 들었다. 동백꽃 이파리는 아직 펴지지 않았고 꽃망울만 제각각 매달려 있었다. 연둣빛 동백나무 이파리만 마지막일지도 모를 겨울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살짝 봄을 묻힌 바람에 스스럼없이 살랑거렸다. 오늘은 강진 쪽으로 갈까? 일요일 아침 일찍 동네를 한 바퀴 달리고 현관문을 열면서 말했다. 지난주에 우리가 너무 빨리 갔을까? 아니면 올해는 좀 늦나? 어젯밤에 늦게까지 영화를 보면서 봄맞이 동백꽃 구경을 하러 가자고 이야기했다. 몇 해 전 구빈이랑 다 같이 가고 나서 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