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매듭을 짓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한 매듭을 단단히 지은 후 다시 새로운 매듭을 짓고 묶으러 길을 나서는 일은 어떤 걸까요? 살아가면서 매듭 짓는 일은 어떤 일일까? 아, 여기까지가 내 삶의 한 매듭이야! 이렇게 자기 삶의 어느 길에서 매듭 지을 때를 알고, 다시 떠나야 할 때라는 걸 한번이라도 생각해본적이라도 있었을까? 지금까지도 이런 어른스러운(?) 생각보다는 커가는 아이들을 넋놓고 바라보기가 일쑤이며 지나간 시간의 빠름에 경탄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차가운 북국의 칼바람과 함께 어김없이 찾아오는 매듭 짓는 날에 어김없이 찾아드는 마음입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대견하고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떠나는 언니, 오빠들을 위한 편지에서 얘기해주었습니다. 언니, 오빠들이 떠난 학교의 기둥보다는 '참사람'이 되겠다고 하고, 이것을 위해 마음을 모아주고 또 모아달라고 합니다. 살아가면서 모르는 일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합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예승이, 히히히히 잘 웃는 상아, 얌전하고 착한 보민이, 자신감 넘치는 정민이, 마음이 넓은 효안이, 상냥하고 키가 큰 소성이, 뭐든지 도전하는 시형이. 오늘 매듭을 짓고 자신의 길을 찾아서 다시 떠나는 일곱 명의 친구들을 향하여 온 마음을 모읍니다. 오롯하게 자기 삶의 한 매듭을 지을 수 있기를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잘 찾아서 가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 담아서 리코더를 불고 노래를 부릅니다. 동생들의 그 작고 팔딱거리는 가슴, 오밀조밀한 입과 올망졸망한 손으로 매듭 짓고 떠나는 날에 사랑어린 친구에게 마음을 전합니다.
정민이, 예승이, 보민이가 새로운 길을 찾아서 떠납니다.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던 평화학교에서부터 오늘에 이르렀던, 이 친구들의 1년 선배를 포함해서 이른바 1세대군에 속한 아이들입니다. 엄마와 아빠들은 그 시기를 교사로, 학부모로 아이들만 바라보며 아이들에게서 답을 찾으며 묵묵히 걸어오신 분들입니다. 그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많은 생각과 말들이 오늘 차오르는 가슴 벅참으로 인해 말로 토해지지 않습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다만, 마음으로 그런갑다, 아 그랬을 거야, 합니다.
가슴에 불덩이 하나 담고 있을 것 같은 소성이, 항상 밝고 명랑하지만 너무나도 여린 마음을 가진 상아, 강원도 원주의 학교를 옆 동네 찾아다니듯 다녔던 대견한 주연이, 뭐라 딱히 얘기할 수 없는 또는 표현되어지지 않는 그러면서 모든 걸 담고 있을 것 같은 효안이 이런 우리 아이들 소성이, 상아, 주연, 효안이가 길을 찾아서 떠납니다. 7학년을 새롭게 시작한 친구, 돌아왔지만 다시 함께 머물렀던 친구 모두가 이제 이곳에서 자기 삶의 한 매듭을 짓고 자기 길을 찾아서 떠납니다.
부모와 자식으로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자기를 찾아가는 길이었던 지난날을 이렇게 매듭 짓습니다. 그들이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 사람들은 조용히 마주보며 때로는 울먹이고 때로는 살짝 혹은 크게 웃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공부했던 송인효선생님이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대할 때 씩씩하게 도전하고 아이들을 끌고 다니던 시형이가 자기 길을 찾아서 떠납니다. 우리 친구들 여덟 명이 길을 나섭니다. 그들이 가는 길에 오늘 지은 이 매듭이 든든한 버팀이 되어서 길에서 길을 물을 때 길을 찾는 데에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바람과 마음을 모았습니다. 동생들의 한 땀 한 땀 바느질에서 어른들의 정성이 가득한 마음새김이 있는 글씨까지, 한 장 한 장 사진을 담았던 손길에서 밥을 모시는 마음을 담은 공양간의 발우까지 그리고 묵묵히 우리 친구들을 바라봐주는 사랑어린 사람들의 마음을 배움터 구석구석에서 그리고 배움터 바깥에서 모두의 마음을 담습니다.
길을 떠나는 친구들을 위해 발을 씻기고 젖은 발을 닦습니다. 어른들은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서 나릅니다. 발을 맡긴 아이들은 쑥스러워서 고개 숙이거나 간지러워서 웃거나 씻기는 손길을 가만히 내려보거나 합니다. 발가락 사이에 낀 먼지가 세수대야에 떠다닙니다. 깨끗하게 잘 마른 수건으로 구석구석을 닦아줍니다. 어른들은 자신의 친구들을 가슴에 품고 노래를 부릅니다. 이제 아이들은 그 발로 땅을 딛고 길을 나섭니다.
잘 가라 정들었던 친구야
천천히 한걸음씩 걸어라
힘들 땐 쉬어가며 가거라
저 별에서 우리 만날 때까지
가끔 뒤돌아보렴
널 위해 두 손 모으는
우리가 언제나 거기에 있으니
이제 모두 함께, 매듭 짓고 떠나는 날 사랑어린 친구에게 바치는 노래로 마음을 모읍니다. 떠나고 떠나 보내는 일은 이미 가슴 먹먹한 일입니다. 그 일이 우리 아이들, 우리 친구들의 일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살짝 콧물 훌쩍거리기로 해요. 그리고 즐겁고 기쁘게 이 시간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떠날 때가 올 것을 미리 알고 늘 오늘 하루를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길을 찾아 떠나는 친구들이 자신의 길을 잘 찾을 거라는 믿음은 오늘 하루를 그들과 온전하게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 우리 기쁘게 재밌게 이 시간을 즐기기로 해요!
가족과 친구들과 유쾌하게 오늘을 기억 속에 남깁니다. 조금은 시무룩해져도 조금은 서운해도 오늘 매듭 하나 기억 속에 담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단단하게 매듭을 만들어 담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하나하나 매듭을 지어가며 자기 삶을 살고 자신의 길을 찾아서 갈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많은 날들 중에 하루를 살았습니다. 또다른 매듭 하나를 위해서...
이제 아이들은 그동안 살아왔던 하루하루를 제 몸보다 커보이는 배낭에 차곡차곡 담아서 어깨에 짊어지고 운동장을 나섭니다. 머리가 닿을 것 같은 배낭을 어깨에 짊어져도 발걸음은 가벼워 보입니다. 저만큼 가고 있을 친구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저 어깨가 무거워보이지만은 않는 것은 길을 나서는 지금 어깨가 어제의 그것보다는 조금은 더 넓어졌겠지 하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간 운동장에 늦은 오후의 겨울바람이 지나갑니다. 눈이 내릴 것만 같이 날은 흐리고 겨울해는 빨리 저기 와온바다를 건너갑니다. 몇몇이 남아서 도서관 청소를 하고 몇몇은 아이들을 떠나보내기가 아쉬운지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집니다. 오늘 아이들과 부모들은 매듭을 짓고 길을 찾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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