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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몇 장

겨울 산길을 걷다.



산에 가는 것은 즐겁다. 혼자서 무거운 배낭을 걸머지고 걷는 산행은 즐겁다. 나 혼자여서 가볍다. 전혀 아무도 동행하지 않고 묵묵히 걸을 때면 즐거움이 배가 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발 아래만 보거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멀리로 시선을 아무 때고 줄 수 있어서 즐겁다. 물론 예기치 않는 난관이 생길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할 수 있어서 즐겁기도 하거니와 산 속 모두와 또한 속엣말을 나누는 시도를 할 때면 되지도 않는 치기라며 날 힐난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해서 더욱 즐거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때면 또한 산에 가는 게 쓸쓸하다. 지금껏 늘 그래왔지만 나와의 소통도, 산 속 어떤 것과의 만남도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쓸쓸하다. 그 쓸쓸함이 즐거움이다. 쓸쓸함, 외로움이 땀과 함께 볼을 타고 흐를 때 난 즐겁다. 땀으로 등이 흥건하게 젖어오면 즐거워진다.

 

 

눈이 없는 겨울산은 쓸쓸하다. 제 안에 모든 걸 품는다. 메마른 나무는 황량하다. 푸석푸석한 풀숲은 처량하고 서글프다. 소복히 쌓인 눈은 겨울산에게는 더 없는 즐거움일 터! 하지만 한겨울의 백운산엔 눈이 없다. 오늘은 바람도 없다. 다만, 저 멀리 높은 산엔 기미가 보인다.

산 위엔 천천히 하얀 눈을 바람에 태워 날려 보내줄 구름으로 뿌옇다. 하지만 이렇게 산 아래에는 넓은 자락만큼이나 쓸쓸함이 뭉텅이로 스며든다. 이제 곧 즐거운 친구가 산 길 어느 곳이든, 골짜기 하나 빠진 곳 없이 찾아오겠지, 새하얗게.

 

 

 

 

산길을 걷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여럿이 함께라면 더욱 좋다.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일이란! 작은 눈송이도 따라서 나풀거리기 시작한다. 눈송이는 당연하겠지만, 여럿이다. 제법 걸었으나 서글프고 황량한 겨울산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그런 겨울산에서 앞서 가는 일행을 뒤쫓는 일은 나만이 간직하고 음미하는 쓸쓸한 즐거움이다. 이제 새하얗고 너무나도 작은 눈송이가 나풀거리기 시작한다.

 

 

 

  

 

힘 없이 잎사귀를 떨구고 있던 산 대나무 잎에 소리없이 와서 앉는다. 나도 아무런 소리없이 산 속으로 스며들어야 하겠지? 그러면 쓸쓸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그런 나만의 산행과 자연스레 조우할 수 있을테고. 또 다른 한 편으론 앞선 이들을 찾아 종종 걸음으로 뒤따른다. 

 

  

 

 

이제 산에게도 즐거움이 찾아온다. 작은 눈송이도 여럿이 함께 찾아오다가 혹여는 큰 함박눈이 되어 날아 다닌다. 바위와 나무는, 메마른 산길과 풀잎은 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그 속에서 우리도 어우러지면 사람들도 자연의 한 부분인 게 오롯이 드러난다. 그리고 우린 감흥에 젖는다. 강아지처럼.

 

 

 

  

 

바람이 스치고 지나는 그곳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이제 오늘만은 우리도 스쳐간다. 얼마남지 않은 정상은 더욱 더 새하얀 빛을 머금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산에 가는 건 즐겁다. 더우기 이렇게 여럿이 가는 것은 더 즐거운 일이다. 새하얀 눈길에서 내 친구의 발자국을 따라서 밟을 수 있어서 즐겁다. 함께 하는 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우린 아직 낯설다. 나 혼자만이 쓸쓸하며 즐거웠기 때문이리라. 나 혼자만이 그들의 발자국을 밟았기 때문일 테고.  함께 쓸쓸한 즐거움을 갖고 서로의 발자국을 꾹꾹 눌러 서로를 확인해주며 걸어야 정겨워지는 건 분명한 일이다. 그래서 지표석도 낯선 듯 멀찍이서 서 있다.

얼음길을 아이젠 없이 걸었고 바위를 올라 정상에 다다랐다. 위험하고 무분별한 일임이 틀림없다. 눈 쌓이고 얼어 있는 바위와 산길을 아이젠도 없이 지났다.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아직 낯설기 때문이다. 그런 땐 아이젠을 꺼내 놓는 게 맞다! 산에서 그것도 정상에서 부상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당사자이건 일행이건 간에. 

 



우리가 낯설은 건 소통의 부재에서 온다. 사진을 찍을 때면 더 많이 알 수 있다. 내가 먼저 낯설다. 렌즈의 방향을 가늠하기가 힘들다. 좋은 사진은 대상에 밀착하고 접근해서 그를 잘 알 수 있을 때 나온다고 했었다. 그러한 경우가 다반사였으면 좋았겠으나 아직은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와 같은 미물엔 없겠지만. 서로가 통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카메라가 방향을 찾아가게 되고 또한 나를 향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낯설 땐 어떻게 해야 하나? 크로핑이다. 이럴 때 써라는 건 아니긴 하지만.....

 

  

 

 

 

낯설은 건 어색한, 어떤 분위기고 뉘앙스다. 설명하기 어렵고 알 수 없다. 그럴 때면 쓸쓸하다. 그것마저도 즐거움으로 변환되어 받아들인다! 라고 한다면 궤변이다 못해 퀘변이란 걸 안다. 알아서 더 쓸쓸하다. 즐거움으로 치환되어 다가오는 건 열심히 혹은 느긋하게 무리를 뒤쫓는 나를 발견할 때 알아낼 수 있다.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것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어렵다. 간혹 얼음길이 있으며 바위는 눈을 품고 있기도 하고 그들 산만이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을 호젓하게 누리고 있는데 우리가 방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니 그렇다. 흰 눈 속에서 잎사귀는 더욱 푸르다. 외따로거나 함께 어우러질 때, 모두 쓸쓸하거나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이 있으니 잎사귀는 푸르러지고 쌓인 눈은 더 새하얗다.

뜨거운 물 한 잔, 차가운 소주 한 잔 그리고 살아 꿈틀대는 낙지의 잘린 다리들과 같은 매개가 있을 때 눈이 뒤덮고 있는 산 속 정경에 우리가 들어 맞아 간다. 또 너나 없이 차가운 바람에 시린 손을 부빌 때 들어 맞는다. 어울림이 멀리 있지 않고 낯설음이 가까이 있지 않다. 대상은 부유하지 않고 카메라는 고정되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는 일은 좋다. 나의 뒤를 돌아다 보는 내가 대견하고 나의 앞을 살펴주는 니가 있어 아늑하다. 뒤를 돌아보는 일은 힘들다. 눈이 앞에 있으니까. 그런 행위가 우리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와 같은 과장되고 증폭된 사고의 틀로써 바라보는 시간의 개념으로 해석되지 않더라도 혹은 그렇다 하더라도, 돌아 보는 건 매양 힘들다. 그러니 뒤돌아 봐주는 것, 뒤돌아 보는 것은 좋다.

 

 

 



 

이젠 내려가는 길이다. 내려가는 길에 뒤돌아 볼 수 있어서, 그렇게 되어서 다행이고 좋다. 내려갈 때가 더 힘들고 위험하다고 하는 만큼 그럴 수 있게 되어서 좋다. 조금은 웃을 수 있겠고 사진은 그걸 담을 수 있겠다. 아주 조금만일지라도 말이다. 살짝 미소 지을 때 카메라는 이리 저리로 방향 전환이 자유롭다.

마음이 열리면 몸이 다가서는가, 몸을 가까이 하면 마음이 움직이는가? 그걸 모르겠으면 주위를 둘러봐야 하나? U2의 보노 목소리가 애잔하다. A vampire or a victim, It depends on who's around. 쓸쓸함에서 오는 즐거움은 이런 것 인지도 모르겠다. Stay..... Faraway, so close!

 

 

 

너른 자락으로 내려 서면 편안하다. 쓸쓸함도, 즐거움도 되새김으로만 남는다. 마침내는 다시금 나의 생활로 돌아온다. 진한 되새김으로 향기롭다. 사람이 산에 동화되면 다행이고, 일행이 동행이 되면 더욱 다행이다. 그럴 수 있다면 산 길을 걸었던 때가 향기로와진다. 다음을 기약하기도 쉽다. 쉬운 일은 마음이 편하다.

 

  



 

산 아래 큰 나무는 제 몸으로 감싸 안는다. 누구라도 무엇이든. 우린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말로 그걸 본다. 저 큰 나무를 닮고 싶어! 하지만 누군들 그렇게 살고 있을까? 단 몇 시간이지만 올랐던 길을 뒤로 하고 완연하게 내려온 게 보인다. 단 몇 분이지만 굳어져버린 의미를 또 불러온다. 큰 나무인 것처럼! 단 몇 초만에 몇 시간 전의 나로 되돌아 온다고 하더라도.

산은 늘 그 자리에 있고, 나는 늘 움직인다. 눈과 바람은 산을 스치고 지나가고 또 머문다. 쓸쓸한 즐거움은 나를 흔들기도 하고 내 안에 똬리를 틀기도 한다. 산은 흔들리지 않고 나는 흔들린다. 나무는 흔들리나 자리를 지키고 난 흔들리다 이탈한다. 밤은 깊어 가고 눈발은 그친지 오래, 백운산에 쌓여 있을 새하얀 눈이 다시금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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