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어떤 등반가는 이런 말을 했다.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세가지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첫번째는 가족을 두고 떠날 수 있는 용기, 두번째는 산에 대한 두려움없이 오를 수 있는 용기, 마지막으로는 다시 현실로, 사회로 돌아오는 용기가 있어야만 산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누가 그랬는지는 기억에 없다.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족과 함께든, 혼자 떠나는 여행이든지 간에 출발하고 되돌아 오기까지 걸리적거리는 많은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를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서....... 일상의 무료함 또는 변화없이 하루하루 돌아가는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꿈을 꾸지만 실행에 옮기기엔 부담스럽고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다.
그러니만큼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 떠나고 돌아와서 열심히 사는 거야!' 이렇게 마음 먹고 다짐도 해보지만 쉬운 일이 아니기는 아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언제 그런 다짐을 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리고 다시 일상의 반복과 권태로움에 어기적 댄다. 그래도 뭔가 내게 도움은 됐겠지라고 자위하기는 해보지만!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사실 이번 주에 결혼 기념일도 끼어 있고 해서 이벤트를 만들었다. 셋만 떠나는 가족 여행으로. 사전에 콘도, 렌트카, 비행기를 예약하고 인터넷을 뒤져 일정을 짜고 파워포인트로 계획안을 20페이지에 걸쳐서 만들고 만 원을 들여 칼라로 출력까지 해서 들고 갔다. 아이가 보고만 지나치지 않게 탐방지에 대한 문제도 만들어서 넣고는 숙소에 돌아와서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풀기도 했다.
아이 위주로 탐방지를 짤 수 밖에 없으니 우리가 보기엔 별반 아닌 듯 해도 아이는 신기하고 재밌는 게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행이긴 하지만. 특히나 테디베어뮤지움은 그야말로 지 세상은 된다는 듯 좋아했다. 하는 말이 "아빠, 나 여기 있는 테디베어 다~ 갖고 싶어!" 였다.
살아가면서 다 갖고 싶고, 다 하고 싶은 일, 다~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다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몇일까? "다 갖고 싶은 니 마음은 알겠는데 그럼 우린 돈 없어서 굶을지도 몰라~ 그니까 니가 진짜로 갖고 싶은 것 딱 하나만 골라봐~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건 하나만 있어야지 그걸 사랑하고 돌보고 보살피는데 니 마음 모두를 다 할 수 있잖아. 엄마, 아빠도 니 하나만을 위해서 온 정성을 쏟듯이....."
크긴 컸는지 어느 정도 수긍을 한다. "알았어!" 하고는 거의 한 시간은 들었다 놨다를 하길래 타협하듯 두 갤 사줬다. 돌아와서까지 안고 재우고 한다. 여자아이는 여자아이인 모양이다. 테디베어하고 대화를 한다, 아주!
그러고도 모잘라 밖에 있는 테디베어 동상들을 안고 같이 놀고..... 진짜 곰 모양을 한 동상군을 가리키며 저게 테디베어의 진짜 모습이라니까 아니라며 기겁을 한다.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에 대한 무리한 욕심인 줄은 알고 나도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감귤박물관에서 귤 머핀 만들기 체험을 하고 함께 있던 아열대 식물원을 둘러봤다.
만들었던 머핀은 바로 만들어서 그런지 진짜 맛있었다. 콘도에 돌아와서 남은 걸로 가족 파티!
아열대 식물원에서 봤던 파인애플. 파인애플이 이런 식으로 이렇게 자라는지 나도 첨 알았다는....!
큰 나무에 매달려 있을 줄 알았는데.
거기서 봤던 꽃. 이름이 제라... 뭐라 했는데 둔필승총은 이럴 때 필요하다는.....ㅋ
푸르고 망망한 바다와 하늘은 마음을 뚫리게도 하지만 먹먹하게도 한다. 산에 오르면 오를 때와는 다르게 정상에 서면 뚫리는 마음은 들지만 먹먹함은 없다. 바다는 그렇다. 산은 굽어볼 수 있고 바다는 보이지 않는 저 너머를 환상하기 때문일까? 인적이 드문 표선해수욕장은 먹먹하다. 계절을 잊은 바다는 망망하다.
언제였을까? 그대와 둘만이 온전히 서로를 바라다 보던 그 때가. 넌 나를 보고 난 너만 응시하던 그 날, 그 장소가 저들처럼 아무도 없던 그 바닷가였을까. 혹 까만 밤하늘을 바라다 보며 갈 곳 몰라 서성대던 그 때였을까. 어제와 같았던 아름다웠다며 서로 얘기하던 일들이 이제는 무덤덤으로 무던함으로 기억속에 아련하다.
사랑은 늘 가슴 저미게 하고 세상에 나의 사랑 하나뿐인 듯 절절하지만 돌이키면 언제였는지 흐릿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지구 저편의 사랑도 그러했음에 쑥스럽다. 하지만 사랑한다 말한다면, 늘 처음처럼 상큼하고 애틋하다. 그리고 가슴 한 켠이 흐릿해져 온다.
저 방향을 따른다면 그 날의 아름다움으로 갈 수 있을까? 하지만 저 화살표가 나를 인도할 수는 결코 없으리라. 오늘의 나는 아니, 오늘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을테니까.
제주, 섬을 외곽으로 일주하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 아홉 개 코스가 있는데 올레라고 부른다. 해안을 따라서 만들어진 트레킹 코스로 걸어서 섬을 일주한다. 아마 9박 10은 걸릴까? 오마이뉴스 본부장이었던 서명숙 씨란 분이 산티아고 도보순례를 하고 와서는 우리나라에도 그런 코스를 만들자 해서 <제주 걷는 길>을 몇분이서 만들었다는 올레, 도보순례길. 제주 사람의 진한 향을 느낄 수 있는 도보여행으로 언제고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섬 곳곳에 해안가를 따라서, 또 길섶을 따라 저런 안내 표식이 있다.
책도 있다니 읽어봐야겠다. [제주걷기여행_서명숙 저]라고..
두모악.... 무슨 뜻일까 찾아본다는 게 아직이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이름이고 폐교전 분교의 이름이단다. 제주도를 사랑하고 좋아해서 평생을 제주도 사진만을 찍다가 돌아가신 사진가 김영갑. 그 분의 작품과 유품을 모아놓은 갤러리다. 폐교를 활용해서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만들어 놨다는데 폐관 시간이 넘어서 도착하는 바람에 들어가진 못하고 담 너머로 둘러보고만 왔다. 다음에 또 이런 여행의 기회가 생기면 꼭 가봐야겠다. 그 분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평생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곁에 두고 그를 위해 자신의 온 열정을 쏟았으니.....
섭지코지에 있다는 올인박물관. 박물관이다기 보다는 드라마 촬영지에 세트장을 보존하고 관련 사진이랑 그 드라마를 찍었던 기획사의 다른 영화들 포스터로 내부를 장식하고 주인공이 포옹하던 장소에 발자국 네 개 만들어 놓고 그 옆에 대사를 새겨놓은 드라마 셋트장이다. 우린 여기도 폐관한 뒤에 도착해서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주변 경치만 구경하고 왔다. 들어가봐야 별 의미는 없어 보여서 다행이긴 했다.
아이 엄마 하는 말이, "올인에 누가 나왔어?"
"몰라~ 봤어야 알지!"
"그래도 그 드라마 재밌게 봤던 사람들은 좋아하겠네."
거기, 좁은 곶이라는 제주 말 섭지코지의 작은 언덕 위로 달이 떠 올랐다. 둘째 날의 밤이 찾아 오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떠나야 한다. 언젠지 싶게 시작과 끝은 이렇게 불현듯 찾아온다. 제주 서쪽 끝 한림에 콘도가 있었으니 동쪽 끝으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숙소를 너무 치우치게 잡는 바람에 시간에 쫓겼던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제주의 색다른 풍광을 느끼기엔 좋았다.
차 타고 가다가 아무 곳에나 차 세우고 내려서 놀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비록 예정됐던 탐방지 몇 군데는 놓치기도 했지만 우리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그것 말고 또 뭘 여행에서 바라겠는가. 계획은 계획일 때 설레이고 들뜨는 즐거움이니.
롯데호텔에서 투숙은 못해보고 뒤뜰에 있는 풍차와 아이스 쇼만 구경했다. 왠지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주눅들어 쭈뼛거려진다. 하지만 까짓거 당당하자고, 사투리는 최대한 자제하며 "아가씨~ 아이스링크장이 어디여요?" 그러면 진짜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줬어. 예쁘기는 또 얼마나... 헐!
여행은 끝나고 우리의 일상은 또 흘러서 돌아간다. 세번째 용기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삶은 여전히 진행형이기에! 차가워지지 않는 가슴은 불안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지만 그런 날들이 나를 만들어가는 자양분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겠지.
그러한 용기가 소진되어 갈 때쯤이면 다시금 떠나는 용기를 얻게 되리라. 용감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또 용기있게 하루하루에서 탈피한다. 내게 진짜로 필요한 그 무엇은 바로 이거란 걸 알기에 나의 용감무쌍하지 못함에 내가 처연한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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