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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몇 장

시낭송회...

 

 

 

 

와온바다 너머로 해가 떨어지면 하늘과 바다는 온통 붉어집니다. 거친 숨소리로 먼길을 달려왔을 산줄기가 없다면 우리는 하늘과 바다를 알지 못합니다. 세상이 붉어진 짧은 순간에도 큰 바다를 건너온 작은 새는 여전히 날개를 퍼덕이고 선창에 내리지 못한 배는 서둘러 파도를 가릅니다. 바다 끝에서 시작된 바람은 해가 떨어질 때 와온사람들 사이로 스며듭니다. 사람들은 붉은 하늘을 보며 집을 나선 이들을 추억하고 붉어진 바다를 보며 집으로 가야지, 합니다.

 

사람들은 어둠이 내리자 집으로 모여 듭니다. 저마다 가슴에 붉은 물 뚝뚝 듣는 한마디 말을 품고 모여 듭니다. 말하지 않은 말은 아직 시가 되지 않았고 다만 가슴을 후비고 지날 뿐입니다. 옅은 어둠 속을 함께 걷는 그이와 맞잡은 손으로만 살짝 전해져올 따름입니다. 방 안에 전등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둘러 앉습니다. 우리는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누구의 말을 듣고, 비로소 시가 된 말을 읽습니다. 그이는 떨린 가슴을 큰 호흡으로 진정시킨 뒤 아직 말하지 않은 말을 합니다. 

 

 그이가 뱉어내는 얕은 소리에 눈물 짓고, 그이가 들려준 작은 읊조림에도 크게 웃으며, 그이가 불러준 애절한 한마디 노래에 가슴 뜁니다. 가을밤이 깊어갈 때 우리는 웃거나 살며시 눈물 짓거나 합니다. 이제, 그이 속에서 울려오는 말은 시가 되었고 사람들은 시로 묶어진 가을 한 다발을 품에 안고 주체할 줄 몰라 합니다. 시는 그렇게 우리에게로 왔습니다. 그날, 밤이 내릴 무렵부터 깊어갈 때까지.

 

 

 

 

 

 

 

 

 

 

 

 

 

 

 

 

 

 

 

바람빛의 바이올린, 무지개의 피아노를 듣습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사람들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을 가을밤 별이 빛나는 그곳까지 실어서 보냅니다. 둥실 떠오른 말은 검은 밤을 지나 반짝이는 곳에 가서 살며시 내려앉습니다. 사람들은 눈을 지그시 감거나, 유리창 너머로 함께 따라서 가거나, 고개를 수그립니다. 바이올린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피아노는 떨어질 듯 튀어 오릅니다.

 

 

 

 

 

 

 

 

 

 

 

 

 

나무가 여백을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뭇잎이 내준 자리를 저희가 먼저 찾아 앉았습니다.

참 따숩고 좋아

또 몇 잎 나뭇잎 진 자리에

친구들을 불러 앉혔습니다.

이렇게 둘러 앉으니 먼 풍경 속에 있는 그대 생각이 나서

그대들을 불러 가을을 묶어 보려합니다.

그 자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시로 가을을 묶다

순천작가회의 시낭송콘서트 초대장에서

 

 

대문을 나서며 밤하늘에 별 하나 점 찍어두고 가신다는 회장님, 준비하시느라 애쓰신 총무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시인들께서 가슴에 담아둔 시로 그날 밤의 열기를 전합니다.

 

 

 

 

 

 

 

 

 

녹두를 따며

 

                                -오미옥

 

햇볕 따사로운 가을 오후

늙으신 아버지 곁에 앉아 녹두를 딴다

벌써 여러 해

병석에 누우신 어머니 대신

살아생전 자식들에게는 원산지를 모르는

농산물 먹일 수 없다며

팥이며 콩, 녹두를 심고 거두는

아버지 사랑이 시리고 눈물겹다

 

유난히 녹두를 많이 심는 것은

우리 집만의 풍습이었는지 모른다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녹두를 따러 다닌 기억이 생생하다

녹두는 익는 시기가 달라

여름부터 가을까지

몇 번이나 녹두를 따러 다녀야만 했다

 

산밭 가득 심어진 녹두밭에서 꼬투리가 까맣게 익은 녹두를 따는 날이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던 멧비둘기 울음소리는

왜 그리 구슬프게만 들렸는지

알 수 없는 슬픔으로 뒤범벅되어

몸이 아파오던 어린 날이면

어머니는 녹두죽 한 그릇을 끓여주셨다

 

녹두는 우리 집 단방약 같은 것이었다

술 드신 아버지의 속풀이와

감기와 혼자만의 성장통으로 수척해진 자식을 위해

어머니는 자주 녹두죽을 끓이셨다

그렇게 우리는 녹두죽을 먹으며

하나, 둘 어머니늘 떠나왔다

 

아파 누워계신 어머니를 위해

오늘은 맛나게 녹두죽을 끓여보려고

그릇에 녹두를 담고 물을 붓는다

물속에 담긴 연둣빛 녹두알에

멧비둘기 구슬픈 울음소리 가득하다

 

 

 

 

 

 

 

 

 

 

 

 

 

바다와 대화

 

                                   - 김현주

 

 

기다림의 버스가 팽목하으로 향하는 날

"엄마 어디 가는 거야"

"언니 오빠들이 안 와서 만나러 가는 거야"

"엄마 근데 구름 색깔이 왜 저래"

"긍께, 흰색이 아니네. 왜 그럴까"

"구름이 슬픈가봐"

"..............."

 

진도대교를 지나 잠시 머무른 울돌목

"와 시원하다. 근데 엄마 왜 이렇게 시원해요"

"응 바람이 많이 부니까"

"왜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불어요"

"............"

그렇게 엄마 말 문 닫으며 재잘재잘 컸을 텐데...

 

어른들조차 꽁꽁 싸매고 모여든 검은 바다 팽목항

"바다야 춥지"

"아니 시원하다 근데 왜 이렇게 노란 리본이 많은 거야" 

"................."

높은 파도 내려치는 방파제를 뒤로

11월 내 새끼 춥다고 돌아선 팽목항

잠에 취한 두 아이를 보니

명치끝이 아리다

 

천불천탑 세운 마음이면 돌아오지 않을까

"엄마 어디 가는 거야"

"응 부처님 만나서 소원비는 거야"

"무슨 소원"

"언니 오빠들 바다에서 나오게 해달라고 비는 거야"

"응"

가르친 대로 제법 절을 한다

두 손 모아 고개 숙이고 나를 보며 한마디

"엄마 이제 후~~ 하면 되는 거야"

"................."

대웅전 부처님 앞 큰 초 두 개가 흔들린다

 

 

 

 

 

 

 

 

 

 

사모곡4

 

                     - 이정솔라

 

 

설레임으로 흙을 고르고

기다림으로 기둥을 세우고
간절함으로 지붕을 엮어

엄마를 기다립니다

 

그리움으로 창을 만들고

보고픔으로 문을 달고

사랑으로 방을 꾸며

엄마를 기다립니다

 

절 한 번으로 전을 부치고

절 두 번으로 밥을 짓고

따뜻함으로 밥상을 차려

엄마를 기다립니다

 

서러움을로 한 술 뜨고

애통함으로 두 술 뜨고

메인 목을 두드리며

내일도 엄마를 기다립니다

 

 

 

 

 

 

 

 

 

콩따기

 

                               - 박효안

 

 

밭 들어설 땐 보이지 않았던 너

나올 대는 잘 익은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반나절도 안 됐는데 그새 여물었나

귀갓길 발걸음 멈추고 그새 콩 따고 있네

 

이놈의 눈, 눈이 문제다

돌아서면 잡초가 또 돌아서면 벌레가 보이는데

내 귀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보지 못한다

 

밭일하다 시간 맞춰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칭찬

 

                     - 박상아

 

 

하느님 강연하는 도중

하마가 칭찬을 들었다

돼지가 조는 척 했다

 

하느님 강연하는 도중

소가 칭찬을 들었다

돼지가 하품을 했다

 

하느님 강연하는 도중

여우가 칭찬을 들었다

돼지는 모른 척 했다

 

이 미련한 돼지야

너는 진짜로 잠이 오니 아니면

칭찬을 받고 싶니?

 

 

 

 

 

 

 

 

 

 

반짝이는 어둠

 

                                                - 이상인

 

 

대숲에 일렁이는 어둠의 비늘이 파르르 떨린다.

 

우리는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서 있었구나.

 

이곳에선 가난도 슬픔도 기쁨도 별빛처럼 아름다이 반짝거린다.

 

푸른 늑골이 아득하게 휘어지는 새벽녘

 

수탉 울음소리처럼 닦을수록 빛나는 어둠이 불끈 주먹을 쥔다.

 

 

 

 

 

 

 

 

 

 

 

 

 

 

 

 

 

 

 

 

시인들의 시 속에서 함께 빛나는 노래 하나, 중등 음악선생님이신 스무 살 새파란 송인효선생님의 자작곡과 백만 송이 장미.

나의 스무 살은 저처럼 새파랗게 빛났을까,를 잠시 생각하게 했던 흡입력있는 목소리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무대매너 그에 따라서 사람들은 앉은 자리에서 환호합니다.

 

 

 

 

 

 

 

 

 

 

 

 

 

 

 

 

 

 

송인효선생님 못지 않은 카리스마로 일순간에 음악콘서트에서 시낭송회로 분위기를 바꿔버리셨던 송태웅선생님!

 

 

 

 

가을의 잠

 

                                     - 송태웅

 

 

가을은 계절의 흉터였나 보더군

이제 물 들어찬 아궁이에

되다만 시들을 불태워

시린 꼬리뼈를 데워야한다

불면을 몰아오는 생 어딘가에

구절초 무리져 춤추고

다시는 다시는

너무 예민하게 눈 뜨지는 말자

지난 여름은 날것처럼

선정적이었다

어릴적 하늘 가득

내려오던 삐라들

거기에 적힌 투항 권유의

문구들처럼 퇴로를 조여왔다

다시는 오지 않을 가을의 잠이여

죽어서 방구석에서 나풀거리는

날벌레들같이

벚나무 잎사귀들 순식간에

져 버리는 것같이

너와의 이별은

나와의 이별보다 더 무섭고

외로운 것을

생사의 결단으로

입술 깨물어야 할 것을

 

 

 

 

 

 

 

 

 

요즘 손, 발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는 우리의 소성군!

 

 

그놈

 

                           - 박소성

 

 

여차하면 나를 괜찮은 놈으로 만들고

여차하면 나를 좋은 놈으로 만들고

여차하면 나를 이상한 놈으로 만들고

여차하면 나를 나쁜 놈으로 만드는 그놈

 

내가 아닌 그놈이 나를 집어삼켜 나인 척 행세하며

옆에 있는 그 무엇도 보지 못하게 하고 앞만 보고 달리게 한다

옆에 있던 사람이 넘어져도 보지 못하고 내 갈 길만 가게 한다

나는 나를 이렇게 만드는 그놈이 싫다

 

나는 나를 이렇게 만드는 그놈을 그냥 보내지 못하고 붙잡는다

미련이 남듯 끝까지 붙잡는다

 

나는 미련을 남기지 않고 잠깐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처럼

잠시 만났다 떠나보내고 싶은데 감정이란 그놈은 언제까지 남아 나인 척 행세할까

 

 

 

 

 

 

 

 

 

 

 

지난 번 월식이 있었는데 보지 못한 아쉬움을 시에 담았다는 정민이

 

 

 

 

월식 

 

                                 - 박정민

 

 

달이 먹혀간다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듯 사각사각

 

달이 붉어진다

마녀가 심술이라도 부리는 듯 마법처럼

 

달이 뜬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환하게

하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나는 왜 그 달을 보지 못하였을까?

 

 

 

 

 

 

 

 

 

 

 

 

 

 

 

 

 

순서가 바뀌었다고 했지만 이미 인삿말을 해버린 뒤여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사람들은 괜찮아요, 그냥 하세요~ 합니다.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어릴적 빠꿈살이 기억을 재밌게 들려주십니다.

 

 

 

 

엄마와 새앙쥐

 

                                             - 윤선미

 

 

친구들이 빗속을 게아찜1) 움켜쥐고 달린다

언니는 초록머리 나풀거리며 달린다

동생은 누런 보리이삭 옆에 끼고 달린다

우산도 없이 아이들이 달린다

 

동굴 속 너른 바위에 빙 둘러 앉아

돌멩이 하나 둘 착착 부뚝막 만들고

양철판 앉혀 놓으면

게아찜에서 어젯밤 약속들이 쏟아져 나온다

흰쌀 검은콩 달달한 사카린 껴안고 뜨겁게 춤 한판 춰야제

쌀이 리듬을 타고 탁탁타다닥 스텝이 빨라진다

콩도 덩달아 돌리고 구르고 데구르르톡톡

눈빛만 왔다갔다 일제히 손을 뻗어 한 움큼씩

어어어 손 데일라 입 데일라

 

동굴 밖 빗소리 토도독 토도독

푸른 완두콩 깍지 누런 보리 이삭일랑

버얼건 불 속으로 몸을 살라

보리는 비비고 후후 불어

콩은 비틀고 도로록 훑어야제

입으로 코로 누이야 동상아

얼굴엔 시커먼 그림 그려 놓았네

 

굴뚝 연기 하늘가로 퍼져 올라 갈 때

정개2)에서 궁시렁거리는 엄마

오메 새앙쥐가 쌀을 돌라묵었는갑네 팍 굴져부렀네이3)

아야 살강4)에 싸놓은 사카린 못 봤다냐

웃음 새어 나오는 입을 틀어막고

못 봤는디요

오살할 놈 쥐새끼덜 낼은 고양이를 델꼬 와야겄당께

 

 

 

1)게아찜-호주머니

2)정개-부엌

3)굴져부렀네이-줄어들었다

4)살강-찬장

 

 

 

 

 

 

 

 

 

 

보민이가 기숙사에서 빨래를 널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보고 쓴 시라고 합니다.

 

 

 

 

 

혼잣말

 

                       - 김보민

 

 

땅 위에 집

집 안에 나

 

나는 줄곧 하늘만 보았다

어두컴컴한 하늘

 

완전히 차오르지 못 한 달

구름은 저기로만 가고 있다

 

저기요

저 혼잣말 좀 들어주세요

 

 

 

 

 

 

 

 

 

 

 

 

 

엄마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비올라 연주를 들려준 예승이. 비올라 레슨 때문에 시문학 수업에 빠져서 시를 쓰지는 못 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비올라 연주를 들려드릴께요!

 

 

 

 

 

 

 

 

 

하화도

 

                                                - 오미숙

 

 

아랫꽃섬으로 불리는 섬 하화도

크고 작은 해바라기가 노란 웃음 머금고 반기는 섬

나무계단 오르내릴 때마다 마주 오는 깻넘, 막산, 큰산 전망대에서

바라람에 시름 날려 보내고

거북배가 하얀손 흔들며 지나는 사이로

낚시를 드리운 사람들도 손 인사한다

절벽과 파도가 부딪히며 절묘한 연주를 해대는

벼랑 끝자락에 서면

태양이 내리쬐는 수평선 너머 바다는

숲으로 선한 바람 내어주며 뜨겁게 달궈진다

순넘밭넘 공원에 핀 구절초

꽃잎이 바람의 속삭임에 고개 끄덕이면

철없는 코스모스 덩달아 몸을 흔들어댄다

널려있는 콩 밟기 미안해 머뭇거리면 "일없어"

하는 순한 할머니들이 사는 하화도

구름도 바람도 잠시 쉬어가는 섬에서

개도막걸리 한 잔 고추 한 입으로 목 축이면

돌아가는 길은 가벼워지리라

 

 

 

 

 

 

 

 

 

 

 

 

 

자신의 <중이병>이 왜 마지막 순서인지 알았다는 효안이, 가만보니 시인들께서도 다 오글거리는 시를 쓴 걸로 봐서 오글거리는 자기 시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나 어쨌다나... 여유와 당당한 시낭송, 상 찌질이 효안이.

 

 

 

중이병

 

                                               - 박효안

 

 

나나 똥 누이러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

여기저기 커플들이 활보 중이다

가만보면 예쁜 여자들은 다 커플이다

저기 저 남자 대단한 남자다

얼굴의 한계를 극복하고 예쁜 차 한 대 몰로 다니며 실실 웃고 있다

가만보니 찌질이들은 차가 없거나 똥차고

대장부들은 예쁜 차 끼고 다닌다

남자는 옆에 어떤 여자가 있느냐에 따라 계급이 달라진다

저놈도 찌질인가보다

저놈은 찌질이 중에 상 찌질이다

남자끼리 술 먹고 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근데 난 왜 아직도 차가 없지?

내 친구 망둥이도 있고 주위에서도 다들 한 대씩 뽑는데 말이야

나는 정녕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이보게 자네 나 썩 근사한 편에 속하지 않는가?

내겐 왜 카톡이 오지 않는가?

내겐 왜 작업을 걸지 않는가?

나와 화려한 슬픔의 맹세를 약속하지 않겠는가?

나도 차 갖고 싶다

어딜 달려도 구름 위의 꽃길 같고

따뜻하고 아늑하며

살짝 웃어주면 내게 든든한 응원이 되는...

차 한 대 갖고 싶다. 그냥...

뭐? 내가 좋다고? 난 너 별론데 하는 나

쌀쌀한 날씨지만 외투는 거추장스러워하네

가을은 이래서 어리석다

 

 

 

 

 

 

 

 

 

 

 

 

 

 

 

 

 

 

 

 

 

 

 

 

 

 

가슴에 품어 왔던 말들이 뱉어져 시가 되어 사람들 사이로, 내 안으로 찾아 듭니다. 눈물 짓고 웃었고 유리창 너머 밤하늘을 응시하던 가을밤의 시낭송콘서트는 끝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가을을 한 다발 묶어 들고서 자리를 쉽게 파하지 못 합니다. 오늘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손을 맞잡습니다. 몇몇은 밤하늘 별을 보며 깊은 담배연기를 뿜어내고 몇몇은 도서관 주변을 서성이며 두런거립니다.

 

아쉬운 마음에 모두를 불러 모아 단체사진을 찍습니다. 관계자들, 누구든 다 오세요~ 조명을 담당했던 브라보의 무용담을 듣습니다. 오락가락하던 불 끄고 켜기는 중간쯤에 제대로 순서를 찾아 갔습니다. 사람들은 모여서 웃고 재잘거리고 사진사는 하나, 둘, 셋을 외치고 아이들은 가로질러 뛰어 갑니다. 몇번 다시 찍었던 사진은 제대로 찍혔을까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이대로 마음 한 켠에 담아두기로 합니다.

 

 

 

 

 

 

 

 

 

 

 

 

 

 

 

자리를 파하지 못한 사람들은 떨어진 나뭇잎을 줍듯 이야기를 주워 담습니다. 부산에서 온 막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을 이어줍니다. 가을밤 살짝 열에 들떠 있던 사람들은 막걸리 한잔에 취기가 오릅니다.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노래합니다. 미처 주워서 묶어두지 못한 가을날이 막걸리 위를 떠다닙니다. 가을밤은 깊어가고 사람들은 진한 막걸리처럼 물들어 갑니다. 시 하나, 노래 하나, 가을 한 다발은 그날 밤 그렇게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