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읍내, 그로버즈 코너즈(Grover’s Corners)에서 구례까지
-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의 『우리 읍내(Our Town)』
『구례, 우리 읍내』의 원작은 미국작가 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의 『우리 읍내(Our Town)』이다. 이 작품은 미국 뉴 햄프셔 주 그로버즈 코너즈(Grover’s Corners, New Hampshire)라는 작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1901년에 시작하여 1913년에 끝난다. 3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막은 깁스와 웹 두 집안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2막에서 두 집안의 소꿉친구인 조지와 에밀리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3막은 죽음을 담고 있다.
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의 『우리 읍내(Our Town)』는 미국의 현대고전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만큼 다양한 변주로 무대에서 펼쳐진다. 삶과 죽음, 우리들의 일상에서 찾는 평범한 진리를 보여준다. 『우리 읍내(Our Town)』는 시간의 흐름으로 십여 년을 가로지른다. 하지만 새벽에 시작되어 밤이 깊었을 때 끝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마을 어느 집의 쌍둥이가 태어나는 일에서 시작되어 사랑과 결혼을 거쳐 죽음으로 이어지는 우리 일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로버즈 코너즈(Grover’s Corners) 사람들과 구례 사람들의 어울림
구례든 어디든 오늘 하루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한 사람의 일생 동안 또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질까? 우리는 하루 혹은 일생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놓여 있는 우리 삶의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한다. 에밀리처럼 그리고 구례의 미자처럼 그때에 가서야 깨달을 수 있을까?
원작을 각색하며 대본이 틀을 갖춰갈 때 깨달았다. 아,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구나!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의 『우리 읍내(Our Town)』가 그렇게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인 줄 몰랐다. 크고 작은 극단을 비롯해 대학, 문화센터 등에서 수차례 공연되고 각색되어진 작품인 것을 뒤늦게 알았다. 심지어 전 세계에서 하루도 공연되지 않는 날이 없다니!
극단 단원들과 둘러앉아 처음 원작을 읽었을 때 가슴은 먹먹해졌고 눈시울은 붉어졌으며 우리들 이야기와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 했다. 1910년대 초반 미국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시골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쉽게 읽혔지만 마음 한쪽에 오랫동안 남았고 울림은 크게 다가왔다. 간결한 대사, 평범한 일상의 모습들과 사람들을 둘러싼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우리 삶을 향해 던지는 질문을 구례 사람들의 그것으로 무대 위에 그려보면 어떨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독해를 끝내고 2층 옥상으로 나갔다. 겨울날 밤하늘에 별은 총총했고 무심결에 눈에 들어간 담배연기로 별 하나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로버즈 코너즈 사람들과 구례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일은 순전히 저 총총한 별과 눈에 들어간 담배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무식하기 때문인지도...
원작이 갖는 힘은 단순한 이야기와 명료한 주제에 있었다. 평범한 삶에서 찾는 진리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다르지 않다는 믿음이 그로버즈 코너즈 사람들과 구례 사람들을 만나게 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으리라 여겼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선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잘 놀 수 있을까 하는 데에 있었다. 사람들이 서로 통하며 어울리듯,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듯 그렇게 서로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이야말로 삶 속에 숨어있는 진리를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구례, 우리 읍내 사람들의 이야기
1970년대와 80년대 우리나라는 독재정치의 엄혹한 시기와 산업화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떠났다.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시시콜콜 일상생활에서 희망을 찾으며 살아갔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김주사와 대장간 이샌 두 집안도 다르지 않았다. 이웃들은 골목길을 오가며 안부를 묻고, 아버지들은 아들을 혼내고 돌아서서 안쓰러워하고, 어머니들은 셀 수 없는 시간동안 종종거리며 부엌을 드나들고 나물을 삶아서 시장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팔기도 한다. 형제자매는 서로 티격태격한다.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갈 준비로 부산하다. 평범한 우리들은 지금, 오늘 하루를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사춘기 소년과 소녀, 만식과 미자는 봄날 맑은 밤공기를 가르며 실전화기를 통해서 숙제를 핑계로 서로의 마음을 전한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의 사랑, 봄꽃의 향긋한 내음과 포근하게 비추는 둥근 달빛을 받으며 점차 남자와 여자로 성장해간다. 그래서 아이들을 세상에 탄생시켜 인간으로 완성키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무대감독은 우리에게 살짝 언질을 해준다. 그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은 어설프고 서툴지만 그래서 한 편의 서정시처럼 아름답다. 부인들은 불만스러웠던 판소리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둥근 달을 함께 말없이 바라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달에 취한다. 부인들은 까만 밤하늘의 달을 보며 소녀시절 감성에 젖고 아이들은 무궁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중인지도 모를 일이다.
편지봉투의 주소가 받는 사람 이름에서 시작되어 저 멀리 우주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까지 적혀있어도 우편배달부는 정확하게 배달을 한다. 우리네 시골의 집배원도 이에 못지않았던 예전 국민학교 교과서의 집배원에 대한 기억으로 살짝 미소 짓게 되지만, 사실 한 인간의 존재는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서로 관계 맺으며 살아가고 있고 저 우주 끝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나면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주소쓰기 방식과 다른 점에서 오는 이물감을 떨칠 수 없었지만 주소가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을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어머니들은 늘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는 일이 없다. 김주사부인이나 원작의 깁스부인은 골동품을 후한 값에 팔라는 골동품상의 제안에 몇날며칠 고민을 한다. 김주사부인은 온천에 가보는 게 소원이고 죽기 전에 비행기나 한번 타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결국 골동품을 판 돈은 아이들 결혼비용으로 사용하고 만다. 미자가 죽은 뒤 시어머니를 만나서 “어머니께서 주신 돈으로 농장을 만들었어요.”라고 말할 때 세상 모든 어머니는 똑같다는 생각에 가슴 짠해져 온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산업화, 도시화로 사람들은 도시로, 서울로 모여들었다. 동네 여자친구, 누나와 여동생은 어려운 집안 형편에 학교는 고사하고 어린 나이에 식모살이, 방직공장, 신발공장으로 떠났다. 이런 생활을 했던 미자를 시집보내는 미자엄마의 마음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쏟으며 “요로케 허망없이 보낼 줄 알았으먼 넘들 어매맹키로 살갑게라도 키울 것인디...”하는 그녀의 고백을 온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우리에게는 없다. 그로버즈 코너즈에 사는 웹부인의 딸을 시집 보내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그녀들의 고백은 서글프지만 정겹게 다가온다.
결혼으로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헛헛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들이 결혼하던 때를 떠올리면서 웃는 웃음소리는 시답잖다. 아버지는 아들이 여전히 미덥지 못하고 어머니는 딸에게 온전하게 쏟지 못한 사랑으로 안타까워한다. 대장간 이샌부부가 딸 결혼식날 아침에 서로 큰소리를 내며 툴툴대는 것은 그런 마음을 감추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도리어 화를 내서 상대방을 가슴 아프게 만들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어른이 되어갈수록 우리네 삶은 그렇게 마음과는 다르게 가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뒤에 내딛는 만식과 미자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던 것은.
많은 시간이 흐르고 아니,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가 가야할 곳은 무덤임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 형태야 다양할 수 있겠지만 거긴 인간이 영원한 무언가를 찾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슬픔이 서린 곳이지만 그곳에도 해가 비추고 비가 내리고 눈이 오고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새들이 재잘대며 모여든다. 무대감독은 뭔가 인간과 함께하는 영원한 게 있다는 것을, 과거 위대한 인간들 모두가 말했던 인간 누구에게나 영원한 무엇이 있다고 말하며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이어주는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미자는 12살 생일로 돌아간다. 하지만 서로 쳐다볼 시간도 없이 모든 게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무덤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순간마다요?”
지난겨울 단원들 모두가 바닷가로 MT를 떠났다. 우리는 둘러앉아 동네 사람들에 대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 말 한마디 한마디는 대사였고 몸짓은 이미 연기였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웠지만 MT의 열기는 뜨거웠다. 구례로 돌아와 초고를 읽어가며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보탰다. 어릴 적 동네 사람들이 마을 일을 울력으로 해나가듯이. 나의 겁없음으로 시작됐지만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아 무대에서 펼쳐질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고 봄이 찾아오고 우리는 『구례, 우리 읍내』 사람들 이야기로 작지만 소담스런 봄꽃 하나를 피운
그해 겨울은 길었다. 대략 열흘 정도가 지나면 4월이 되지만 여전히 추웠다. 사람들은 지리산으로 달려가는 바람을 보며 아직은 겨울이여, 했고 산수유나무를 쳐다보며 봄이 오긴 오겄제, 했다. 지난밤 산고를 이겨낸 백련리 새댁은 동이 터오자 쌍둥이를 쑥 낳았고, 밤새 곁을 지킨 산파는 싸늘한 새벽공기에도 열에 들떠 흐뭇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왕시루봉에서 서서히 아침 햇살이 퍼지듯 우리 읍내의 하루도 그렇게 시작된다. 어느 틈에 해는 불쑥 솟아오르고 아침이 되기만을 기다린 사람들처럼 이집 저집이 왁자지껄하다. 아버지들은 밤을 새우고 막 들어오거나 새벽에 나가고, 어머니들은 수십년 동안 해오던 아침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들어가고, 아이들은 따끈한 아랫목 이불 속에서 꼼지락 댄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호통을 듣고서야 어기적거리며 마루로 나온다. 왕시루봉으로 찬찬히 햇살이 퍼지듯 구례 읍내의 하루도 서서히 시작됐다. 어느 틈에 해는 솟아올랐고 아침이 되기만을 기다린 사람들처럼 이집 저집이 왁자지껄했다. 신문을 돌리는 누구네 손자의 활기찬 목소리가 아침을 한껏 열어젖혔다. “안녕흐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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