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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가을, 은행잎 하나

 

 

 

 

 

비가 오네요. 가을이 깊어질 모양입니다. 길가 은행나무의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나면 가을은 어느새 저만치 가버리고 말겠지요? 그리고 우리들은 옷깃을 여미고 하얀 겨울을 조용히 기다릴 테지요. 누군가는 춥다고 호들갑을 떨고, 누군가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고 하고, 누군가는 흰 눈이 펑펑 쏟아지기를 바라고, 누군가는 추위에 곤궁한 삶을 걱정할 테고, 누군가는 새싹을 기다릴 테고...

 

시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고, 내 곁에 머무르기나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내 곁에 다가왔는지 알 수 없으니 지나가고 난 뒤에야 그가 남긴 흔적을 보며 아쉬워하는 모양입니다. 가을날 은행나무 이파리를 날려버리는 바람처럼 시간은 그렇게 우리 곁을 스쳐갑니다. 지금 여기에서, 그와 마주한다면 그때보다 더 친절하고 소중하게 대했을 텐데...

 

4일간의 공연이 끝났습니다. 희곡을 처음 받고 독회를 시작하고 연습실을 오가며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지금, 그 길의 끝인줄 알고 섰는데 길은 모퉁이를 돌아서 어딘가로 이어지고 있는 걸 봅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없었고 다만 내가 딛고 밟아온 그 길이 계속 됩니다. 그렇다면 그 길이 나를 기다리는 그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