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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몇 장

안녕, 토야마! (さようなら 富山!)

 

 

 

시간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흘러 가는 걸까요? 시간은 가만히 있는데 내가 왔다가 가는 걸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고 이제 토야마는 다만 기억과 추억으로 남아서 내 마음 한쪽에 채워져 있습니다. 물설고 낯설은 곳,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시간은 흘러가고 그 흐름에 따르듯 우리는 어떻게든 주린 배를 채우고 지친 몸을 뉘일 곳을 찾아갑니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제각각 삶을 살며 환한 미소로 마주하거나 혹은 난처한 표정으로 서로 어색해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시간에 순응한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있던 곳으로 훌쩍 돌아왔고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시 자신들의 삶을 마주합니다.

 

여행은 무얼까, 생각합니다. 관광과 여행의 차이는 뭘까, 생각합니다. 관광객보다는 여행자라는 말을 들을 때 가슴이 설렙니다. 저 산과 바다 건너, 저 하늘 너머를 향해 길게 뻗은 길을 걷고 있는 내 모습에 가슴 쿵쾅거립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무얼하게 될까요? 큰 길을 따라가다 갈림길을 만나고 좁은 길로 접어듭니다. 그 길에서 희미한 불빛이 비추는 작은 창을 살짝 훔쳐봅니다. 창 밖에 서서 그걸 바라보고 있는 나를 다시 살짝 훔쳐봅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둘러싼 방에 난 창을 통해서 그 모습을 훔쳐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칩니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희미한 미소를 지어봅니다. 우리는 토야마에서 관광객이었을까, 여행자였을까? 토야마에서 돌아온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는 나는 여행자일까, 관광객일까? 지금 여기 지구별에서...

 

토야마를 떠나는 날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토야마 시내를 관통해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보다는 토야마를 떠나는 아쉬움이 버스 창문으로 스쳐지났습니다. 다시 오게 될지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아쉬움만은 아닐 테고, 토야마를 떠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난다는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난 봄 <우리 읍내> 공연이 끝나고 연극선생님께서 제작비를 정산하고 얼마간 돈이 남았는데 아이들을 일본에 보내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어른들 중에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같이 가자고 하셨습니다. 8월 말에 일본 토야마현 토가촌에서 토가연극페스티벌이 있는데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렇게해서 고등학생 다섯에 예온이와 소리샘, 구빈이네 가족과 연극선생님을 포함해서 11명의 토가촌방문단이 꾸려졌습니다. 비행기표 문제로 한 번 취소가 됐다가 일정을 변경해서 다시 추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행을 준비할 때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토가촌에 들어가는 2박 3일은 연극을 보며 지내고, 나머지 일정은 토야마라는 동네를 알아보며 토야마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해보자는 게 계획이었습니다. 굳이 숙소라든가 기차표라든가 하는 것들을 예약하지도 말고 현지에서 알아보고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비행기표와 이틀간의 렌터카만을 예약하고 떠났습니다. 토야마를 가본 사람도 없고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없는데 학생 7명에 어른 4명 총 11명이나 되는 한 무리가 말하자면 무턱대고 가도 괜찮은 걸까, 고생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저에게는 많았고 일본에 대해 잘 아는 제 주변 분도 걱정이 컸습니다. 하지만 우리팀의 분위기는 그냥 느긋했지요. 다른 사람들은 뭐 다들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하면서요. 저는 워낙에 무슨 일을 할 때 걱정도 많고 또 그만큼 준비도 하고 하는 타입이라...아무튼 우리는 말 그대로 무대뽀로 일본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역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소소한 거지만. 입국신청서에 우리가 묵을 호텔명을 적는 난이 있었는데 우리는 모두 당연히 공란이었지요. 왜냐면 우리는 숙소를 예햑하지 않았고 현지에서 알아보기로 했으니까요.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줄서서 기다릴 때까지도 우리는 문제가 될 거라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입국장에 한국대사관이나 뭐 그런 데에서 나왔는지 한국분이 우리 일행의 신청서를 보더니 묵을 호텔이 없으면 입국이 거절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볼펜을 한 주먹 쥐고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서 입국신청서를 확인해주고 있었습니다. 아무 호텔이나 적어라는 그분의 말에 우리는 이곳에 오기 전에 검색하면서 봤던 호텔 이름을 적었습니다. 하긴 남의 나라에 오면서 묵을 데도 정하지 않고 온다니 거리의 부랑자들인가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일본 토야마 거리에서 밤을 새우지는 않겠어요, 라고 증명을 해야만 하겠지요. 일본 순사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공항에서 토야마 안내책자와 지도를 모았습니다. 우리는 먼저 호텔이나 시장이 있는-시장을 가야 먹을거리가 있을테니- 데가 어딘지, 공항버스를 타고 어디에서 내려야 되는지를 알아봤습니다. 우리의 첫번째 미션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릴 때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다가 운전기사의 호출에 11명이 우르르 내렸습니다. 몇 골목을 돌다가 구한 데가 키요타라는 일본 료칸이었습니다. 전통 다다미방에 아침밥을 먹기로 하고 그곳에서 일본에서의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불라불라해서 그나마 좀 깎았지만 알고 보니 비싼 데서 묵은 거였습니다. 말하자면 일본의 일류 료칸도 아닌데... 하지만 주인이 잘 관리했는지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정갈하고 깔끔했습니다.

 

우리는 비싼 값에 계속 그곳에서 머물 수는 없다고 결정하고 오후에 숙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아무래도 일본에서 첫날 밤은 전통 여관에서 잤지만-사실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 일단 여기서 하룻반 묵자, 라는 맘이 더 컸지만- 일본에 오기 전에 대강 검색해봤던 호텔 가격과는 너무 격차가 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야마시 역전 번화가에서 방을 구하러 호텔마다 물어보러 다녔습니다. 역전에는 고층 호텔이 진짜 많았는데 11명이 한꺼번에 4박을 묵기에 무리였는지 가는 데마다 방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밥 먹을 만한 식당을 찾아보라는 미션을 주고 어른들은 방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일본어 회화책을 펴들고, 짧은 영어 단어를 써가며 애처롭게 매달리는 우리를 위해 어떤 호텔 직원은 여기저기 전화로 알아봐주기도 했습니다. 예닐곱 군데 이상을 다녀봐도 방이 없을 때는 좀 갑갑하고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예약하자니까 무대뽀로 그냥 왔다고 화가 나기도 했고 멀리 타국에서 길거리에서 밤을 새야하나 하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했습니다. 딸린 아이들도 많고...

 

소리샘과 은하수는 시내 관광안내소를 찾아가서 매달리고 나는 뒷골목에서 담배 한대 피우다가 더 찾아보자,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두번째 들른 호텔에서 나흘 동안 아침밥까지 해결하고 방 4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 포함해서 11명이라는 말에 어떻게든 방을 만들어주려는 직원 아가씨가 눈물겹게 고마웠지요. 첫날 묵은 데의 반값이 조금 더 되는 돈으로 구했으니 더욱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 돈도 중요했지만 진짜 다리 아프고 힘들게 다녀서인지 토가연극촌에 가기 전까지 지낼 방을 구했다는 것에 무조건 결정했지요. 손짓 몸짓에 일본어 번역기에-이건 사실 오류가 크더라고요. 집에서 연습해볼 땐 와따 좋네, 이거만 있으먼 일본 다 다니겄네 했는데 주변이 시끄럽고 로딩도 오래 걸리고...- 콩글리시에 아, 너무 힘들었답니다.

 

어른들이 방을 구할 때 아이들에게 먹을 만한 식당을 알아보라했더니 구경하기 바빴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고등학생들이란 하고 말았습니다. 방 구하면서 본 라면집으로 가서 생맥주에 이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블랙라멘으로 저녁을 해결했습니다. 간장라면은 달고 짜고 돈까쓰덮밥도 달고 짜고... 숙소에 돌아와 편의점에서 사케와 맥주를 사다가 입을 달랬습니다.

 

낯선 일본 도야마의 첫날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사진도 못찍었으니...

 

 

 

 

 

 

 

 

 

 

 

 

 

 

 

 

 

 

 

 

 

 

 

 

 

 

 

 

 

 

 

 

 

 

 

 

 

 

 

 

 

 

 

 

 

이틀째 되던 날, 숙소를 옮기고 도야마시내 구경에 나섰습니다. 토야마 관광안내서를 보고 가까운 데부터 둘러보기로 했지요. 첫째날과 둘째날은 숙소를 구하고 토야마 알아보기였으니 안내서를 뒤적였습니다. 3일째부터는 나름 계획이 있지만 아무튼 이틀은 무작정 돌아보기입니다.

 

그래서 정한 곳이 이와세라는 토야마 북쪽 바닷가 마을입니다. 토야마역에서 전차로 25분을 가면 나옵니다. 해안가에 앞으로 토야마만을, 뒤로 다테야마(立山)를 바라보는 전망대가 있고, 200년이 넘은 모리(森家) 집안의 고택을 중심으로 일본의 옛날 집들이 골목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리가의 고택에 걸린 일본지도가 우리가 지금까지 본 것과 반대네요. 우리나라와 대륙이 지도 아래쪽이고 일본이 위에 있어서 태평양을 바라보는 형태로 걸려있어서 처음에 거꾸로 걸어놨나,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주변 골목 상가는 간판이 있는 듯 없는 듯해서 식당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따가운 햇살에 골목을 느릿하게 걷는 게 힘든지 아이들은 내보이지 않으려는 인상을 짓고 언제 숙소로 갈 건지만 물어봅니다. 식당을 찾아보라했더니 그나마 배고픈 건 면하고 싶은지 한참동안 흩어졌다가 마을 소개 팜프렛을 들고 왔습니다. 아이들이 알아온 식당이 방금 아이스크림을 사먹은 데였다니...

 

메뉴판에 사진이 있었기에 그래도 뭔가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뭐 대부분이 달고 짜긴해도... 어렵게 밥을 먹게 돼서 좀 짜증이 났는지 아이들은 볼 것도 없는데 여길 왜 왔나하며 뾰루퉁합니다. 몇 시간 자유시간을 주고 현해탄을 바라보는 전망대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구빈이와 예온이는 뭐가 좋은지 깔깔대며 여기저기를 누빕니다.

 

고등학생들을 보내고 우리는 고즈넉한 골목길을 걷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한 까페에서 커피와 주스를 마시며 여유를 즐겨봅니다. 까페의 할머니 주인장께서 커피를 내리는 게 특이합니다. 알콜램프로 둥근 비커에 물을 끓이고 그 비커 위에 머그컵 같은 비커에 커피가루를 넣고... 연극선생님이 대학 때 내리던 방식이라며 이름을 얘기해줬는데 싸이폰이라든가 그렇습니다.

 

 

 

 

 

 

 

 

 

 

 

 

 

 

 

 

 

 

 

 

 

 

 

 

 

 

바닷가 전망대에서 현해탄을 바라보고 구름에 휩싸인 3000미터 봉우리가 이어진 다테야마에 오르는 모습을 살짝 그려보다가 내려옵니다. 다테야마에서 내려온 물이 토야마 앞바다로 흘러 들어옵니다. 그 강물 위로 배가 다닙니다. 숙소로 돌아갈 배를 타러 터미널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마지막 배는 끊겼고 아이들은 그때서야 자기들이 이 근처까지 왔었다고 말합니다. 그럼 배 시간을 보고 왔어야지, 했지만 배를 탄다고만 말했지 시간을 알아보라는 말은 안 했잖아요, 식당도 알아봤는데 이런 것도 알아봐야 돼요? 퉁명스럽거나 찡찡대거나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시 전차역으로 이동합니다. 또 걸으니 따가운 햇살에 땀은 흐르고 다리는 무겁고,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숙소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그들만의 저녁시간을 제안했고 아이들은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저녁식사에 적당한 돈을 각자에게 주었습니다. 어른들은 쉬었다가 날이 어두워질 때 호텔 옆 선술집엘 갔습니다. 토야마에서 테이블을 인도에 내놓고 장사하는 거의 유일한 가게가 아닐까 싶은 곳이었습니다. 밤바람은 선선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호텔 근처에 도야마역, 시청, 현청이 있어서 사람들 왕래가 빈번합니다. 주변 선술집에도 사람들이 북적이고 젊은 종업원들의 인사와 주문을 넣는 외침소리가 섞여 왁자지껄합니다. 사케는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고 토야마의 밤공기는 불콰해진 목덜미를 쓸고 가고 은하수와 소리샘과 연극쌤의 목소리는 달달합니다.

 

 

 

 

 

 

 

 

 

 

 

 

 

 

 

 

 

 

 

 

 

 

 

 

 

 

 

 

 

 

 

 

 

 

 

 

 

 

 

 

 

 

 

 

 

 

 

25일과 26일은 렌트카를 타고 다녔습니다. 우리는 11명이어서 소형차와 7인승 카니발 같은 차, 두 대를 빌렸습니다. 토요타에서 운영하는 렌터카회사에 예약을 했고 토야마 역 앞 토요타지점에서 픽업을 했습니다토요타는 일본 웬만한 곳엔 렌터카 지점을 운영합니다. 한국어 네비를 지원한다고 해서 좋아라 했는데 사실 일본지명을 영어로 써서 검색하고 단지 한국어로 경로를 안내합니다. 그래도 이게 어딘지... 정확한 영어지명을 알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차를 타고 다니니 아이들은 좋아라 하지만 운전하는 저와 연극쌤은 완전 긴장모드로 초보운전과 똑같습니다. 함께 탄 사람들이 계속 왼쪽, 왼쪽을 외쳐줘야 반대차로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와 운전석을 비롯해 모두가 반대입니다습관적으로 깜박이를 켜면 와이퍼가 작동하고 잠시 정차했다가 탈 때는 조수석문을 열게 됩니다. 옆 차를 보고 운전자가 없어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그나마 일본 사람들이 뒤에서 빵빵거리지 않고 반대 차로로 들어가려 해도 정면에서 기다려주니 다행입니다. 겨우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타니 좀 여유가 생깁니다.

 

렌터카를 타고 시라카와고라는 마을로 갑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전통 마을입니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어서 지붕 모양이 손으로 합장하는 모습입니다. 우리 초가지붕처럼 짚으로 만들었습니다. 워낙에 집이 크고 짚이 많이 들어가니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돌아가며 이엉을 엮는다고 합니다. 이곳은 아직도 옛날 집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함께 농사를 짓고 술을 빚어 축제를 열고 제사를 지냅니다. 마을 기념관에서 얻어 마신 막걸리 비슷한 이 마을 전통술은 걸쭉하지만 깔끔한 맛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26일은 구로베협곡 관광열차를 타러 우나즈키라는 온천 마을로 갔습니다. 산이 높고 깊어 날씨 변동 심합니다. 오픈된 기차가 느릿느릿 협곡을 따라 다테야마 산 속 깊이 들어갑니다. 왕복 2시간인데 중간에 내려 산속 마을을 구경하고 온천이 흘러나오는 냇물에 발을 담금니다. 온천마을의 원천이라고 합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함께 흘러서 마을로 내려갑니다. 금방 소나기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더니 어느새 구름이 걷힙니다. 40도의 온천물은 발을 오래 담그고 있기에 너무 뜨거워 계곡의 찬물로 오락가락 합니다.

 

이런 데로 어떻게 길을 냈을까 싶은 깊은 곳 외딴 역에도 역무원 너댓 명이 근무합니다. 관광열차여서 일까도 싶지만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탓일 거라 짐작해봅니다. 하긴 토야마 시내에서 작은 공사현장에서도 안전모에 안전띠, 일정한 작업복을 똑같이 입고 있는 걸 봤을 때도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좀 지겨운 모양입니다. 와이파이 되는 데에만 옹기종기 모여 있으려고 하고 조금 걸으면 얼마나 더 가야하는가 묻습니다. 거기에 비해 예온이와 구빈이는 둘이서 나름대로 놀이를 찾아내거나 이곳저곳 구경하며 다닙니다. 아이들에게 식당을 알아보라 했더니 바로 옆에 있는 소바집에서 먹는다고 합니다.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돈까스 덮밥 그림을 붙여놓은 집을 가리키며 가서 좀 알아보라고 했더니 힘들다고 그냥 여기서 먹는다고 합니다. 소리샘이 찾아가서 확인하고 돈까스덮밥이 맞다고 외치니, 그제서야 우르르 몰려갑니다밥을 먹고 전통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간다고 하니 다들 시큰둥합니다. 연극쌤께서 여기까지 왔는데 안 가볼 수 없다고 다녀오라고 하니 뾰루퉁해서는 비옷을 줘도 받지도 않고 돌아가 버립니다.

 

3일째 되던 날, 우리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일정을 공유는 하되 함께 가고 아니고는 자유의사에 맡기고 점심과 저녁식사 값을 나눠주고 알아서 먹기로 했습니다. 전날 밤 아이들에게 이렇게 하는 게 어떤지, 좋다면 밥값으로 얼마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 생각해보고 아침에 서로 얘기 나누어서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 아침밥만은 호텔에서 같이 모여서 먹기로 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온천을 갔을 때도 춥고 힘들다며 중간에 되돌아오기 일쑤입니다. 어른들은 그냥 아이들이 하는 대로 두고 보기로 합니다. 뭐 딱히 꼭 가야하는 것도 아니고 꼭 봐야할 것도 아니니 각자가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각자의 여행을 하는 걸로 생각하기로 합니다.

 

어렵게 알아보고 잔뜩 긴장돼서 힘들게 운전해서 왔는데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어른들의 생각일뿐이니 강요하지는 말기로 합니다. 하긴 피가 끓는 젊은 날에 산으로 촌으로만 데리고 다니니 이게 뭔가 싶기도 했겠지만 말입니다. 아이들이 토야마 대학로를 알아서 찾아간 것은 그런 이유이겠지 싶었습니다. 드넓은 대지를 달려야 될 망아지를 고삐를 죄서 몰고 다니는 형국이니... 하지만 지갑을 잃어버려 겨우겨우 경찰서에 가서 찾아오는 일은 어른이어서 이해하기가 더 어려운 일만은 아니겠지요? 아무튼 모두가 지갑을 찾으러 간 사람을 기다리는 지루함보다는 지난밤에 잃어버린 지갑을 아침에 경찰서에서 찾아오는 이곳이 신기하긴 했습니다.

 

 

 

 

 

 

 

 

 

 

 

 

 

 

 

 

 

 

 

 

 

 

 

 

 

 

 

 

 

 

 

 

 

 

 

 

그래서 토야마 시내에서의 마지막 날인 27일은 온종일 자유시간으로 정했습니다. 내일부터 산골마을인 토가촌으로 들어가면 선물을 산다거나 구경한다거나 하는 건 못할 테니 내일 아침까지 자유시간입니다어른들은 호텔 구하느라 방황했던 도야마 시내를 그야말로 소요완보했습니다. 공원에서 미끄럼도 타고 에도시대 고성을 둘러보고 미술관에서 전시회도 구경합니다. 토야마 현청에 딸린 디자인 생활용품점에서 북유럽틱한 온갖 제품들로 눈요기를 하고-예쁜 게 많은데 너무 비싸서- 가게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십니다. 오랜만에 여유를 즐깁니다.

 

그리고 현청 로비와 전시실에 걸린 마이니치 신문사 주최의 서예대전 입선작들 전일본 순회 전시회를 구경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알고 보니 한 사람에 600엔을 내고 입장해야 하는데 멋모르고 들어가 유유히 1,2층 전시관을 다 돌아보고 나왔답니다. 구빈맘의 간단한 서예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리고 저녁엔 우연히 찾은 한국식당에서 부대찌개와 소주를 마시고 내일 가야할 길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인터넷만 뒤지다가 사장님이 전화로 이것저것 알아봐주니 기차시간에 대한 우리의 고민도 함께 풀립니다. 이렇게 우리 토야마 시내에서의 어렵고 힘든 그렇지만 계획되지 않아서 재밌었던 일정은 끝이 났습니다. 내일은 산골마을, 토가무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일본에 온 최종 목적지로 향합니다. 28일부터 30일까지는 토가무라 연극촌에서 지냈습니다. 이제부터 밥 먹고 놀고 연극 보고 잠자는 일만 남았으니 부담도 없고 편합니다. 28일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토야마 외곽 동네로 이동했습니다. 엣추야쓰오라는 마을에서 토가무라에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토가무라에 들어가는 버스는 오전 10시쯤에 한 번, 오후 4시쯤에 한 번 하루에 딱 두 번입니다. 25인승쯤 되는 버스가 어느새부턴가 1차로 밖에 없는 산길을 구불구불, 느릿느릿 갑니다. 강원도 어디쯤, 남원 쪽에서 노고단을 오르는 길보다는 조금 덜한 길을 따라서 토가무라를 찾아갑니다. 토가무라 연극축제에 가는 사람들은 우리 말고도 몇 팀이 더 있습니다.

 

토가무라에 도착해서 텐트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침낭과 바닥 매트를 받고 정해준 텐트에 짐을 풉니다. 첫날 저녁 6, 8, 10시 모두 세 편의 연극을 보기로 했습니다. 첫번째는 우리나라 극단의 최인훈 선생이 쓴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어이>라는 연극입니다. TV에서 본 듯한 사람들도 나옵니다. 아기장수에 관한 설화를 배경으로 만든 연극인데 눈시울을 붉히게 합니다. 극장은 일본 전통 가옥 형태로 내부는 200명쯤-예약한 사람들만 들어갑니다. 현장 대기자들이 2,30명 정도 객석주변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들어가는 소극장입니다. 무대와 객석은 살짝 구분되어 있을 뿐입니다. 일본어 자막이 어디 있을 텐데 해서 찾아보니 우리네 대들보 같은 데에 자막이 나오고 있습니다.

 

8시 공연은 외부 노천극장입니다. 중국 극단이 <안티고네>를 상연합니다. 비가 와서 무대바닥이 미끄러운데 배우들은 맨발이고 관객들은 비옷을 입고 구경을 합니다. 야외무대인데도 250명 내외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실내극장 두 곳도 모두 250여명 내외로 빽빽이 앉아서 봅니다. 예약을 하면 단지 번호표만 나눠주고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은 대기하다가 대부분 들어갑니다. 그 골짜기까지 찾아왔으니 웬만하면 관객들이 밀착하고 앉아서 들어오게 합니다. 12쯤에 <일렉트라>를 마지막으로 오늘 공연이 끝납니다. 티켓값은 따로 받지 않고 각자 알아서 기부를 합니다. 봉투 겉면에 이름과 액수를 적어야 되는 게 우리 학교와는 다르지만 그곳의 <마음 모으기>로 이해합니다.

 

29일 토가무라의 아침은 가느다란 빗줄기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간밤에 계속 비가 내렸습니다.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도 텐트 안이 습하지 않고 침낭 속이 고실고실하네, 라는 생각이 잠결에도 들었습니다. 느지막이 일어나 2km떨어진 온천으로 향합니다. 갈 때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고 올 때는 맑고 상쾌한 몸으로 걸어옵니다. 벌써 벼를 벤 논도 있고 메밀꽃이 핀 논도 보입니다. 동네를 빙 둘러싼 산등성이에는 안개 같은 구름이 휘감고 있습니다. 지난밤에 본 연극에 대해 서로 얘기 나누고 연극쌤의 주 관심사인 농사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이곳과 자매결연을 맺은 평창군 식당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20년 넘게 자매결연 맺은 두 동네를 이어주고 있다는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닭죽과 김치전, 제육볶음을 일본틱하게 만들어서 팔고 있습니다. 그분 덕분에 우리는 반대로 나름 한국틱한 음식을 먹고 써비스로 김치전도 얻어먹습니다.

 

다시 텐트에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가져간 책을 그제서야 펴들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리고 3시에 이곳 촌장인 스즈키 다다시 선생이 연출한 <리어왕>을 관람합니다. 30대의 젊은 연출가가 귀향을 해서 연극촌을 만든 지 올해로 4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반세기를 이어온 이곳의 힘은 뭘까 생각해봅니다. <리어왕>에는 다국적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모국어로 자기 역할을 연기합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인 배우가 세 명이 출연합니다. 비중 있는 역할이어서 극의 흐름을 따라가게 해줍니다. 스즈키 다다시 선생은 연극의 근본에 대해 고민하며 일본 전통 연극을 접목시켜 스즈키 메소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본 다다미방의 문을 열고 닫고 하는 걸로 무대장치를 대신합니다. 배우들은 그 문으로 등퇴장을 합니다.

 

다국적 배우들이 각자 자신의 모국어로 연기할 때 낯선 나라에 이방인으로 와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영어라도 잘 할 걸, 하는 아쉬움이 그동안 있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에 있어서 대화 이전에 뭔가가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버스를 기다리다 만나 오사카에서 왔다는 대학생과의 짧은 만남 그리고 연극촌에서도 계속 만났지만 인사 정도만 하고 헤어진 일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마을버스를 타고 산골에서 내려올 때 버스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좀 달랐습니다. 연극을 본 이후라서 일까요. 도쿄에서 왔다는 아가씨 두 명이었는데 기차표를 끊어주고 공항버스 시간을 알아봐주고 버스 타는 곳까지 함께 뛰어주고 통하지 않는 영어, 일본어로, 몸짓으로, 웃음으로 얘기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으로서의 절실함이 있었고 그들은 정성으로 우리를 대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환대를 느낄 수 있었고 그들도 우리의 고마움을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로 헤어지며 안아주고 인사할 때 살짝 눈물이 흐르는 그녀를 봤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이라고 하기에는 그 마음의 따뜻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다국적 배우들이 연기하는 리어왕은 왕실 내 이야기이기 전에 낯설거나 친숙하거나 그런 사람들 간의 관계맺음에 대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SCOT가 조선일보에 제공한 사진입니다. 조선일보 인터넷판에서 무단으로 옮겼습니다. 문제되면 삭제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극은 밤 8시 야외극장에서 관람했습니다. 이곳 스즈키 컴퍼니 오브 토가, SCOT의 <세계의 끝에서 안녕>이란 작품입니다. 어제 봤던 야외극장과는 다른 곳으로 그리스 원형극장을 본따서 만들고 무대 뒤편으로 연못이 있고 숲이 우거져 있습니다. 번호표가 700번대까지 있었고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하면 거의 800여명은 될 듯합니다. 일본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자세히 알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극 중 불꽃놀이가 여러 차례 펼쳐져서 나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불꽃놀이는 전쟁하는 형상이기도 하고-비행기가 편대를 이루는 모양, 미사일, 기관총을 쏘는 모양과 소리 등- 꽃봉오리 형태나 전통적인 불꽃놀이 모양 등이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연극이 끝나고 스즈키 선생이 무대에 나와서 인사를 하고- 이 분은 객석 관객을 자리를 정리해주거나 안내하거나 끝나고 인사를 하거나 하며 간혹 나타났는데 영락없는 동네 할아버지입니다.- 외국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그 사람들과 함께 이 연극의 전통이라는 행사를 마지막으로 진행합니다. 그것은 나무로 만든 사케 동이를 절구로 내려쳐서 뚜껑을 따고 관객 배우 스텝 모두가 함께 나눠 마시는 일입니다. 애초에 입장할 때 종이컵과 방석을 하나씩 나눠줬습니다. 나는 연극쌤과 함께 무대에 서서 두 잔을 얻어 마시며 아리가또~ 했고, 술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우리는 텐트촌으로 돌아와서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자유시간과 경비절약으로 아이들을 쪼기도 했으니 오늘 다함께 한잔씩 하자고 했습니다. 어른들은 사케를 마시고 아이들은 캔맥주를 조금 마셨습니다. 안주와 야식이 부족하지 않도록 골고루 시켜서 먹었습니다. 그동안 경비 때문에 먹는 데에 아쉬움이 있어서 미안했습니다. 그나마 입에 맞지도 않았는데... 돌아가며 그동안의 소회를 나눴습니다. 두 번 세 번 돌아가며 이야기 하고 또 자유롭게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은 연극이 신선했다거나 어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아쉽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자리에 함께 올 수 있어서 좋았다고도 했습니다. 어른들도 돌아가며 말을 했는데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 중간에 끼어서 아이들 편에 조금 더 발을 담그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게 맥주캔을 조금 더 마셔도 된다고 하고 재밌게 놀다가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자고 했습니다.

 

30일 아침 한국으로 돌아가는 아침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애초에 한국 연극팀 버스를 얻어 탈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팀도 버스가 작아서 어렵다고 했습니다. 12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7시쯤 마을버스를 탑니다. 다시 기차를 타고 공항버스를 타야하니 기차시간, 공항버스 시간과 타는 곳 등을 알아봐야 합니다. 비행기 수속 시간이 빠듯하지 않게 아침 일찍부터 서두릅니다.

 

서두르는 우리가 무색하게도 이곳이 시골은 시골인가 봅니다.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운전기사가 모시모시, 하더니 오던 길을 돌아가서 사람들을 태우고 갑니다. 우리네는 아무리 군내버스라고 이러지는 않는데...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다니는 버스니 동네 사람들이 서로 그렇게 이용하는 모양이구나 합니다. 차는 산길을 무지하게 천천히 갑니다. 버스에서 우리는 옆자리에 앉은 노리꼬와 준꼬 씨를 만났습니다. 기차를 한 번 놓치고도 도야마 공항버스를 간발의 차로 탈 수 있었던 건 두 아가씨 덕분이었습니다.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고 혹시라도 한국에 온다면 연락하라는 말을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을 담아서 하는 걸로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우리는 버스를 타기 전에 서로 꼭 안아주었습니다.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를 빠져 나올 때 우리는 토야마와 작별인사를 했습니다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보다는 토야마를 떠난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며칠 동안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고생했고, 도로 위에서 운전대를 잡고 부르르 떨었고, 함께 간 아이들과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했고, 그걸 푸는 과정이 있었고 그리고 한편으로 여유를 갖고 소요완보했던 곳이어서 각별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산골에서 만나고 바라본 사람들, 그곳에서 본 연극무대와 배우들, 맑고 청량한 비오는 산골마을의 정경 같은 것들이 우리를 아쉬움에 젖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짠해져 온단다.

안녕, 토야마!

さようなら 富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