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첫날 비가 내리네요. 도가무라에 있을 때 비가 오다가 맑다가 또 비가 오다가 구름이 안개처럼 둘러싸이곤 했는데... 높은 지대라 날씨 가 변동이 심해서 비옷을 늘 챙겨서 다녔는데..
29일 도가무라의 아침은 가느다란 비줄기 속에서 시작됩니다. 간밤에 계속 비가 내렸습니다.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도 텐트 안이 습하지 않고 침낭 속이 고실고실하네, 라는 생각이 잠결에도 들었습니다.
느지막이 일어나 2km떨어진 온천으로 향합니다. 갈 때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고 올 때 맑고 상쾌한 몸으로 걸어옵니다. 벌써 벼를 벤 논도 있고 메밀꽃이 핀 논도 보입니다. 동네를 빙 둘러싼 산능성에는 구름이 안개처럼 휘감고 있습니다. 지난 밤 본 연극에 대해 서로 얘기나누고 연극쌤의 주 관심사인 농사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이곳과 자매결연을 맺은 평창군 식당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20년 넘게 자매결연 맺은 두 동네를 이어주고 있다는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닭죽과 김치전, 제육볶음을 일본틱하게 만들어서 팔고 있습니다. 그분 덕분에 우리는 반대로 나름 한국틱한 음식을 먹고 써비스로 김치전도 얻어 먹었습니다.
다시 텐트에서 빗소리를 들으면 가져간 책을 그제서야 펴들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리고 3시에 이곳 촌장인 스즈키 다다시 선생이 연출한 리어왕을 관람합니다. 30대의 젊은 연출가가 귀향을 해서 연극촌을 만든지 올해로 5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반세기를 이어온 이곳의 힘은 뭘까 생각해봅닏. 리어왕에는 다국적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모국어로 연기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인 배우가 세 명이 출연합니다. 비중 있는 역할이어서 극의 흐름을 따라가게 해줍니다. 스즈키 다다시 선생은 연극의 근본에 대해 고민하며 일본 전통 연극을 접목시켜 스즈키 메소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본 다다미방의 문을 열고 닫고 하는 걸로 무대장치를 대신합니다. 배우들은 그 문으로 등퇴장을 합니다.
다국적 배우들이 각자 자신의 모국어로 연기할 때 낯선 나라에 이방인으로 와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영어라도 잘 할 껄, 하는 아쉬움이 그동안 있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에 있어서 대화 이전에 뭔가가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버스를 기다리다 만나 오사카에서 왔다는 대학생과의 짧은 만남과 연극촌에서도 계속 만났지만 인사 정도만 하고 헤어진 일에 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마을버스를 타고 산골에서 내려올 때 버스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좀 달랐습니다. 도쿄에서 왔다는 여자 두 명이었는데 기차표를 끊어주고 공항버스 시간을 알아봐주고 버스 타는 곳까지 함께 뛰어주고 통하지 않는 영어, 일본어로 몸짓으로 웃음으로 얘기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으로서의 절실함이 있었고 그들은 정성으로 우리를 대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환대를 느낄 수 있었고 그들도 우리의 고마움을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로 헤어지며 안아주고 인사할 때 살짝 눈물이 흐르는 그녀를 봤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이라 하기에는 그 마음의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다국적 배우들이 연기하는 리어왕은 왕실 내 이야기이기 전에 다국적 사람들 간의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극은 밤 8시 야외극장에서 관람합니다. 어제 봤던 야외극장과는 다른 곳으로 그리스 원형극장을 본따서 만들고 무대 뒷편으로 연못이 있고 숲이 우거져 있습니다. 번호표가 700번대까지 있었고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하며 거의 800여명은 될 듯합니다. 일본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자세히 알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극의 전개에 불꽃놀이가 포함되어 있어서 나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불꽃놀이는 전쟁하는 형상이기도 하고-비행기가 편대를 이루는 모양, 미사일, 기관총을 쏘는 모양 등- 꽃봉오리 형태나 전통적인 불꽃놀이 모양 등이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극 중에 세 번 정도 불꽃놀이가 펼쳐지니 제작비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극이 끝나고 스즈키 선생이 무대에 나와서 인사를 하고- 이 분은 객석 관객을 자리를 정리해주거나 안내하거나 끝나고 인사를 하거나 하며 간혹 나타났는데 영락없는 동네 할아버지 스타일이다.- 외국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그 사람들과 함께 이 연극의 전통이라는 행사를 마지막으로 진행한다. 그것은 나무로 만든 사케 동이를 절구로 내려쳐서 뚜껑을 따고 관객 배우 스텝 모두가 함께 나눠마시는 일이다. 애초에 입장할 때 종이컵과 방석을 하나씩 나눠준다. 나는 연극쌤과 함께 무대에 서서 두 잔을 얻어 마시고 아리가또~ 했다. 술맛이 아주 좋았다.
우리는 텐트촌으로 돌아와서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동안 자유시간과 경비절약으로 아이들을 쪼기도 했으니 오늘 다함께 한잔씩 하자고 했다. 어른들은 사케를 마시고 아이들은 캔맥주를 마셨다. 안주와 야식이 부족하지 않도록 골고루 시켜서 먹었다. 그동안 경비때문에 먹는 데에 아쉬움이 있어서 미안했다. 경비관리를 내가 했다. 돌아가며 그동안의 소회를 나눴다. 두 번 세 번 돌아가며 이야기 하고 또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연극이 신선했나 보다 그리고 어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아쉽다고 했다. 이런 자리에 함께 올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맥주 두 캔을 먹게 하고 자유롭게 놀다가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자고 했다.
30일 아침 한국으로 돌아가는 아침에도 비가 내렸다. 애초에 한국 연극팀 버스를 얻어 탈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팀도 버스가 작아서 어렵다고 했다. 12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7시 15분 마을 버스를 탔다. 다시 기차를 타고 공항버스를 타야하니 기차시간, 공항버스 시간과 타는 곳 등을 알아봐야 했다. 비행기 수속 시간이 빠듯하지 않게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시골은 시골인가보다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운전기사가 모시모시 하더니 한참을 오던 길을 돌아가서 사람들을 태우고 간다. 우리는 아무리 군내버스라고 이러지는 않는데...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다니는 버스니 동네 사람들이 서로 그렇게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차는 산골길을 무지하게 천천히 간다.
그 버스에서 우리는 옆자리에 앉은 노리꼬와 준꼬 상을 만났다. 기차를 한 번 놓치고도 도야마 공항버스를 간발의 차로 탈 수 있었던 건 두 아가씨 덕분이었다. 서로 이메일을 주고 받고 혹시라도 한국에 온다면 연락하라는 말을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을 담아서 하는 걸로 고마움을 표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를 빠져 나올 때 우리는 토야마와 작별인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보다는 도야마를 떠난다는 아쉬움이 컸다. 며칠동안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고생했고 도로 위에서 긴장했고 함께 간 아이들과 적당한 긴장관계 그리고 그걸 푸는 과정 그리고 한편으로 여유를 갖고 소요완보했던 곳이어서 각별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산골에서 만난 사람들, 그곳에서 본 연극무대와 배우들, 맑고 청량한 비오는 산골마을의 정경 같은 것들이 우리를 아쉽게 만들었다.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짠해져 온단다. 안녕, 도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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