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은 <새로운 천 날>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 지 400일이 되어 처음을 돌아보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월호가 우리에게 준 가르침으로 3년을 살아보자고 했던, <삶을 위한 304인회>가 모이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날 두더지께서 와온바다가 붉게 물어들어갈 시각에 운동장으로 들어 오셨습니다. 9학년 아이들과 함께 인도로 떠나신 지 40여 일이 훌쩍 넘었습니다.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환호했고, 오후에 7학년 북콘서트를 함께했던 사람들과 도서관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반가워했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포옹으로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구운 생선과 파릇한 배추쌈, 김치 한 보시기와 된장국으로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집에서 먹는 밥이 그리운 것은 떠나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먼 곳으로 떠났다 돌아온 사람이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은 모국어를 쓰는 것처럼 편안하고 안도감을 갖게 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풍경방에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았을 때 어릴 적 밥상이 생각났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피워 음식을 하던 부엌은 좁고 시커먼 끄을음 속이었습니다. 집안에 제사나 큰 일이 있을 때면 그 부엌에서 맛있고 다양한 음식들이 만들어져서 상에 올랐습니다. 그때 그 부엌과 그 밥상을 보고 할머니, 어머니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저 부엌에서 저 음식들이 나오다니... 도서관에 사람들이 모이고 상이 차려지고 마주앉아 수저를 들 때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아내 들은 여전히 그렇게 살아오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때가 되자 우리는 정갈하게 손을 씻었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을 때 우리도 함께 둘러앉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처럼 둘러앉은 작은 초에 불을 밝히고, 함께 노래했습니다. 무지개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도서관을 휘돌아 나가서 차가운 겨울 밤공기를 가르며 울려퍼질 때 우리의 목소리를 그 위에 살짝 얹었습니다. 한 송이 꽃 속에 천지가 있고, 한 송이 꽃 속에 우주가 있다는 걸 우리는 어느 때쯤 알 수 있을까요? 내 안에 고맙고 뜨거운 사랑이 아직 팔딱거리고 있을까요? 뜨거운 사랑아, 치솟아 올라서 누더기 인생을 불질러 버려라. 바람아, 바람아 불어 오너라. 너를 맞아서 나는 너울너울 춤을 추리라. 이 차가운 겨울의 얼음 녹이며...
노래가 끝나고 작은 정적이 찾아올 때 브라보가 살며시 일어나서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에게 도를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하는 일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생각 없이, 멍한 상태에서, 건성으로, 아무렇게나, 버릇을 좇아서 하지 않도록 순간마다 깨어 있어라. 밥 먹을 때는 정성껏 먹되 그 밥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지금 밥을 먹고 있는 게 누군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먹고 사람을 만날 때는 정성껏 만나되 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지금 그를 만고 있는 게 누군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만나고 산책할 때는 정성껏 산책하되 한 걸음 한 걸음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지금 산책하고 있는 게 누군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걷고... 모든 일을 그렇게 하여라."
우리는 서로에게, 나에게 삼배를 한 후 반배를 하고서 마주했습니다. 무지개와 바람빛이 두더지를 위해 리코더를 연주합니다. 리코더 소리는 촛불처럼 간간히 흔들리지만 우리는 가만히 듣습니다. 리코더로 연주하는 My Way가 끝나자 사회를 보기로 한 민들레가 이야기합니다. 한 사람이 깨어있다는 것은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을 깨어있게 합니다. 우리는 그 한 사람이 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둘러앉은 이런 자리는 그러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민들레가 말할 때 사람들은 민들레를 보고 듣습니다. 민들레의 이야기를 들은 후 우리는, 두지지께서 인도에서 달라이 라마 존자로부터 받은 법명인 땐진 직땔을 부르며 두더지를 모셨습니다.
인도에 관한 이야기는 할만한 게 못 되는 거 같아요. 겨우 40일 남짓에, 인도 전체의 10분의 1쯤 돌아본 정도니까 말입니다. 그곳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교육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는 나를 보고 사실, 나도 좀 놀랐어요. 그래서 교육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지금 내게 남은 기억 중 하나가 있는데 마하트마 간디에 관한 거예요. 마음이 울컥했던 장면이 있어요. 델리에 간디추모공원이 있어요. 간디가 암살 당한 곳, 간디 박물관, 간디를 화장했던 화장터 이렇게 세 군데가 있는데 화장터는 화장을 했던 자리 그대로 추모공원이 만들어졌어요. 잔디밭에 나무 밖에 없어요. 그걸 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어요. 인도에 관해서 책으로 봤던 게 그걸 통해서 살아있는 인도의 모습으로 다가 왔어요. 순례 중에 가장 많은 질문을 하게 된 것은 교육에 관해서 그리고 가장 많이 내 마음에 자리잡은 것은 남은 여생을 간디처럼 살고 싶다, 하는 것이었요. 그리고 또다른 하나는 달라이 라마 존자와의 만남, 이렇게 크게 두가지 정도 생각할 수 있겠네요.
배움터에 돌아와서 아이들을 만나고 여러분을 보니 다들 얼굴이 빛났어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 빠지지 않는 게 있는데 여기 아이들은 다르다, 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하는 말이었어요. 이게 그분들의 인사치레나 우리 아이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돌아와서 보니 그 분들이 하는 말이 느껴졌어요. 내가 없어서 이 사람들이 살아나나...^^ 뭔지 모르겠지만 이런 게 지속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은 생기있고, 여러분은 편안해 보여서 참 좋습니다.
처음에도 말씀 드렸지만 인도에 대해서 얘기 하는 건 조심스럽고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들이 흔히 다른 사람에 대해서 너무 쉽게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여행정보지가 현지 여행지에서 맞지 않는 것처럼 내 얘기도 맞지 않을 거예요. 두더지께서 돌아오신 뒤 처음 말씀을 하셨고, 우리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찾아온 질문과 돌아오는 길에 든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인도에서 처음 보게 된 게 간디였어요. 모든 돈에 간디가 들어 있어요. 한국은 화폐 단위마다 다른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인도는 오직 간디만이 있었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는데 영어가 안 돼서 질문을 못 했어요. 참 놀랐어요.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내게 남은 질문 역시도 마하트마 간디였어요. 내 속에 끊임없이 간디가 살아나고 관련된 질문을 지금까지 갖게 됩니다.
-9학년 아이들과 지내는 일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아이들에 관해서는 묻지 않는 게 좋겠는데요...^^ 이 친구들과 40일 넘게 이곳에 왜 오게 됐을까, 이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오기도 어렵고 내가 오지도 않았을 것인데... 그래서 그 질문을 가장 많이 하게 해준 게 그 친구들이에요. 이번과 같은 방식과 내용의 순례를 하려면 우리학교 교육과정이 많이 달라져야한다, 이걸 과제처럼 갖고 왔어요. 아니면 그 또래에 맞게 몸을 움직이게 하는, 산티아고 때처럼 그런 것이든지 가려고 하는 길과 내용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만 할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에 그쪽 아이들은 눈이 깊고 반짝거리고 누굴 봐도 웃음 짓고 반갑게 맞아줘요. 아이나 어른이나 가릴 것 없이...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한국 아이들은 눈부터 달라요. 질문이 없고 무기력해요. 무기력하니 무능력하고... 우리학교의 큰 질문이기도 합니다. 가정에서의 교육까지도 그러한 질문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늘 듣고 얘기하듯 여느 학교와 다를 바 없는 학교가 또 하나 더 있는 건 의미가 없어요. 이런 얘기를 너무 늦지 않게 깊게 해봐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육에 관한 질문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곳에서 티벳의 학교와 인도의 학교를 봤는데 공통점은 살아있는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에요. 학생수도 많고 교육환경이 열악한 데도 아이들의 눈빛이 맑고 사람을 맞이하는 게 달랐어요. 그게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질문을 하다보니 우리의 교육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가정에서의 교육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는 왜 그렇게 할 수 없을까? 우리 아이들은 뭘 먹을 때나 잠시 살아있어요..^^ 배고프다, 힘들다, 잠온다 첫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소회나누기 시간에 나온 아이들의 주된 말입니다. 그런 현실을 본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몰라요. 밖에 나가는 이유가 밖을 보고 나를 되돌아 보는 거라면 순례가 아닌 여행으로써는 괜찮았어요.
-달라이 라마 존자를 만나실 때 어떤 질문을 품으셨는지, 만나실 때 어떤 기분이셨는지요?
그분을 만나보니 알겠는데 여러분과 만나는 것, 우리의 이러한 만남도 우주의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 때문에 만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을 만나게 되는 과정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그곳에 계신 분들도 놀라더라고요. 어떻게 만날 수 있었느나, 기적이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우선에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이 갖고 있는 힘이 있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여러분의 우리를 위한 기도가 느껴졌어요. 존자님과 한국과의 인연을 맺게 해주신 청전스님이라고 계시는데 그분이 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수련의 깊이가 있는지 존자님께서 우리의 기운을 보셨나 보다, 라고 지나가듯 말씀을 하셨어요. 그게 무슨 말일까, 한참을 생각하고 마음에 와닿았어요.
존자님께서 함께하시는 법회를 보면서 예수님이 저러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까이서 뵈니 따뜻함이 느껴졌고 깊은 눈빛이 느껴졌어요. 내 인생에 처음으로 사람이 저럴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꼈는데 그건 달라이 라마여서라기 보다는 사람이 저럴 수도 있구나, 하는 거였어요. 그분은 다정다감한 할아버지 같았어요. 뭐라고 표현하는 게 잘 안 되는데 아직까지 그런 분을 뵌 적이 없으니까. 봄볕 같은 웃음이랄까, 어떻게 전해야하나... 아이들은 느꼈더라고요. 지난 9년 동안 배운 거 없고, 느낀 거 없더라도 너희들 이너생에 그분 한 번 만난 거 그거 하나로 됐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사실 굉장한 사건이에요. 어디서 저런 유쾌함과 따사로움이 나올까,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깨어 있으라, 깨어있기에 대한 방법이 있으시다면...
우선은 아이들에게 놀랐어요. 아이들과 함께 간 곳이 마더 테레사의 집, 타고르의 샨티니케탄, 정토회에서 함께하는 둥게스와리였어요. 특히 둥게스와리는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곳으로 Joy Together Scool이라는 학교에서 그곳 아이들과 어울리고 같이 지냈어요. 인도는 그야말로 신의 나라, 신이 없는 곳이 없어요. 간디를 포함해서 기도와 명상이 그들 생활의 바탕에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하는 걸 그 사람들이 다 하고 있었어요. 그걸 보고 아이들이 상당히 놀라더고요. 거기서도 일과를 마치고 둘러앉아 소회나누기를 해요. 하루 시작 전에도 아침을 먹고 둘러앉아 얘기 나누며 준비를 하고.,.
하루는 인연이 돼서 현지 사람 집에 며칠 머물렀어요. 5시에 기상해서 몸을 씻고 기도하고 청소하고 아침을 먹어요. 지금 우리학교에서 생각하는 노자, 간디, 무위당과 같은 분들과 적어도 인도에서 봤던 간디, 마더 테레사, 달라이 라마의 바탕이랄까, 근본은 기도라고 할 수 있어요. 이점을 우리학교가 잘 봐야 될 거 같아요. 이게 가정과 함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런 게 엉뚱한 어떤 걸 하자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가 다 하고 있는 것이에요. 이것에 대한 뼈대를 세우는 것,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 이것 하나가 다른 학교와 우리학교의 다른 점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이 많을수록, 뭔가를 제대로 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명상을 해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속이고 종당에는 모두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게 됩니다.
-톨스토이는 부잣집에서 나고 자랐지만 노년까지 농민들 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노동, 몸을 쓰며 사는 세상이야말로 진실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는데, 교육과 몸을 쓰는 일을 어떻게 조화롭게 풀어가실 생각이신가요?
티벳에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이 있는데 티벳뿐 아니라 인도 등 여러나라 사람들이 온다고 합니다. 그 대학에 가서 관계자를 만났었요. 그 대학의 정신과 철학에 대해서 물었더니 간디, 비노바 바베, 라마크리슈나의 정신을 이어간다고 해서 우리도 그렇다고 했더니 놀라더고요. 그리고 티벳에서 간디라니 의아하다고 했더니, 2003년에 교육개혁을 했는데, 그 전에는 망명생활로 인도의 교육을 따라하다보니 여러 문제점이 있더랍니다. 그래서 교육개혁이후 교육의 중심을 티벳 불교의 논쟁과 같은, 어릴 때부터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일을 교육하는 것으로 이것이 교육 과정에 들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간디아쉬람이라는 곳을 갔는데 간디의 여제자가 정신을 이어받아서 여성만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하는 아쉬람이라는 이름의 학교가 있었어요. 이곳은 오전에 일을 하고 오후에 공부를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자치와 자립, 소수의 기부만으로 운영됩니다. 고학년은 오전에 저학년을 가르치고 오후에 자기 공부를 하거나 기술을 배우고 농사를 지으며 자치와 자립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우리학교에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게 이것 그리고 기도와 명상입니다. 간디의 정신과 행위가 한 인간 속에서 꽃 피울 수 있을까? 이것이 교육에서 발현될 수 있을까? 우리학교가 이런 토대나 질문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나? 이러한 질문을 갖는다면, 원하고 갈구하고 있다면, 더 집중하고 힘을 모아서 그것을 교육의 중심으로 세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인도 순례 중에 얻은 질문의 답 중에 하나예요.
우리학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당장 12월 5일 민중대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우리학교 문제와 한국사회의 변화가 맞닿아 있어요. 간디라면 어떻게 했을까? 인도에 가보니까 왜 마을을 얘기 했을까, 왜 네루와 정치적으로 결별할 수 밖에 없었을까 등이 이해됐어요. 100년 전의 혜안이 인도사회에 물결치고 있어요.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의 돌파구, 희망을 간디의 삶에서 보는 것이에요. 인도사회에서 전역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거나 혹은 많은 시간이 흐른 오늘날 쇠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을에 가보니 그게 바탕이 되어 있었어요. 우리도 그렇게 좀 삽시다!
그리고 간단하게 순례 뒷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인도에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답니다. 아마도 인도가 갖고 있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인도에서 직접 보고 겪으니 인도에 관한 일반적인 편견에 대해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으며 주제가 있는 소회나누기를 할 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책이나 여행정보지에서 본 인도와 인도 사람에 대해 많이 달랐다고 얘기했답니다. 밥을 사먹는 일, 돈을 쓰는 일에 대해서, 개인별로 지급된 돈을 쓸 때와 공적인 경비를 쓸 때 다르게 반응했던 아이들의 모습에 관한 말씀을 들을 때 돈에 대해, 돈의 사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번과 같은 방식의 순례에 대해서는 더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달라이 라마를 만난 일은 잊지 말고 달라이 라마의 소원처럼 티벳의 자유와 티벳 문화가 인류에게 공헌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두더지께서 덧붙이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잊을 수 없는 게 있는데 환대를 하는 그들 모습이었어요. 일하던 농부들이 농기구를 놓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게스트 하우스에 3대가 모여 사는데 어린아이가 우릴 만났을 때 처음에 겉돌기만 했는데, 내가 두 손을 모으고 나마스떼 하니까 천진난만하게 큰 소리로 나마스떼 하더라고요.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하는 건 잘 해야 겠구나, 그동안 건성으로 해온 거예요.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모으고 했으면 해요. 더불어서 다른 사람 얘길 귀담아 잘 들어주는 것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나는 사랑어린 사람입니다, 하면 되겠죠? 고맙습니다. 우리의 기도문이 인도순례를 원만하게 하는 힘이었어요. 그리고 가는 곳마다 순간순간 천사가 나타나서 길을 안내해주고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도 그런 것들이 모아진 결정체였다고 봅니다. 그동안에 그분은 뵌 사람들이 한두 명이었겠어요? 만남이 특별해지는, 셀레고 반짝이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해요. 잘 안 될지라도 한번 해보자고요.
점차 겨울로 다가가는 날의 밤바람은 앵무산 자락을 돌아서 산을 타고 넘어갑니다. 산자락에 키 큰 소나무가 수군거립니다. 사람들을 비추던 작은 촛불은 하나 둘 사그라듭니다. 도서관 마루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열에 들 뜬 듯 아닌 듯 조용히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이의 눈동자에 촛불 하나가 흔들립니다. 파블로 네루다가 소곤거리며 말을 걸어옵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우리는 두더지를 환영하는 리코더 3중주를 듣고,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었습니다. 도서관 밖으로 겨울바람은 조금 더 세졌고 어둠 속에서 나무들의 웅성거림도 커졌습니다. 민들레는, 인도에서 그리고 각자 있는 곳에서 우리 모두 잘 살고, 잘 다녀오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시간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두더지를 꼭 껴안았습니다. 두더지께서 인도에서 안고오신 울림이 클 것 같은 북과 우리의 질문과 대답이 도서관에 남았습니다. 밤은 깊었고 별은 뜨지 않았습니다. 눈이 올 것만 같은 겨울 초입의 밤에 사람들은 도서관 문을 총총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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