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 가는 그대를 보는 일은 쓸쓸하다. 초저녁 어스름이 깔리면 겨울산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을 타고 가로등이 불을 밝힌다. 동네 이발소 앞에서, 학교 앞에서 가로등이 깜빡, 켜진다. 그대는 낮과 밤 사이로 난 초저녁의 그 길을 따라서 간다. 떠나는 그대가 언제고 다시 돌아올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 그대와 헤어지는 일은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하는 겨울날의 초저녁처럼 쓸쓸하다. 그대가 떠난 길로 손님 두 명을 태운 하사행 시내버스가 종점을 앞두고 급하게 지나간다.
지난 9년 동안 함께했던 친구들이 사랑어린배움터를 떠났습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9년의 시간을 사랑어린배움터에서 보낸 8명의 친구들이 떠났습니다. 그들은 지나온 자기 삶의 한 매듭을 짓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처음 길을 물으며 이곳에 올 때처럼 새로운 길을 찾아서 다시 떠났습니다.
매듭 짓고 다시 떠나는 친구들을 잘 보내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정갈하게 손을 씻고 도서관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불을 밝히고, 마음을 모읍니다. 사람들은 오늘 길을 떠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8명 친구들은 16년 자기 삶의 한 매듭을 지어서 풀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듣고, 보면서 내 삶의 매듭 짓는 일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자신의 길을 찾아서 떠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사랑어린 9학년 김초은, 류은빈, 권도익, 김찬솔, 박재민, 심찬, 이영광, 조은성 8명의 친구들이 매듭을 짓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매듭 짓고 떠나는 친구들의 부모님이 보내온 영상편지를 봤습니다. 아이들이 잘 지낸 것에 대한 고마움, 매듭을 잘 짓고 길을 잘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전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웃었고, 함께 아이들을 떠올렸습니다. 매듭 짓는 가족들이 나와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어린 선물을 전했습니다. 매듭 짓는 친구들을 위해서 7, 8학년 친구들이 2학기부터 색색의 털실로 뜨개질을 해서 목도리를 만들었고, 배움터 전체 아이들이 매듭 짓는 친구 모두에게 편지를 써서 책으로 엮었습니다. 매듭 짓는 언니 오빠 형 들을 위한 날을 정해서 그들을 위해서 배움터 모두가 마음을 모았습니다. 배움터 가족들이 전하는 말을 축하사진으로 찍어서 사진책을 만들었습니다. 김경찬선생님께서 <아무도 모르게 피었다 지는 저 들꽃처럼>을 정성스럽게 새겨주셨습니다. 그 서각작품을 감싸는 주머니를 8학년 엄마들이 밤을 지새면서 한땀한땀 만들었고, 9학년 순례 에세이집인 <별이 빛을 잃어도>도 만들었습니다. 각각 정성을 들였던 사람들이 이러한 의미를 담아서 선물을 전했습니다.
찬솔이는 드럼도 잘 치고, 어른들에게 깍듯하고, 말도 잘 합니다. 그동안 멀리 경기도 용인에서 오고갔습니다. 찬솔이는, 우선 저를 받아주시고 많은 사랑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려요. 올해 저에게 잘 대해주시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추억을 갖고 갑니다. 저를 따뜻하게 대해준 동생들, 배움지기들, 여러 학부모님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찬솔아빠와 엄마는, 같이 했던 학부모님들, 누나, 형들, 배움지기들이 계셔서 지금의 찬솔이가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보답을 할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라며 큰 절을 했답니다. 그리고 찬솔엄마는, 이제 좀 적응할만하니까 떠나게 돼서 아쉽습니다. 이렇게 아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실천해가고 있는 곳을 제가 직접 보고 경험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 건강하시고 사랑이 넘쳐나는 사랑어린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고 하고나서 역시 공주는 결정적일 때 변신을 한다는 걸 증명하듯 "샤랑샤랑 샤라랑~" 했답니다.
때로 너무 벅차거나 감동할 때 말을 하지 못하고 울먹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더욱 가까이 하게 됩니다. 무지개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은성이 아빠가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 서니까 선배 부모님들이 생각납니다. 어느덧 9년을 살아왔습니다. 모두의 사랑 덕분입니다. 저희 가족 모두 절을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추스린 무지개가 말했습니다. 저는 에세이 발표 때부터 참 멋진 아이들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들을 여기 배움터에서 알게 해주었고, 저도 은성이도 그렇고 자기모습을 찾아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은성이의 졸업을 축하하러 외할머니와 고모께서 오셨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등잔밑이 어둡다고 오늘에서야 은성이를 제대로 봤네요. 은성이가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지도 몰랐고요. 에세이 발표 때 어린 아이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은성이엄마, 아빠가 날마다 이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는 거 같던데요, 내년에는 아예 입학을 시켜야할 거 같은데 받아주시렵니까? 할 때 사람들이 웃었고, 이어서 고모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은성이가 이 학교를 다니면서 저에게 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마디는, 평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마침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며 "저것이 평화다."라고 하는 걸 들었어요. 그 어떤 철학자의 말보다도 저에게 울림이 있었어요. 오늘 노래를 부르는 걸 보니 그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은성이 노래소리가 제 마음을 흔들었고 따뜻함을 주었어요. 결코 헛된 배움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은 후배님들도 우리 은성이와 같은 행복을 찾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등학교에 가더니 훌쩍 커버린 서광이가 동생을 축하해주러 왔습니다. 배움터 소식을 알릴 때마다 기나긴 문자메세지를 보내주시옵던 영광이아버님의 문자메세지도 이젠 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여수에 계실 때도, 고흥으로 가신 뒤에도 한달음에 달려오시던 소탈하고 유쾌한 모습을 이젠 언제 뵐 수 있을까요? 일당을 주고서라도 모셔야된다는 시원아빠의 얘기가 농이 아닐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뻗어나가는 사랑어린학교의 발전에 대한 말씀을 하실 분도 당분간은 없을 듯도 싶고... 영광이, 울먹이시던 영광이 엄마, 아빠의 말씀을 차례로 전합니다.
모두에게 고마워요. 후배들과 배움지기, 학부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3년 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잘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큰 애를 보냈을 때 힘든 상태였는데 둘째까지 5년 동안 생활했네요. 이곳에서 배운 건, 아이 삶은 자기들이 잘 가져갈 거라고 믿고 나 자신의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라는 거였어요. 이곳에서 맺은 많은 인연에 감사드리고요 힘든 조건에서도 많은 사랑으로 돌봐주신 배움지기들에게 감사합니다.
정말로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엊그제 여기 온 거 같은데 둘 다 졸업을 하네요. 그동안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데 늘 불러줘서 감사합니다. 어제도 공양간에서 시원아빠가 일당 얼마를 줄테니 와라, 하면서 일당을 경매에 부치기도 했었는데... 앞으로 농사 짓다가 짬짬이 시간나면 들르겠습니다. 못난 나를 그렇게 불러줘서 감사합니다. 다들 건강하시고, 저희 식구가 고흥으로 이사를 가서 새롭게 살게 되었는데 격려해주시기 바라며, 저희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7학년과 8학년 친구들이 떠나는 선배들을 위해서 리코더를 연주했습니다. 헤어지는 벗들의 노래, 이별의 노래를 불렀었습니다. 우리들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서 배움의 기쁨을 함께 나눴는데...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네요. 부디 잊지 마세요. 그대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참된 배움길을 가자고 했던 우리의 마음을 잊지 말아주세요. 안녕.
그리고 은결이가 길을 떠나는 선배 언니, 오빠에게 마음을 전했습니다.
언니, 오빠 들 이제 졸업하는구나. 축하해!
그리고 많이 아쉽다. 별로 친해지지도 못하고 어색하기만 한 것 같은데...
졸업하고도 우리학교에 꼭 자주 놀러와! 알았지!
난 편지나 글 쓰는 거 잘 못해서 어떨지 모르겠어.
좀 이상해도 언니 오빠들이 잘 들어 줬으면 좋겠어. 정성스럽게 썼으니까!
언니, 오빠들은 오늘을 좋고 행복하게 보낸 거 같아? 좋은 거 같아? 지난 9년은 어땠어?
물론 매일매일 좋고 행복하게 보낼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좋은 거 같아? 그럼 됐고!
찬이 오빠는 옆 집 살 땐 친했던 거 같은데 이사가니까 어째 멀어진 거 같아.
은성이 오빠는 우리 오빠가 여기 다닐 때는 친했는데 우리 오빠가 전학가고 난 뒤에는 내가 누구 동생인지도 모르는 거 같아.
그리고 여러모로 고마워. 초딩들이 귀찮게 해도 많이 화내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마워!
잘 생긴 초은이 언니, 착해보이는 은빈 언니, 동생들하고 가끔 노는 영광이 오빠, 재밌는 도익오빠, 당당한 찬이오빠, 친절한 찬솔오빠,
동생들 앞에서는 말이 없는 거 같은 재민이 오빠, 멋진 은성이 오빠.
모두 정말 졸업 축하해 연극도 너무 재밌게 잘 봤어.
재주도 많은 언니, 오빠들이네!
이제껏 잘 엮어나갔으니까 마지막 매듭도 잘 짓자.
마지막 매듭을 잘 지으면 새로운 길도 잘 엮어나갈 수 있을 거야.
화이팅!
사랑어린배움터를 떠나서 자기의 길을 찾고 있는 선배들도 왔습니다. 길 떠난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반갑고 대견합니다. 자신의 꿈을 키웠던 곳, 자기 모습을 찾기 위해 둥지를 틀었던 곳을 찾아오는 일은 오늘의 나를 되돌아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승이가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을 했습니다. 졸업하고 나서는 이곳에서 못했던 거 하고 나녔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 고등학교가 정해져서, 목표를 정해서, 그 목표를 향해서 최선을 다했는데 너희들도 목표를 정해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아. 졸업하면 열심히 놀고, 먹고 그렇게 잘 지내렴!
김경찬선생님께서는 매듭 짓는 날에, 매듭 짓는 친구들에게 전하는 화두와 같은 말씀을 서각으로 정성스럽게, 밤을 새우면서 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친구들과의 인연을 말씀하셨습니다. 올해 졸업생들하고는 인연이 남다릅니다. 2013년 2월, 처음 시작하는 날 같이 걸었는데... 어리기만 하던 친구들이 어느새 커서 이렇게 매듭 짓는 날을 또 같이 하게 돼서 기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시크한 초은이,재민이, 영광이 모두 생각나고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처음과 끝을 같이 해서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찍찍, 찌익~ 프레드릭의 들쥐가족 도익이네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먼 걸음을 하셨습니다. 도익이는, 그동안 바빠서 졸업한다는 생각도 못했는데 갑자기 졸업하게 됐어요. 여기 있는 후배, 배움지기, 학부모들이 있어서 무사히 왔어요. 뭔가 해드릴 게 없어서 미안하고... 그동안 감사했어요.
도익아빠인 망태는, 3년 동안 좋은 추억을 갖고 졸업은 하지만 마음만은 늘 여기로 올 겁니다. 도익이 덕분에 많은 시간 여러분들과 재밌게 잘 지내다 갑니다. 도익이랑 잘 지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도익이가 이곳에 올 때 저 어린 걸 보내선 안된다고 했는데 이제 와보니 선생님들 덕분인지, 여러분 덕분인지 도익이가 의젓하고 많이 성장해서 이제는 조금 마음도 놓이고 앞으로 지 할일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사랑의 교육을 잘 받은 여러분들이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나라를 위하고, 자기를 위하고, 가정을 위하여 휼륭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오며 이로써 마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은 늘, 늙은 내가 뭔 할말이 있겄냐, 하시지요. 우리 손자가 쪼매만할 때 보냈는데, 간다고 돌아설 때마다 내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영광입니다. 행복하고 좋습니다. 두 말 할 것도 없고요, 가는 걸 보며 눈물을 흘렸거든요. 어느 곳엘 가는지... 오늘에서야 와봤습니다. 그런데 우리 손자 잘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엄마와 함께 배움터에 자주 왔었던 도익이누나가 할아버지 말씀을 들으며 웃었습니다. 도익이가 중학교를 정할 때 제가 다니는 실상사 작은학교로 오라고 했는데 안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잘 한 거 같아요. 저희 학교 왔으면 도익이가 지금처럼 잘 크지 못했을 거 같아요. 여기 와서 잘 큰 거 같아요.
배움터에서 3년을 살았지만 아주 오래 산 거 같은 보리밥은 늘 유쾌합니다. 도익이도 좋은 친구들 하고 3년을 살았지만, 저도 아시죠? 여러분들이 제 친구들인 거... 박수 한번 주세요. 고맙습니다! 앞에서 절을 많이 해서 안할라고 했는데 아버님이 꼭 절 해야 된다고 하네요. 할아버지께서 아, 그래도 우리가 먼저 해야 되지 않겄나? 사람들이 웃으며 손뼉을 쳤고 같이 절을 했습니다.
찬이는 짧고 간결합니다. 잘 지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찬이아빠는 영상편지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모양입니다. 우선 졸업생 학부모 동영상을 촬영한 피디님께 강력히 항의합니다. 저희가 마지막으로 촬영했는데, 앞에 촬영한 내용이 어땠느냐, 우리 촬영은 만족하느냐? 고 물었더니 흔쾌히 정말 만족스럽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속았다! 이런 느낌이 드네요. 빨리 마무리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오면서 면도를 했슴디다. 1년에 면도하는날이 며칠 안 되거든요. 특별히 어떤 장소나 날을 위해 면도하는 날은 1년에 한두 번 밖에 안 됩니다. 장학사가 와도 공개수업 때도 안 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면도를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실은 앚아있으면서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라는 말을 많이 했던 거 같은데 그것은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랴 한다.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찬이가 잘 살겠다고 이야기 했는데 저도 잘 살겠다,라고 다짐해봅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들은 늘, 손주들이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할머니들은 늘, 동네에서 어른들을 몇 번을 만나도 인사를 잘해야 헌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그림자도 밟으먼 안된다이~ 하십니다. 할머니들은 늘, 손주에 증손주까지 키우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이고, 힘든께 그냥 유모차에 태우랑께 하면, 할머니는 아이, 그래도 이리 포대기로 싸서 업어야제 잘 잔당께, 하시면서 증손주를 안고 아파트 복도를 왔다갔다 하십니다. 찬이 외할머니도 그러하십니다. 외할머니는, 찬이가 여기 학교를 이제 떠난다니 서운하네요. 내가 키우고 돌봤는데 내 품을 벗어난다 싶으니까 영 서운하네요. 찬아, 어딜 가든지 착실하게 잘해야 헌다. 여기 학교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엄마와 함께온 찬이엄마는, 저는 아직 다빈이가 있어서 졸업하는 기분이 나지 않았는데, 오늘 이 자리에 서보니 다르네요. 우리 찬이가 9년 동안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서 이 자리에 서있는 거 같아서 모든 분들에게 너무나 고맙습니다. 이곳에서의 삶이 찬이에게 큰 힘이 될 거라 믿고, 저도 그렇고 가족들도 그렇고 이곳을 다니면서 많은 공부를 한 거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학생으로서 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간 못 본 사이에 훌쩍 큰 예림이가 왔습니다. 예림이는 1학기에 고입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생각한 바가 있었는지 배움터 생활을 그만 두었습니다. 모두 반갑게 예림이를 맞이했습니다. 어린 친구들과도 곧잘 놀아주던 예림이는 친구들이 매듭 짓는 모습을 보러 혼자서 왔습니다. 중간에 그만둔 게 못내 아쉬웠을까요? 예림이는 말하는 내내 울먹였고 곁에서 지켜보던 다하지도 울컥했습니다.
예림이는 자기 꿈을 찾아가는 중인 거 같습니다. 예림이는, 저는 사랑어린학교를 다니다가 중간에 나갔어요. 그냥 좀... 다니기가 힘들어서 나갔는데... 집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제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라며 울먹였습니다. 두더지와 다하지가 안아주었습니다. 다하지가 복받치는 감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은혁이를 불렀습니다. 예림이가 오기를 기다렸던 은혁이가 나와서 선물을 전했습니다.
우리들에게 오늘처럼 매듭을 짓는 것도 좋고, 이 친구가 중간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중간에 매듭을 짓고 가는 것 좋다, 그렇죠? 그런데 오늘 친구들이 매듭을 짓는다고 찾아오는 이 힘, 참 멋집니다. 그리고 여기 친구들이 똑같은 그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전달해주고... 걱정할 거 없죠? 이 친구를 위해서 박수 한번... 이라고 두더지께서 말하고 사람들이 예림이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떠나는 9학년 친구들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했습니다. 9학년 은빈이가 쓰고 대표로 재민이가 읽어주었습니다. 은결이의 송사에 대한 답사입니다.
사랑어린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저희는 몇 시간 후면 졸업하게 된 9학년들입니다.
저희는 졸업할 때가 되니 입학할 때가 생각납니다.
모든 게 어색하고 눈치보이던 그날들을 추억으로 생각하고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제 저희는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서 사랑어린배움터에서의 매듭을 지으려 합니다.
저희를 위해 웃어주고 눈물을 흘린 모든 사랑어린 사람들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밝은 모습 잃지 않고 잘 살께요.
사랑합니다.
9학년들이 사랑어린사람들께 올림
9학년 부모님들이 지난밤에도, 오늘 아침에도 어렵게 짚어가며 연습했던 리코더를 연주했습니다. 들길 따라서 물길 따라서 홀로 가는 아이를 위해서, 한 마리 파랑새 되고 한 조각 작은 배 되어 푸른 하늘로 넓은 바다로 나갈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또한 그렇게 살아갈 자신들을 위해서 리코더를 불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악보를 짚어가며 수정하고 독주와 합주, 노래와 맞추며 연습을 했습니다. 입장하고 퇴장하는 순서, 자리배치까지 꼼꼼하게 연습했지만 자연스럽게(?) 무대에 나가고 들어왔습니다. 9학년 부모님들의 리코더 소리와 노래 소리가 도서관 유리창을 넘어 한 마리 파랑새가 되어 저 푸른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어느 때인가 공양간에서 전깃불을 달고 있을 때 사다리 밑에서 올려다보며 재민이가 말했습니다. 뭐 도와드릴 거라도 없는 가요? 많은 아이들이 들고나는 공양간에서 재민이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계속 혼자서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힘들었는데 즐거워졌답니다. 그 이후에 재민이가 배움터 생활로 힘들어 하고 집으로 갔을 때 좋은 결정,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의 빛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인도순례, 에세이 준비와 발표까지 잘 마쳐서 너무나도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민이는, 사랑어린학교에 다니면서 많은 걸 배우고 가는 거 같아요. 아까 에세이 발표 때도 말씀드렸지만 밥도 우리가 해서 먹어보고, 친구들이랑 같은 방에서 잠도 자고, 이랬던 게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저한테 큰 배움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잘해준 배움지기들과 사랑어린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재민이 엄마와 재민이 형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빠는 나랏일로 큰일을 하는 사람이라 못와서 대신 인사를 전합니다. 무엇보다도 어제부터 잔치가 너무 즐거워서 학교를 떠나기가 싫어요. 친구들의 생생한 마음을 보고 그들 마음이나 내 마음이나 같아서 그들이 내 마음을 두드려주고 어루만져줘서 너무 행복한 잔치예요. 우리 재민이가 학교 올 때 정말 진지하게 그래프까지 그리며 고민해서 선택한 학교예요. 자기소개서를 썼던 일도 생각이 나고... 재민이가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서 왔고, 정말 잘 했던 거 같아요. 정말 자랑스럽고요. 앞으로 재민이의 선택을 따르면 되겠다는 확신을 어제, 오늘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 제가 모르는 많은 분들도 계시고, 마을분들 용화사분들엑 인사도 못드리고... 너무 감사드려요. 재민이가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힘든 일도 많이 겪었어요. 그것도 여러분이 사랑해주셔서 드러났던 거 같아요. 저 또한 그런 재민이를 보면서 많이 자란 거 같아요. 감사드리고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재민이 형인데요. 이 자리를 보니까 재민이 덕분에 이 자리가 있는 거 같아요. 재민이가 고맙네요. 고맙습니다.
정말 먼 곳, 강원도 태백에서 이곳까지 온 은빈이네 이야기를 전합니다. 은빈이는, 솔직히 처음 올 때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갈 곳이 없어서 1년만 지내고 가야지 하고 왔는데 너무 소중한 곳이 돼버린 거 같아요.
은빈이오빠 류홍빈 군은 어머니교사이기도 합니다. 기타를 치는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제가 처음 사랑어린배움터를 안 게 중학교 1학견 때예요. 참 독특한 학교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이들을 만났는데 학생이 세 명에다 선생님은 개구리라 그러고 교장선생님은 두더지래요. 그리고 민들레라 그러고... 참 독특하다 그래서 기억에 남고요. 그런데 제가 지금 여기 와서 이러고 있고요. 아, 물론 좋다는 말이에요. 은빈이 에세이를 보면서 저도 예전에 그림을 그리고 좋아했는데... 한알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은빈이와 관련 돼서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홍빈와 은빈이 중 누가 더 그림을 잘 그리냐, 였어요. 정말 그런 질문을 많아 받았어요. 그때였으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당연히 내가 더 잘 그리지 했을 텐데 이번 에세이를 보면서 그런 대답을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에전에 은빈이가 저한테 와서 대뜸 난 파티에 갈 거다, 했어요. 그때는 힘들 텐데, 하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빠들은 보통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 이 말을 자주하는 거 같은데 은빈이아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영상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유일하게 저희만 아내 혼자 인터뷰를 했어요. 지금까지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면서 이렇게 맡겨놓고 지나온 게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갓 돌이 지난 아기 때부터, 두 아이 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린이집엘 보냈어요.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그렇게 보내고 어린이집에서 우리 아이들을 이만큼 키워줬구나 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마무리하는 걸 보면서 아, 우리 은빈이가 정말 잘 커줬구나, 잘 커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잘 크기 위해서 우리 사랑어린학교에서 같이 생활했던 친구들, 언니들, 오빠들, 동생들 그리고 선생님들, 사랑어린 가족 여러분이 계셔서 잘 크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 가지고 생활하고, 앞으로 은빈이가 이런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가면서 잘 커갔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함박꽃 손을 꼭 잡고 함께 나온 은빈이엄마는 인사를 끝낼 때까지 함박꽃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제가 함박꽃과 같이 나와서 의아해하실 텐데요. 무심과 함박꽃은 저희 은빈이의 대부대모시기도 하지만 1년간 엄마처럼 신경 써주셨고, 제가 부모배움에 혼자 올 때마다... 제 옆에서 제가 혹시 낯설어할까봐 같이 있어준 남편이라서... 꼭 같이 나와야겠다 생각했어요. 오전에 정말 가슴이 찡하는 걸 억누르고 억눌러 참아서 두통까지 왔었는데 지금은 조절이 안 되네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하루는 길고 1년은 짧다는 말이요. 차를 몇 번씩 갈아타고 여기까지 오는 데 거의 10시간이 걸리는 길에... 아이를 보내고... 그 하루들은 길었습니다. 과연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최상인가 이런 의문을 가졌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돌아본 1년은 참 짧고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감사했고요. 멋진 아줌마들, 멋진 아저씨들 만나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 인연 계속 간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은빈이엄마가 마이크를 세 번 건넬 때에야 비로소 마이크를 받아든 함박꽃은, 옛날에 중신을 잘 서면 술이 석잔이고 잘 못하면 뺨이 석대라 했는데... 저는 단지 소개만 했어요. 알아서 오셨잖아요. 안 오면 큰 일 난다 했던 것도 아니고... 제가 학교 덕분에 어제오늘 찬솔이네도 마찬가지고 언니에게서도 좋은 말을 많이 들어서 그냥 좋은 곳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렇게 좋은 말도 듣는구나 하는 고마운 마음 들어요. 언니에게도 1년 동안 행복해 보여서 오실 때마다 마음이 좋았어요. 아이들, 은빈이 식구들 모두 고맙고요. 제가 한 것도 없는데, 같이 나가자고 할 때 같이 나가주는 게 제가 1년동안 제일 잘 한 거 같아요,라고 말하며 은빈이엄마와 손을 맞잡았습니다.
운동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많은 아이들이 따르는 초은이, 졸업하면 7, 8동생들이 제일 보고 싶을 거 같고 배움지기도 보고 싶을 거 같고... 3년 동안 저를 많이 챙겨주고 감사했어요. 자주 놀러올게요. 초은이언니도 함께 왔습니다. 저도 광주지혜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가끔 집에서 볼 수 있는데, 만날 때마다 자기 방식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 거 같아서 보기 좋았습니다.
초은이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부산에 있을 때면 사랑어린학교에 대해 툴툴거릴 때가 종종 있었는데 항상 이 학교, 여기만 오면 가슴을 치네요. 초은이랑 잘 지내준 은빈이 너무 고맙고 정민이 너무 감사하고 언니라고 잘 따라준 팬클럽 친구들 너무 감사하고요. 초은이가 어디 가서 이런 사랑을 받을까, 부모보다 더한 사랑주시고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초은이한테나 저희한테 가슴에서 지지 않는 별이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드려요.
목소리 큰 초은이 아빱니다. 어제 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졸업식인데 저도 면도를 좀 하고 옷도 평소와 다르게 가꿔 입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어제 오늘을 위해서 연습하던 리코더연주나 이따가 세족식 때 부를 노래 연습에 절로 마음이 가더라고요. 3년을 보내면서 졸업식 때 돼서야 몸과 마음이 이 학교에 왔을 때 푹 담궜다 하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왜 진작에 그렇지 못했을까? 늘 바쁘다는 핑계로 몸과 마음을 푹 담그지 못 했던 것들이 미안하고 아쉽고 그렇습니다. 졸업하고 발을 끊으려고 하니까 시원아빠는 그기 사람이냐 그러고 야구 좋아하는 현보 얼굴도 눈에 밟히고 앞으로 우째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아이들과 좋은 시간 가졌고 우리 초은이가 키와 마음이 훌쩍 크게 도움 주신 분들께 고마운 말씀을 전합니다.
그동안 9학년 친구들과 함께했던 어머니교사, 배움지기들이 인사를 한 뒤 길을 떠나는 친구들의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친구들은 의자에 앉아서 긴장한듯, 신기한듯 바라보고 깨끗한 물이 담긴 대야 9개를 준비했습니다. 길을 떠나는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는 나의 그림자 웃으며 돌아서는 친구의 뒷모습은 왜 그리 허전해만 보일까. 슬픔은 슬픔으로 어루만져질 수 있다면 친구의 그 허전한 마음을 위한 노래 내 슬픔 다해서 노래하리. 지금 생각하면 너무 초라한 노래 다시 불러보고도 싶지만 작은 슬픔으로는 감싸 안을 수 없어. 부르지 못한 노래가 남아있네.
친구들의 발이 씻겨질 때 부모님들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지었습니다. 친구들은 심각하거나 웃거나 했습니다. 저 발로 다시 길을 떠날 것입니다. 들길을 따라서, 물길을 따라서, 산길을 따라서 어느 곳이든 저 발을 디딛며 배움을 찾아, 꿈을 찾아 오롯이 홀로 혹은 친구와 함께 떠나겠지요? 친구들의 발에 물기가 닦아질 때까지 노래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따라서 눈물을 지었습니다. 초은이가 간지러운듯 자지러졌습니다.
제주도에서 살고 계신 향아 최광식선생님께서 친구들을 축하해주러 물길을 따라서 오셨습니다. 9학년 친구들을 위해서 선생님께서 지은신 축시를 낭송해주셨습니다.
배움터를 떠나는 벗들에게
사람이 쓰는 말에는
말씀도 계시지만
에고 장난이 들어있는 거짓도 있어요.
일찌기 하늘 말씀에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이라는 말씀이 있어요.
제 나름의 느낌으로는
존재는 있으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말씀이지요.
우리 살아가는 지구별이라는 곳이
하늘이 운영하시는 학교인데
어떻게 졸업이 있을 수 있겠어요?
다만 사랑어린배움터 울타리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겠지요.
네 번 자고 일어나 고치가 되고 나방이 되는
누에로 치자면 한두잠에서 깨어나는 것이고
대나무와 견주면 한 마디 매듭 짓는 셈이겠지요.
벗들의 의식이 하늘과 하나 되기 위해서
이제까지보다 조금 더 밝아지는 것이겠지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신나게 함께 놀면서 자라기를 바래요.
지금까지보다
바람이 좀 거세지요
풍랑이 조금 더 일렁거릴 수 있겠지요.
놀이의 즐거움이 증폭되는 것이에요.
넓어지는 세계로 나아가는
벗들을 축하합니다.
桓紀(환기) 9212. 12.26
向我
사랑어린배움터의 스승님이신 이현주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지난밤 끼자랑부터 에세이 발표와 매듭 짓는 일까지 모든 일정을 배움터 친구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계속 지켜보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모자를 벗고 큰절을 하셨습니다.
감동이다. 칠십 인생 살다보니 오늘 이런 감동을 맛보는구나! 고맙다. 한 평생 그리던 새 세상, 더 이상 '사람'이 서로 싸우지 않고, 다툼과 갈등은 있겠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으로 치달리지도 않고(아니, 못하고)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기 색깔, 자기 모양으로 자유롭게 살되 서로 어울려 아름다움을 이루는 새 세상이, 새천년 천지개벽이 정말 이루어지려나? 조금 의심이 들었는데, 조금 막연했는데, 오늘 그것들이 모두 지워지고 이렇게 확연해지는구나!
어찌 소감이 없으랴?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그리스도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성령께서 늘 그 위에 머무르셨다. 그가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게 되리라고 성령께서 미리 알려주셨더니, 마침 성령에 이끌려 성전에 들어갔을 때 부모가 주님의 법에 따라서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시므온이 아기를 품에 안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을 편안히 눈감게 하시는군요.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뵈었으니 이는 주님이 만백성 앞에서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인들한테 비추시는 빛이며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됐다. 옛날의 그리스도는 한 개인이었지만 오늘의 그리스도는 새로운 눈으로, 어른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꿰뚫어보는 새로운 제네레이션 바로 너희들이다. 됐다. 고맙다. 한 늙은이가 이렇게 편안히 눈 감게 되었구나! 오늘 이것은 '졸업식'이 아니라 다른 이름의 '입학식' 이었다.
9학년 친구들의 매듭 짓는 일이 끝이 났습니다. 우리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가족사진을 찍고, 배움지기들과 함께 찍고, 친구들과 함께 찍고, 같이 찍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모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는다고 오늘이 언제까지나 사진처럼 명료하게 남아있진 않겠지만 우리는 오늘의 마음을 찍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9학년 친구들이, 우리들이 오늘 매듭을 짓는 마음, 매듭을 지은 일을 마음 속에 사진처럼 찍었습니다. 헤어지는 일이 낯선 친구들이 부등켜 안고 울었습니다. 더 많은 얼굴을, 더 많은 아쉬움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이제는 헤어지는 일, 아쉬운 일들을 마음으로 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잘 살펴서 소중하게 받아야겠지요. 아이야, 슬플 땐 맘껏 눈물을 흘리렴!
이제 기념사진을 찍는 것도 끝이 나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버린 운동장은 너무나도 넓습니다. 오방색 깃발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겨울날은 서둘러서 저물고 바람은 차가워집니다. 멀어지는 그대를 보는 일은 쓸쓸합니다. 하지만 그대가 길을 찾아 떠났다가 언제든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그 쓸쓸함을 마음에 담기로 합니다. 그리고 겨울날 초저녁에 부는 바람과 같은 쓸쓸함이 다시 밀려올 때 꺼내서 보기로 합니다. 당신은 오늘 매듭을 짓고 다시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대가 가는 길에 빛나던 <별이 빛을 잃어도> 두려움 없이 제 스스로 별이 되어 빛이 나기를... 그대와 내가 살아가는 일이 들판에서 ,아무도 모르게 피었다 지는 저 들꽃처럼> 때로는 홀로, 때로는 어울려서 살아지기를...
그대가 떠난 길로 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동네 이발소 앞에서, 학교 앞에서 가로등이 깜박, 켜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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