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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몇 장

<살맛 나네요> 농부 박승호, 김은종

 

7월 22일, 여름날의 태양이 제 할 일을 다하고 서쪽 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여름날의 태양은 서서히 사위어 가며 서쪽 하늘을 불태울 준비를 하고, 사람들은 뜨거운 여름날 하루를 살아낸 뒤 자기 안에 담긴 삶의 조각을 나누기 위해 둘러 앉습니다. 순천판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모을 때 여름날의 매미도 따라서 노래합니다.  오랜만에 순천판이 아이들과 어른들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살맛 나는 이야기를 하고, 듣습니다. <살맛 나네요>는 보리밥이 계당마을 이장인 박승호 님과 낙안 금산마을 김은종 님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고, 바람빛이 편집하여 만든 책입니다. 두 분은 몇날 며칠 동안 근 20여 시간에 걸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두 분 이야기를 1인극으로 보고, 가만히 읽어주는 낭독으로 듣습니다. 우리는 이야기 속 두 분 삶에 미소 짓고 눈물을 훔칩니다. 두 분 삶이 우리와 다르지 않고, 그 다르지 않은 이야기 안에서 또 두 분만의 특별한 사연을 듣고 보고 배웁니다.

 

 

 

 

 

 

 

 

김은종 님 이야기를 이예온 군이 1인극으로 꾸몄습니다. 잘 아는 우리 주변 사람 이야기를 연극으로 본다는 것은 여느 드라마 못지 않게 재밌습니다. 그래, 맞아! 똑같네, 똑같아. 어? 저런 면도 있었어? 몰랐는데. 아, 그때 그랬구나, 하며 맞장구를 치며 공감하거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아득한 신들의 이야기나, 환상 속 이야기는 물론,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는 하겠지만-멀게 느껴지지만, 우리 주변 사람 이야기는 내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 일부분을 연극으로 보는 것은 우리 삶의 한 단면을 확대해서 보는 것 같습니다. 소소하고 별것 아닌 삶의 한 단면이 확대해서 보면 다양한 의미가 숨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삶이, 나의 이야기가 한층 더 소중해지겠지요? 

 

이예온 군의 1인극 중 일부입니다.

"내가 데모를 해서 교도소에 갔다가, 나와서 살고 있는데... 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너도 알잖아. 임미경! 임미경에 대한 이 마음을 질질 끌기도 그렇고, 뭔가 결단을 해야 할 거 같은데... 당신은 데모를 하던 나에게, 카드빚만 있던 나에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나에게, 술만 먹던 나에게 그리고... 주위에서 다른 집 같으면 벌써 애들 데리고 도망 갔을 거라고 이야기할 때에도 모든 순간 나에게 있어서 당신은 함께였어. 그래, 그래! 당신은 동지였어. 무슨 일을 할 때 빠져들던 나를 인정해줬고, 항상 내 곁에서 날 지지해준 당신은... 그래! 동지였어, 동지!"

 

 

 

 

 

 

 

 

 

 

 

차분하고 단아한 제인 양이 박승호 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었고, 이제는 그림책 작가인 손지우 양이 박승호 님 이야기를 따스한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박승호 님은 <순천만 농사꾼, 고집불통>으로 불립니다. 청년시절부터 일찍 유기농을 공부해서 한길만 걸으신 분입니다. 지금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배움이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십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미련한 놈아, 촌에 가서 농사나 지어라' 그랬거든요. 내가 장관한테 건의했어요. "이 말, 바꿔주시오. 미련한 놈이 어떻게 농사를 짓겠어요?"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 마부작침으로 생각하겠다, 그래요. 미련한 놈이 어떻게 농사를 짓겠소? 그런데 왜 말을 그렇게 해요? 어디 가서도 농사 못 지어요. 지금은 농사가 예술이여, 예술! 맞아요. 예술이요.

 

 

 

 

 

 

 

박승호 님은 1952년 임진(壬辰)년 생입니다. 계당마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어릴 적 워낙 없이 살아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열네 살에 어머니가 짠 베 한 필을 들고 집을 나갔습니다. 도회지에서 거친 20대를 보내고 서른 한 살에 고향으로 돌아와 남의집살이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유기농 명인 칭호를 받기까지 힘든 역정을 꿋꿋이 이겨냈으며 지금도 배우고 공부하며 농사을 짓고 있습니다. 오색미뿐 아니라 다양한 작물을 유기농으로 재배하며, 농사는 곧 예술이라고 여기며 농사를 짓습니다. 또한 농촌 마을공동체가 나갈 방향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김은종 님은 1965년 을사(乙巳)년 생입니다. 구례군 용강면이 고향이며 순천 낙안 금산마을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늘 유쾌하게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똑같은 모습으로 농사를 짓고, 마을 일에 함께합니다. 건수, 현수, 시현 세 아이가 사랑어린배움터를 졸업했으며 아내 임미경 님과 사랑어린배움터의 농사 가족으로 살고 있습니다. 

 

 

 

 

 

 

 

시소리꾼인 김평부 님이 대금과 시소리로 오늘 낭독회를 축하해줬습니다. 우리 시대의 어른이셨던 돌아가신 채현국 선생님이 동학 소리 최고 소리꾼이라 칭찬했던 분입니다.

 

우리들은 하늘 보았다. 역사를 짓누르던 검은 구름장 찢고 동학년 황토현에, 기미년 삼월에, 사일구에, 오일팔에 영원의 얼굴을 보았다. 그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하늘물 한아름 떠다 우리는 우리의 얼굴 닦아 놓았다. 고을에도, 나무 등걸에도 당신의 얼굴은 전체가 하늘이었다. 하늘!

 

 

 

 

 

 

 

 

 

 

 

 

 

 

 

 

살맛 나는 삶, 살맛 나는 세상을 향한 여정에 저마다의 길로 함께하고 있는 일부님, 순천시 시의원 이복남 님, 여성친화시민참여단의 권애임 님, 박소정 선생님이 축하 인사를 했고, 순천시 도서관 운영과 작은도서관 팀장 이양숙 님과 가장마을 박용운 이장님이 함께했습니다. 인근 마을 이장님들이 축하 인사를 보리밥 편에 보냈습니다. 

 

 

 

 

들었던 말로 일본에 사는 아이짱 외할아버지도 유기농 농사를 오랫동안 짓고 계신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다른 말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전해졌겠지요. 어쩌면 아이짱 엄마, 요우코 상은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살짝 했습니다. 

 

 

 

 

 

 

 

 

 

 

 

사람들은 살맛 나는 삶을 듣고, 보고,  노래하고 자리를 파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살맛 나는 삶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길로 살맛 나는 삶을 찾아갑니다. 저마다 찾은 살맛 나는 삶을 나누어서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자기 삶과 세상은 다르지 않아서 거미줄처럼 이것저것이, 서로서로가 이어져 있습니다. 나로부터 시작된 살맛 나는 삶이 이와 같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 유리창 너머를 봅니다.   

 

 

 

 

 

 

 

 

 

 

 

사랑어린배움터에서 인생의 한 매듭을 짓고 떠났던 청년들이 우리와 함께했습니다. 정임한결, 이예온, 하승희, 강다은, 제인, 손지우입니다. 낭독회를 준비하고 치루고 뒷정리를 하고 마무리를 합니다. 말 그대로 저마다의 길을 찾아 가고 있는 아름답고 사랑어린 청년들입니다. 

 

 

 

 

 

 

아이들은 공양간에서 짜장면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재잘거리고, 뛰어다니고 놉니다. 짜장면을 기다리는 동안 관율이가 형, 누나 들을 태운 놀이기구를 돌립니다. 형, 누나 들이 우와, 놀랍니다. 관율이가 벌써 이렇게나 컸답니다. 이제 어른들은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얼음이 담긴 막걸리를 마시고, 짜장면과 흰 쌀밥을 먹고, 수박씨를 뱉으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녁밥은 박승호 님이 농사 지은 쌀로 밥을 짓고, 보성 득량반점 조셰프 님이 가지탕수육과 짜장면을 만들었습니다. 공양간에서 아이들이 길게 늘어 섰습니다. 짜장면을 대하는 아이들 눈빛이 빛나고, 온정성으로 돌돌 감아 입으로 가져갑니다. 논에 물이 들어가듯 아이들 입에 음식이 들어갑니다. 그 두 가지를 바라보는 마음은 다르지 않겠지요? 온전한 먹거리가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야말로 살맛 나는 세상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살맛 나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