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라는 아픔 안에 숨어 있는 사랑, 연민 그리고 죽음이라는 슬픔 속에 감춰진 평화로움, 고요 등 삶의 깊은 지혜를 이야기 하는 마당이며, 모든 이들이 이별, 이혼, 죽음 이런 것들이 결코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만 아니라 다르게, 새롭게, 깊게 봄으로써 고통에서 피어나는 한송이 꽃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 <이별꽃스콜레>라고 합니다.
지난번 8월 다섯 번째 <이별꽃스콜레>는 9월 2일, 순천판에서 한돌 선생님을 이야기 손님으로 모시고 함께했습니다. 이제 이번주 금요일, 9월 30일 저녁 굿하는 사람, 박필수 선생님을 모시고 여섯 번째 이별꽃을 피웁니다.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는 <이별꽃스콜레> 다섯 번째 마당을 한돌 선생님 말씀을 살짝 곁들여서 다시 보고 여섯 번째 마당을 준비합니다.
한돌 선생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하시는 게 너무나 어렵다고 하셨지만 조곤조곤 살아온 이야기, 노래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순천판에 둘러앉아 함께 웃고, 선생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함께 노래했습니다.
행복하고 불행은 원래 붙어있던 말인데, 날카로운 걸로 굳이 그걸 잘라가지고 행복, 불행 이렇게 나눈 거예요. 행복이란, 살면서 기쁨을 누리고 이거 어쩌고저쩌고 이런 것만 가르쳤어. 근데 선생님 불행이 뭐예요? 그거는 행복하지 않은 거지. 사전에도 그렇게 써 있어요. 되게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을 해요. 불행도 설명을 해줘야지. 행복을 설명해 주는 만큼... 그러니까 우리, 저부터라도 따로따로 그걸 배웠어요. 행복 따로 불행 따로.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행복만 추구하는 거야, 행복만. 불행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거지. 행복만 추구하다 보니까 쾌락으로 변질도 되고, 순수한 순수한 행복은 증발해서 사라지고 쾌락만 남은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걸 수습해가지고 아이들한테 행복과 불행은 붙어 있는 거다. 이렇게 가르치면 아이들이 어른 돼서 좀 풍요로운 삶을 살지 않을까? 왜냐하면 행복하다 방심하면 불행해지는 거고, 불행을 헤쳐나가면 행복해질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불행은 행복의 반대말이 아니고 행복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게 가르쳐야지. 그러면 행복과 불행을 같이 알게 되는 거잖아. 그렇게 커서, 어른이 돼서 불행을 맞이하더라도 헤쳐나갈 면역력이 생기지, 면역력! 이걸 따로따로 가르치면 면역력이 하나도 안 생긴다는 거지.
그거만 어떻게 잘 되면, 이 사회 문제도, 행복하고 불행만 그러겠냐고, 기쁨과 슬픔도 마찬가지고, 심지어는 빛과 어둠도 마찬가지고, 좌파 우파도 마찬가지고. 저번에 광화문 촛불 보니까 누가 그러더만 빛은 어둠을 이긴다. 빛하고 어둠이 언제 싸움을 했냐고. 빛 동네에 있는 사람들이 어둠의 동네에 있는 사람들을 이기겠다는 건데, 그 말 자체가 말이 안 되고 사회를 칼로 가르는 말 아니야. 그게 잔인한 말이라고. 촛불이 어둠을 밝힌다, 그러면 맞는 말이지. 그러니까 그것만 가르치자 이거야. 어둠은 촛불을 빛나게 해준다. 이런 말을 왜 안 가르치느냐 이거지, 나는. 그래서 빛과 어둠이 함께 하는 그런 세상에 왔으면 좋겠어요. 빛은 어둠을 이긴다, 그런 세상보다는 빛과 어둠이 함께하는 세상,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심지어는 사랑과 이별도 따로따로 놀지 말고 함께하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랑과 이별도 같고 삶과 죽음도 같이 보듬어야 되지 삶과 죽음을 따로따로 가르치면 안 된다는 거지. 왜냐면 빛 속에 어둠이 있고, 어둠 속에 빛이 있는데, 어둠의 빛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그냥 빛보다 더 아름다운 게 어둠 속의 빛인데... 삶과 죽음이 서로 다른 게 아니에요. 살면서, 살면서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죽었는데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왜 칼로 가르냐 이거야? 가를 수가 없어. 밤하고 새벽하고 갈라 봐. 갈라지나? 안 갈라지지. 함께해서, 모든 게 될 수 있으면, 모든 게 한 몸이라고 생각을 해야 돼. 저하고 여러분들도 할 수만 있다면 한몸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지. 여러분 각자 각자하고 나하고 다르다고 생각하면 다르는 거지 뭐 그거는... 그러면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이왕이면 밑져야 본전이라고, 한 몸이라고 살면 더 좋지, 뭐!
저는 여러분들하고 한몸으로 생각하고, 제가 순천에 오는 즐거움은 여러분들이 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래요. 저는 순천에 오면 꽃밭에서 놀고 간 것 같아. 덩달아 나도 꽃이 돼가지고 말이야. 집에 가면 그 향기가 남아 있어요. 그러면 또 향기가 다할 때쯤에 되면 또 내려왔다... 이렇게 참 좋아. 나는 참 좋아. 여기 순천 오는 게 좋은데... 여러분들이 왜 꽃으로 보이냐 하면은, 굳이 제 표현을 하자면, 오리가 물에 떠 있는 건 발짓을 하는 거고, 새가 하늘 나는 건 날개 짓하는 거고, 여러분들이 꽃으로 보이는 건 마음 짓을 하기 때문에, 마음 짓! 마음 짓을 안 하면 시드는 거지, 꽃이.
나는 뭐 조사해보나 마나, 여러분들은 날마다 마음 짓하는 사람들이라고 저는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되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아마. 꽃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보다라는 말 속에 욕심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어요. 근데 꽃보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 이거 참 어려운 얘기거든요. 그런데 저는 여러분들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않을 거라고 당연히 믿고, 우리가 웃을 수 있는 최상의 일은 꽃처럼 사는 거야, 꽃처럼! 여러분들은 꽃처럼 사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게 제 마음속에 새겨져 있어 가지고 순천만 오면 즐거운 거예요, 제가. 여러분,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지 맙시다.
마지막으로 보리밥께서 다섯 번째 <이별꽃스콜레> 이야기 마당을 마무리했습니다.
사랑어린마을배움터, 관옥나무수도원도서관에서 매월 이별꽃스콜레를 이렇게 한 번씩, 한 번씩 차곡차곡 엮어가고 있는 중이에요. 오늘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말씀들 천천히, 마음 짓을 잘 하고 사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저는 오늘, 무엇보다도 칠순이 넘어가는 어른과 또 이렇게 뱅글뱅글 가운데서 뒹굴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나우부터 시작해서 20살 청년들이 함께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서 이별과 죽음과 삶이, 또 사랑과 슬픔과 이별이 따로 있지 않고 하나가 있다는 이런 얘기를 만들어가는 이 자리가 되게 특별하고 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듣기로 티벳에서는 어릴 때부터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배우고 이야기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어린아이도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삶에, 죽음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건 그만큼 삶에 대한 얘기가 깊어지는 시간이 되겠죠.
그래서 다음에 펼쳐지는 이별꼬스콜레도 많이 기대해 주시면 좋겠어요. 다음 9월 30일에는 죽은 자를 위한 산자들의 노래를 부르고 계시는, 굿판에 계시는 박필수 선생님을 모시고 그분만의 이별꽃스콜레, 그분과 우리들이 어우러지는 이별꽃스콜레를 펼쳐갈 예정이거든요. 기억하셨다가 꼭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고요. 오늘 다 이렇게 함께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이별꽃이 핀 밤은 깊어가고, 사람들은 작은 꽃 하나씩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자리를 파하기 못내 아쉬운 사람들 몇이서 공양간에서 오붓하게 한돌 선생님 칠순을 축하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빛나고, 죽음도 빛나는 밤이 깊어가고, 가을도 따라서 깊어갑니다. 이제 깊어가는 가을 초입에 박필수 선생님과 함께 또 다른 이별꽃을 피우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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