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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추석맞이 콩쿨대회

 

 

추석맞이 콩쿨대회

 

 

 

1.
월곡마을은 전라남도 순천시 남산 남서쪽 자락에 쏙 들어앉아 있다. 마을 앞으로 이사천이 흐르고, 이사천은 순천만을 통해 먼바다로 간다. 마을 삼분의이 지점에 회관이 있고, 회관 뒤로 난 길이 마을을 둘로 나눈다. 길 위로 남산 쪽은 안침이고, 아래는 바깥침이다. 아이들은 안침, 바깥침으로 편을 나눠 축구를 하고, 야구를 하고, 자치기를 하고, 오징어깐세, 삼팔선깐세를 한다. 안침은 가구 수가 바깥침보다 적어서 아이들 수도 적지만, 열 번 하면 일곱이나 여덟은 이긴다. 고등학교 이학년이 주축이 된 학생회의 회장도 주로 안침 출신이 맡는다. 학생회에서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아침에 마을 대청소를 한다. 학생회는 안침, 바깥침이 따로 없다. 마을 대청소를 하는 날에는 국민학생도 빗자루를 들고 회관 앞에 모인다. 추석 때는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나와서 대청소를 하고 추석날 밤에 콩쿨대회를 연다. 학생회장과 회원들은 집집마다 돌면서 돈이든 쌀이든 찬조를 받고, 평상과 병풍, 덕석을 빌리고, 동네 어른 몇 명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고, 상품을 준비하고,  1984 추석맞이 콩쿨대회 축,이라고 손으로 쓴 현수막을 건다. 추석 한 달 전부터 매주 토요일 밤은 콩쿨대회 준비 회의로 마을 회관이 들썩거린다.

 

 

 





2.
월곡마을은 팔십여 가구가 모여 사는데, 노인들 말에 따르면 조선 어느 때에 주암에 살던 옥천 조()씨가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뤘다고 한다. 옥천 조씨 이외 타성(他姓) 가구가 예닐곱이며 이들은 타성계()를 만들어 옥천 조씨 집성촌 안에서 산다. 월곡마을 아이들은 논에서 축구를 하고, 이사천 깽번에서 야구를 한다.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면 월곡마을 학생회에 자동 가입된다. 학생회 주 임무는 추석날 마을콩쿨대회를 여는 것이다. 학생회에 끼지 못한 중학생들은 쿵쿨대회 막간 특별무대로 연극을 준비한다. 연극은 주로 춘향전이나 심청전 한 대목이다. 추석 한 달 전쯤부터 서로의 집을 돌면서 연습을 한다. 이불을 펼치고 둘러앉아 발을 넣고 대본을 쓰고, 읽고, 동선을 짠다. 창석이가 아따, 가시내야. 춘향이가 그게 머냐? 이게 안 되냐, 서방니임~ 하며 몸을 꼬자 숙자가 그먼 니가 하든가. 쟈는 꼭 나한테만 머라 글드라이, 한다. 그러자 누군가 야, 춘향이를 꼭 여자만 해란 법이 있냐? 창석이 잘 허그마, 하자 다들 자지러지는 걸로 동의를 한다. 화장을 한 창석이는 영락없이 춘향이다. 고등학교 입시 준비로 야간 자습을 하느라 연습에 불참한 아이 몇을 학생회 형들이 마을 어귀에서 기다렸다가 길옆 산자락 메똥 앞으로 데려가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엉덩이를 때린다. 맞은 아이는 즈그들이 시험봐줄 것도 아님시로 학생회면 다여, 씨벌, 하며 집으로 가는 길에 욕을 한다.




 


3.
월곡마을은 순천 시내에서 버스를 타면 금방 간다. 월곡마을은 옛날부터 순천시였다. 월곡마을을 지나 산모퉁이 하나를 굽어 돌면 곧바로 상사면이다. 상사면은 승주군이었다가 순천시가 되었지만, 월곡마을은 옛날부터 순천시였다. 월곡마을에 추석이 되면 고등학교 일이학년이 주축인 학생회에서 콩쿨대회를 연다. 추석날 회관 앞마당에 누구네 집에서 빌려온 평상을 놓고 병풍을 펼쳐서 무대를 만들고, 백열전구를 달아 조명을 설치하고, 무대 위로 현수막을 걸고, 빨랫줄을 늘여서 찬조한 사람 이름표를 붙이고, 무대 앞에 덕석을 펴서 일등석을 만든다. 추석 때마다 만석이라 꼰지발을 딛고 서서 구경하는 사람이 더 많다. 서울에서 공장에 다니던 형, 누나, 삼촌, 이모, 고모 같은 출향인이 멋진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른다. 콩쿨대회에 노래 반주는 없지만, 마이크는 있어서 노랫소리가 환한 보름달 아래 마을스피커를 통해서 온 마을에 울려 퍼져 남산으로 오르고, 이사천을 따라서 흐른다. 꼰지발을 딛고 선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콩쿨대회 참가 가수가 삑사리라도 낼라치면 모두 자지러지게 웃는다. 서울에서 고향을 찾아온 출향인이든, 마을에 사는 사람이든 즉석에서 참가하는 사람도 많아서 노랫소리는 밤늦게까지 마을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진다.



 



4.
월곡마을은 별다른 수입원은 없고, 옛날에 삼베로 유명했다고 하나 옛날 일이며, 새천년이 되자 부녀회에서 옛날 방식으로 된장을 쑤고 메주를 만들어 팔았다. 월곡마을 사람들은 주로 상사면에 논이 있어서 거기서 난 소출로 연명하고, 아짐들은 저재장사로 푸성귀를 내다 판다. 아이들 몇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가서 공장에 취직을 하고 야간학교를 다니다가 추석에 선물을 들고 마을로 온다. 추석날 밤에 콩쿨대회 일부가 끝나면 막간에 중학생들이 연극을 한다. 아이들은 한복을 빌려 입고, 립스틱을 바르고 무대에 오른다. 무대 병풍 뒤 배우 대기실은 야, 머허냐, 이 다음에 니당께. 나 다음 대사가 머냐, 하면 아따, 나가 니 껄 어찌 안다냐, 하며 혼란스럽다. 무대 위 출연 배우는 제 순서도 아닌데 나갔다가 들어가거나, 대사를 까먹어서 멀뚱멀뚱 서 있다가 아야, 경석아, 머라고 대사를 해랑께, 하는 객석 아재의 외침에도 어쩔 줄 몰라 하고, 관객들은 춘향전의 방자가 깨방정을 떠는 모습을 보고 웃는 게 아니라 허둥지둥, 뒤죽박죽인 아이들을 보고 박장대소한다. 연극이 끝나자 창석이가 아따, 한 한 시간은 헌 거 같은디 십오 분밖에 안 됐그마이, 하며 춘향이 저고리를 벗어서 땀을 닦는다. 중학생 배우들은 잘했당께, 사람들이 겁나 웃어불던디, 그러먼 됐제 머, 하며 연극이 끝난 후 아쉬움과 후련함을 풀어내며 재잘댄다.

 





5.
월곡마을은 마을을 둘러싼 산의 형세가 달처럼 생겨 월곡(月谷)이다. 월곡마을에는 과부가 많은데, 월곡마을 앞 이사천 건너 산 모양이 하필 여자 엉덩이를 닮아 월곡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고, 마을 이름 때문에 음기가 쎄서 아재들은 일찍 죽고 아짐들만 남은 게 아니냐는 그럴싸한 말을 덧붙이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 하나마나한 소리다. 월곡마을은 추석 때마다 학생회 주최로 콩쿨대회를 연다. 중학생 아이들의 막간 연극으로 콩쿨대회 분위기가 오르면 찬조금이 잘 들어온다. 학생회장이 해룡아재 삼천 원, 오실아재 오천 원, 하며 알려준다. 동춘아재가 거나하게 취해서 어이, 학생회장 나도 내께, 노래 한자리 하세, 하고 지폐를 흔들며 무대로 온다. 학생회장이 아따, 아재 술 자시고 노래하먼 안 된당께요, 하며 막아서면, 누군가 아따, 한자리 불러라 그래, 한다. 동춘아재는 혀꼬부라진 소리로 천두웅사안 바악달재애를, 하면 사람들은 키득대면서 박수로 박자를 맞춰준다. 매번 일등은 준석이네 집안 사람이다. 준석이네 집안은 노래 못 하는 사람이 없고, 여기저기 콩쿨대회에서 일등 안 해본 사람이 없다. 준석이 집에서 쓰는 선풍기도, 밥상도, 냄비도 다 일등 나서 받은 상품이다. 단골로 이등을 하는 사람은 경석이 사촌누나다. 집에 오자마자 어머, 너네 그거 아니? 이번엔 내가 일등이단다, 새침한 서울말로 큰소리쳤다는데 또 이등이다. 경석이 사촌누나는 서울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만드는 공장에 다닌다. 팔월대보름 보름달이 대낮같이 훤하게 비추는 월곡마을에 준석이 큰형이 부르는 앵콜송이 마을스피커를 타고 멀리멀리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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