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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베트남 다낭에서 바다를 보다

 

그때 바다를 봤다. 도로는 해안선을 따라서 놓여져 있었고, 내내 도로를 달리는 중이었지만 바다를 보지 못 했다. 그때서야 바다를 봤다. 달려 온 거리가 6km라는 이정표를 지나친 후 바다가 눈에 들어왔고, 바다가 있었구나, 알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파도가 거센 저 바다에서 나왔고, 해안선을 따라 90km 자전거를 탔고, 저 바다를 곁에 두고 달리기를 하는 중이었는데도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를 보지 못 하다니. 그럴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베트남 다낭에서 철인3종대회가 열린다는데 한번 나갑시다, 클럽 사람들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흘리듯 던진 말에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했고, 즉석에서 경비 조달을 위한 계좌를 만들었고, 항공권과 호텔을 검색했다. 이게 작년 말이었고, 베트남 다낭 대회는 올해 5월 초에 열렸고, 우리는 참가선수 6명, 가족 3명 모두 9명이 3박 4일 일정으로 베트남 다낭에 다녀왔다. 

 

그동안 나는 철인3종대회에 올림픽코스-수영 1.5km, 자전거 40km, 달리기 10km-에만 참가해봤을 뿐이어서 다낭에서 열리는 하프코스-수영 1.9km, 자전거 90km, 달리기 21km-는 상당한 부담이 있었다. 여행 삼아서 참가한다고 해도 여간한 걱정이 아니어서 괜히 따라간다고 했나, 하는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하프코스는 언젠가 한번은 넘어야할 산과 같아서 조심하면서 천천히 달려서 완주라도 하기로 했다. 하프코스의 두배인 풀코스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고려 대상도 아니었으니 하프코스라도 참가해보자, 는 마음이 컸다. 할 수 있을까 싶기는 했지만. 

 

다낭으로 떠나는 날, 비가 내렸다. 새벽에 출발해서 아침에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했을 때 빗줄기는 더 강해졌고, 바람은 거칠었다. 공항 근처 주차 대행업체 주차장에는 공항에서 되돌아온 사람들이 서성거렸다. 모든 비행기가 결항이었다. 항공권 예약 사이트에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도 결항으로 떴다. 항공사 담당자는 일단 날씨 상황을 봐야 비행기가 뜰지 안 뜰지 알 수 있다고 했고, 상황에 따라서 문자를 보낸다고 했다. 우리는 난감했다. 당장 오늘 호텔 예약 상황도 있고, 자전거를 항공수하물에 맡길 포장서비스 예약도 해놓은 상황에서 모든 게 엉켜버렸고, 어떻게 해야할지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아침밥을 먹고 상황을 정리하자고 했다. 우리는 새벽에 출발했고, 첫 해외 대회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탓에 급격하게 배고픔을 느꼈다. 그래! 일단, 배부터 채우자고.

 

우리는 김해공항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 둘러 앉았다. 엄마, 아빠랑 함께 온 수현이는 새벽에 잠도 덜 깨서 따라왔을 텐데 치근대지도 않고 혼자서 잘 놀았다. 몇 년 전 사랑어린배움터 운동회 때 유모차에서 새근새근 잠자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었는데 벌써 일곱 살이 되었고, 어른들 하고 말도 잘 했고, 카페에서는 혼자서도 잘 놀았다. 우리는 여러가지 문제를 정리하기로 했다. 우선, 날씨가 좋아져서 비행기가 뜨면 내일이든 모레든 무조건 가기로 했다. 혹 늦어서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더라도 구경이라도 하고 곧바로 돌아오더라도 떠나자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공항 인근에 숙소를 잡고 기다리기로 했으며, 예약해 둔 자전거 포장서비스를 받아서 숙소에서 자전거를 포장해서 비행기 출발에 대비하기로 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숙소를 검색을 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빗줄기는 잦아들 줄을 몰랐고, 바람은 창 밖에서 사방으로 흔들렸다. 

 

연휴기간이라 숙소 잡기가 어려웠고, 9명이 한 곳에 들어가기는 더 어려웠다. 결국 공항에서 조금 떨어진 스키장 리조트를 구했다. 부산에 스키장이라니, 했는데 알고 보니 양산시 영남 알프스였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산길을 한참 구비구비 올라갔다. 도로 경사가 급했고, 구름인지 안개인지 자욱했다. 여전히 비는 계속 내렸다. 방이 여러 개인 널찍한 숙소에서 짐을 풀었고, 자전거를 분해해서 포장했고, 몇몇은 저녁 거리를 사러 시내로 나갔다 돌아왔다. 자전거를 분해하고 포장하는 일이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막상 앞바퀴를 빼고 안장을 분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자전거는 안장을 한 번도 뺀 적이 없었던 탓에 볼트를 풀어도 굳어서 빠지지가 않았다. 시장을 보러 간 사람에게 WD40을 사오라고 해서 겨우 뺐다. 정상적으로 비행기를 탔다면 시간 안에 맞출 수 있었을까, 하며 차라리 이렇게 된 게 다행이네, 하며 웃었다. 자전거 6대를 플라스틱 상자에 포장을 했다. 포장을 하고 보니 자전거 상자가 여간 큰 게 아니었다. 공항에서 수레에 실었을 때는 더 커보였다. 출국할 때는 번잡한 탓인지 항공위탁수하물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지 않았는데 베트남에서 돌아올 때 3만 원 가량 추가 요금을 물었다. 자전거 전용 항공 가방이 있다면 좋을 텐데, 했지만 외국을 몇 번이나 간다고, 하며 얼버무렸다. 하지만 누구는 틈만 나면 항공가방을 검색했다. 바퀴도 달려서 이동하기에도 좋겠는데...

 

비행기 결항 탓에 철지난 양산 스키장에 주저 앉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들떴다. 갖가지 요리를 만들어 먹고, 맥주를 마시고, 베트남에 갈 수 있을까 없을까, 평소 운동과 대회 참가할 때 영양 섭취에 대해서, 베트남은 덥다는데 천천히 완주만 하자 따위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밤이 깊어도 리조트 복도에 바람이 웅웅거리며 돌아다녔고, 산 중턱에 구름이 자욱했고, 비는 여전했다. 잠들기 전에 항공사에서 온 문자를 받았다. 내일 아침 8시 30분에 비행기가 출발하니 늦지 않게 공항으로 나오라고 했다. 아침이 되어도 비는 계속 됐지만 바람은 잦아들었다. 우리는 자전거 박스를 차에 싣고 빗길을 달려 공항으로 갔고, 다행히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했다. 베트남에서 하루를 까먹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베트남 다낭에 도착했고, 대회에 참가했다. 

 

다낭 대회장에서 선수 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 힘들었지만 등록 마감을 한 시간 남겨두고 6명 모두 등록을 마쳤다. 경비원이 자전거를 두고 선수 등록장으로 들어가라는 말이었는데 우리는 잘못 알아듣고 자전거 거치 장소인 바꿈터와 자전거 보수 서비스를 오락가락 하느라 땀을 흘렸다. 등록을 마치고 수영 경기장인 바다를 보는데 덜컥 겁이 났다. 파도가 어찌나 거센지, 저 파도를 넘어서 수영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바다 수영은 늘 부담스러워서 수영을 끝내고 나올 때마다 아, 정말 다행히도 수영이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매번 들었다. 바다 수영이 이렇다보니 다낭 바다의 높은 파도를 넘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침 첫 출전인 Y군, 부부가 함께 출전한 J부부 넷이서 맨 마지막에 출발해서 함께 수영을 하기로 했다. 수영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끝마치는 게 중요했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바다 수영에 대한 부담이 덜 했고, 우리는 모든 선수가 바다에 뛰어든 후 마지막 줄에서 출발했다. 

 

네 명은 호기롭게 화이팅을 외치며 얕은 바다를 달렸고, 수심이 깊어지자 헤엄을 쳤다. 그 거리가 불과 몇 십 미터쯤 됐을 텐데, 파도가 육지를 만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쏟는 부분이기도 했다. 앞서다가 일행을 기다리느라 멈춰서 돌아보니 첫 출전인 Y가 밧줄을 잡고-바다 수영 루트를 따라서 밧줄과 부표가 설치되어 있고, 구조대원들이 밧줄을 따라서 배를 타고 대기한다-  버둥대고 있었고, J부부가 곁에서 안정을 시키고 있었다. 돌아가보니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Y가 파도를 헤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물을 먹은 모양이었다. 호흡이 거칠어서 숨쉬기가 힘들어 보였고, 겁에 질려서 얼굴이 경직되어 보였다. 주변으로 베트남 젊은 친구 몇 명이 베트남 말로 뭐라 뭐라 하면서 버둥대고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베트남 여자 아이를 밧줄 쪽으로 밀었다. 이 아이도 겁에 질린 모양이었다.

 

바다 수영은 초반에 힘들다. 과도한 긴장으로 호흡이 안정되지 않고, 심박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몸이 위축되고, 바닷물이라도 먹게 되면 놀라서 수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실내 수영장이라면 깊지 않으니 이럴 때 바닥에 발을 딛고 서면 되는데, 바다는 어디 그런가. 발을 내리는 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오는데 이때 급작스럽게 당황해서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결국 Y는 안 되겠다고, 수영은 포기하겠다고 했다. 당황한 외침과 물을 먹어 기침 소리가 겹쳤다. 얼른 구조보트에 타라며 구조대원을 손짓으로 불러서 Y를 배에 태웠다.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만 지나가면 괜찮은데, 참고 해 봐, 이런 것도 못해서 뭘 할 수 있겠냐, 하는 말을 우리는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지금 힘들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누가 등을 떠밀 수 있을까. 어쩌면 살면서 은연 중에 누구에겐가 그렇게 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삶에서 지금을 극복하고 더 큰 성취를 해야할 일이 뭐가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이번 한 번만이 아니며 원한다면 언제든 기회는 다시 온다. 그러니 그래, 지금 포기할 줄 아는 게 진짜 용기지, 하는 마음으로 Y를 응원하고 지지했다.

 

Y가 되돌아가고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J부부는 둘이서 함께 가기로 하고 나는 내 속도로 나아갔다. 100미터쯤 왔을까, 아니 어쩌면 그보다 짧았을 수도 있다. 바다에서는 한참을 헤엄쳐도 제자리 같으니까. 어쨌든 이제 바다는 부드러워져서 잔잔했다. 쑥쑥 앞으로 나가며 삼각형 모양 코스 첫번째 반환점을 돌았다. 아, 이만큼 왔구나, 이제 다 왔어. 첫 번째 반환점을 돌자 안도감이 들었다. 바다 수영은 여기까지 대략 500여 미터가 힘들다. 이제 적응을 했으니 바다 밖으로 나가는 일만 남았다. 해변에 거의 다 왔을 때, 헤엄을 치다가 불현듯 발에 땅이 느껴질 때 아! 끝났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그리고 오래 헤엄을 치다가 일어서면 살짝 어지러워서 비틀거리는데, 이때 격한 성취감이 차오르고 자신감이 급격하게 상승한다. 이 힘으로 두 번째 종목인 자전거 페달을 돌린다. 

 

바꿈터-자전거와 달리기를 위해 자전거, 운동화 따위를 미리 준비를 해놓는 곳으로 선수별로 자기 자리가 있다-에서 빠르게 자전거로 전환하는 게 시간을 단축하는 제일 빠른 방법이다. 달리기로 몇 분을 단축하기는 힘들지만, 신발을 바꿔 신거나, 자전거 채비를 빠르게 하는 건 그나마 덜 힘드니까. 하지만 하프코스라서 빠르게 할 필요가 없다. 긴 거리만큼  길게 여유있게 오직 완주만이 목표니까 구태여 서두를 필요가 없다. 젖은 몸을 닦고, 자전거를 챙겼다. 자전거는 챙길 게 많다. 신발도 따로 있고, 헬맷도, 상의도, 양말도 신어야 한다. 자전거 출발선을 통과해서 안장에 앉아 페달을 돌리면 비로소 여유가 생긴다. 자전거는 페달을 몇 바퀴라도 돌리면 가만 있어도 얼마 간은 관성의 힘으로 바퀴가 돌아가니 쉴 수 있어서 좋다. 이때 미리 상의 주머니에 넣어둔 바나나, 에너지바 따위를 먹고 물을 마시고 한숨 돌린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가 조금 넘었다. 거리 90Km에 코스가 해안가 도로로 평탄하니 대략 3시간 이내에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번째 반환점까지 대략 30km를 달릴 때 시간은 8시가 넘었고 햇살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반환점을 통과하니 60km가 넘었고 9시쯤 됐고, 아스팔트 열기가 올라왔고, 헬맷에서 땀이 비오듯 흘렀다. 중간에 보급 물과 이온음료 병을 놓치지 않고 계속 받아서 마셨다. 통제된 도로에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사람들을 경찰들이 제지했고, 도로변에서 사람들이 응원을 했다. 대략 한 시간쯤 달리면 자전거가 끝날 것 같았는데 땀을 많이 흘려서 달리기에서 힘들 것 같았다. 속도를 줄이고 달리기를 대비하기로 마음 먹었다. 평탄한 코스지만 더위가 제 속도를 내지 못 하게 막았다. 도로에서 올라오는 아스팔트 열기에 숨이 턱 막혔고, 작열하는 태양빛이 머리 위로 쏟아지며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렸다.

 

나와 속도가 맞는 사람을 만나면 한동안 그이 뒤를 따라갔고, 내가 그이 앞에서 끌기도 했지만, 서로 맞는 상대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전거는 앞에서 부는 바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데, 앞에서 누군가 바람을 막아주면 뒤에 따르는 사람은 앞 사람의 70내지 80%의 힘으로 따라갈 수 있다. 그러니 무더기로 그룹을 지어서 달리면 훨씬 편하게 달릴 수 있고 그룹의 전체 속도도 빠르다. 인도네시아에서 왔다는 콧수염을 잔뜩 기른 친구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한참을 달렸다. 우리 삶에서도 누군가 앞바람을 막아주는 이가 있다면 삶이 편해질까. 언젠가 친구 자전거 뒷자리에서 다리를 벌리고 타며 온몸으로 바람을 느꼈던 어린 날이 떠올랐다. 그때 그 친구가 누구였을까. 친구의 자전거를 부러워했고, 자전거 타는 걸 배웠었다. 낡은 자전거를 탔지만 앞에서 힘껏 페달을 돌리는 인도네시아 친구의 등 뒤에서 지나가는 바람처럼 쓸데없는 생각이 스쳤다. 마지막 반환점을 돌고나서 그 친구는 내 뒤에 더이상 따라오지 못했지만, 기다려서 같이 갈 형편도 아니었다. 역시 삶은 혼자서 헤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마지막 구간을 간신히 달려서 바꿈터에 들어왔다. 주저앉아 운동화를 갈아신으며, 땀을 많이 흘려서 달리기를 예상대로 할 수 있을까, 천천히 달리자, 하는 생각을 했다. 

 

자전거를 탄 후 달리기를 하면 심박수가 급격하게 높아진다. 초반 3km까지 심박수가 높아지지 않게 천천히 달려야 한다. 21km를 두 시간정도 예상했는데, 3km를 달렸는데도 심박수가 높았고, 몸은 앞으로 좀처럼 나아가지 않았고, 이런 상태라면 두 시간은커녕 두 시간 반이 넘게 걸릴 것 같았다. 보급소가 나올 때마다 수박, 바나나를 집어 먹었고, 급수대를 만날 때마다 물을 뒤집어 썼다. 이제 초반인데도 몸이 무거웠고, 다리가 들어지지 않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웠다. 날씨는 덥고 습했고, 시내 도로의 아스팔트 열기는 뜨겁게 올라왔고, 땀은 마르지 않고 계속 쏟아졌다. 이대로는 안 될 듯 싶어 걸었다. 걷다가 가로수 아래 주저 앉아서 젖은 신발과 웃옷을 벗어서 짜고 쉬었다. 자원봉사를 하는 구빈이 또래 아이들이 베트남 말로 뭐라 하면서 물과 이온음료를 권했다. 아마도 화이팅을 하라는 말이겠지만, 나는 한참을 누워서 여기서 포기하고 되돌아 갈까 말까, 생각했다. 이제 겨우 6km였다. 여기서 포기하고 되돌아가면 12km였고, 그러느니 달리든 걷든 조금만 더하면 완주를 하는 것이니 앞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베트남 다낭 하늘에 뜬 구름과 함께 흘렀다. 그래도 아직 하늘이 노랗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1km, 1km 전진하는 게 고역이었다. 온몸이 무너져 내렸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과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느릿느릿 걸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해외대회에 나가자고 한 것은 이럴려고 여기 먼 곳까지 온 건가. 내가 하는 일이 늘 이렇지. 무너진 몸으로 마음도 함께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멈춰서서 바다를 봤다. 거기 쉼없이 커다란 파도를 출렁대는 바다가 살아 있었다. 바다는 달리기 코스를 따라서 계속 거기 있었는데 이제서야 바다를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불현듯 슬픔이 밀려왔고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지금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 하는 뭐든 저 바다에 버리고 가자. 내 안에 쌓여서 나를 붙잡고 얽어매는 어떤 것이든 여기 베트남 바다에 버리고 가자, 는 생각을 하면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그만 두었다. 그렇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저 바다에 둥둥 떠서 온 세계를 주유하고 다니다가 내가 어디를 가든 또 만나겠구나, 하는 그야말로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버린다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내 안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면, 알고 있다면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스스로 알고 있다면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 어쩌면 그것은 내가 소중히 여기고 보살펴야 할 나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가자. 반환점이 멀지 않았어. 내가 나를 만드는 것이겠지. 지금 내가 달리는 페이스가 바로 내 수준이었어. 두 시간이니 뭐니 하는 것은 내가 나를 모르고 했던 헛된 망상이었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나를 인정하니 주체할 수 없는 눈물도 멎었고, 이 속도로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멍하니 바라보던 바다에 작고 바구니처럼 생긴 동그란 배가 떠있었다.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 위 작은 배 안에서 누군가는 자기 삶을 살고 있었다.

 

반환점 표지판이 나타났다.  반환점을 돌았으니 이제 남은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보급소마다 멈춰서 물과 간식을 먹었고, 얼음을 목덜미에 문지르며 달렸다. 달렸다기 보다는 달리는 시늉을 했다. 어쨌든 걷지 말고 달려야 했다. 이제 걸으면 다시 달리기는 힘들었으니 시늉으로라도 달렸다. 이제 내 페이스, 내 모습을 찾았으니 실망 따위는 하지 말고 인정 하기로 했다. 그러니 이대로 내 페이스를 유지하면 이게 늦든 빠르든 이 길의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주 바다를 바라봤고, 자주 길가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을 봤다. 대회에 나갈 때면 길가에서 응원하는 사람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화이팅을 외치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과 손바닥을 마주치기에는 힘들어도, 너무 힘들었다. 다만, 마지막까지 달리는 관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어렵게 찾은 내 페이스를 지키려고 애썼다. 결승선이 가까워질수록 걷는 사람들이 많았고, 경기를 끝내고 홀가분하게 완주메달을 목에 건 사람들도 많았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들은 걷다가 뛰다가, 뛰다가 다시 걸으면서 마지막 결승선을 향해서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었다. 시간은 정오를 훌쩍 넘었고, 여전히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렸고, 발바닥은 열에 들떴고, 그만 나올 때가 됐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무색하게 땀은 끊임없이 흘렀다.

 

12시 이전에 결승선을 통과해서 6시간 내에 들어올 수 있겠지, 했던 희망은 말 그대로 헛된 희망으로 남았다. 하지만 내 수준, 내 페이스를 알았으니 그것으로 됐다. 완주를 한 참가 선수를 위해서 준비된 얼음물에 온몸을 담그고 머리까지 잠겨서 한참 숨을 멈췄다가 다시 숨을 쉬고 또 잠겼다. 몇차례 반복했다. 오늘 새벽 바다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로 마지막 결승선에 들어올 때까지 시간이 가느다란 끈으로 펼쳐져서 지나갔다. 일련의 과정이 실제로 나에게 일어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베트남 다낭에 바다가 있었고, 나는 바다를 봤고, 나는 지금 얼음물 속에 있다는 것이었다. 맡겨둔 짐을 찾아 옷을 갈아 입고 선수단 구역 밖으로 나오니 결승선을 주시하고 있는 은하수가 보였다. 은하수, 부르려다가 그만 두었다. 햇빛을 가리고 있던 은하수의 수건이 바람에 날려서 너풀거렸다. 태평양을 건너온 바람이 은하수를 지나서 내게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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