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모 하나

봄이 온다

 

 

 

아직 일렀나 보다. 동백나무가 뒤덮고 있는 섬에 붉디붉은 동백꽃은 피지 않았고 그러니만큼 툭, 떨어져서 꽃 천지를 이루지도 않았지만,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는 듯이 늘어선 사람들은 저마다 동백나무 앞에 서서 스마트폰을 높이 들었다. 동백꽃 이파리는 아직 펴지지 않았고 꽃망울만 제각각 매달려 있었다. 연둣빛 동백나무 이파리만 마지막일지도 모를 겨울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살짝 봄을 묻힌 바람에 스스럼없이 살랑거렸다.

 

오늘은 강진 쪽으로 갈까? 일요일 아침 일찍 동네를 한 바퀴 달리고 현관문을 열면서 말했다. 지난주에 우리가 너무 빨리 갔을까? 아니면 올해는 좀 늦나? 어젯밤에 늦게까지 영화를 보면서 봄맞이 동백꽃 구경을 하러 가자고 이야기했다. 몇 해 전 구빈이랑 다 같이 가고 나서 둘만이라도 꼬박꼬박 갔던 탓에 자연스럽게 봄맞이의 정석이 되는 모양새였다. 긴 겨울을 잘 보내고 찾아오는 봄을 잘 맞이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동백꽃은 그랬다.

 

삶은 고구마 바구니를 들고 문 앞에서 기다리던 은하수가 그래, 강진 절집으로 가자, 지난주 오동도는 아직이었으니까, 하고 말했다. 그럴까? 그 동네에 가서 점심도 먹고, 하며 운동복을 벗어서 세탁기에 넣었다. 은하수가 고구마 바구니를 식탁에 올려둔 뒤 보온병에서 옥수수차를 따른 머그잔을 건네며 근데 달리기 하는데 안 추워? 하고 물었다.

 

머그잔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보온병을 바꾸자고 해도 여전히 은하수는 괜찮은데 뭐 하러 새로 사냐고 기어코 쓰고 있었다. 옛날 보온병은 속뚜껑을 누르거나 열 때 손때가 묻기도 하고 요즘 보온병은 완전히 다른 방식이란 걸 얼마 전에 알았다. 옛날 보온병은 물을 따르기 전에 속뚜껑의 가운데 버튼을 누르면 물이 나온다. 그리고 동시에 가운데 버튼을 둘러싼 보조버튼이 톡 튀어나오고 이 보조버튼을 눌러야 가운데 버튼이 다시 올라와 보온이 되고 겉뚜껑을 돌려 닫는다. 그런데 우리집 보온병은 이 보조버튼이 잘 튀어나오지 않아서 손가락으로 꽉 집어 올린 뒤 다시 가운데 버튼을 눌러야 보온이 된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걸 보면, 구빈이가 갓난아이 때 사서 20년이 넘었지만, 기본기는 여전히 충실한 것 같아서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어떤 물건이든 이런저런 이유로 바꾸고 버리지만 그 이유가 딱히 그럴싸하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란 것을 우리집 식탁에 놓인 보온병을 볼 때면 가끔 생각한다.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후후 불어서 옥수수차를 마셨다. 인제 봄이제 머. 처음만 춥지 한 10분 달리면 땀나불어. 추운 건 둘째 치고 돌아다니는 개가 많아서 달리기를 못하겠어. 상봉 쪽에 서너 마리가 풀려서 큰길로 돌아다니다가 쫓아오는데 겁나서 막대기 주워서 길바닥 몇 번 내리치고 쎄게 도망갔당께. 올 때는 봉전으로 돌아서 데크길로 왔당께. 하사뿐만 아니라 상봉이나 사곡 쪽에도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개가 많았다. 들개인지 집에서 키우는데 풀어놨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동네마다 은근히 돌아다니는 개가 많아서 달리기할 때 저 멀리서 덩치 큰 놈이 스윽 나타나면 겁이 났다. 주말 아침에 동네 한 바퀴 도는 게 겨울철 체력단련이었는데 운동장으로 대피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둘이서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봄볕을 받으며 아직 뜨거운 옥수수차를 마시면서 삶은 고구마를 먹는 것으로 아침밥을 대신했다. 그리고 땀에 젖은 운동복과 모아뒀던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렸고, 우리는 봄볕은 쬐면서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하며 빨래가 다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유리창 쪽에 널었다.

 

추위에 유난스러워서 긴 겨울이 언제 끝나나 노래를 불렀지만, 겨울 덕분에 주말이 한갓지게 됐다. 겨울이 되면서 주말 새벽에 더 이상 자전거를 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기를 쓰고 언 손발을 녹이면서 자전거를 탔는데 이제 슬슬 겁이 났다. 언 몸으로 겨울 새벽에 나갔다가 낙차라도 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몸이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 겨울엔 시즌오프하자. 과감하게 그만하자고 하니 몸도 마음도 편했고, 주말에 은하수랑 여유롭게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일이 있을 때면 출근해야 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뭔가를 그만두니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모르지. 봄이 완연해지면 기를 쓰고 새벽에 사라질지도. 그렇지만 그 봄에는 지난겨울 혹은 그 전 봄과는 달라지겠지.

 

흘린 땀이 식어서 찝찝한 채로 수영장으로 갔다. 물속에서 몇 바퀴 허우적대야 상쾌해지고 비로소 하루가 시작된다. 다행인 것은 은하수도 수영을 할 줄 아는 것이다. , 우리도 메이커 운동화 사고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가서 수영도 한당께, 하는 그 유명한 뉴코아백화점 수영장에서 연애 때 같이 수영을 시작했다. 구빈이를 임신하고 만삭 때에도 수영을 한 덕분에 어릴 적에 구빈이가 통 감기에도 안 걸린다고 근거가 희미한 이야기를 하면서 수영을 예찬하기도 했다. 둘이 같은 레인에서 음파, 음파 하다가 나오려고 했는데, 수영장 출입문에 붙은 휴장 안내문을 보고 돌아섰다. 셋째 주 일요일은 수영장이 쉬는 날이란 걸 깜빡했다.

 

! 찝찝한데... 그럼, 율포 해수탕에 가자! 뭔가 큰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큰소리로 은하수가 말했다. 강진은? 너무 늦을 거 같은데...하자, 은하수가 목욕탕에 간 지도 오래됐고, 봄맞이 캥핑은 어떤지 보고 오지 머, 했다. 한 꺼풀 벗겨서 새 몸으로 새봄을 맞는 것도 나쁘지 않지. 고등학교 다닐 적에 친구 할아버지는 대통령 선거를 할 때 투표 전에 꼭 새벽 목욕탕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투표하셨다고 했는데, 봄을 맞이하는 것도 이만큼의 정성은 있어야지. 율포해수욕장 솔숲과 바다, 백사장에도 봄은 오고 있겠지.

 

봄이 오는 국도는 여유가 있었다.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뒤에서 오는 차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가, 무지하게 졸렸다. 은하수가 운전을 했고, 잠깐 잠이 든 것 같았는데 차가 멈췄다. 국도변 휴게소였다. 예전에 지나다닐 때 새로 까페가 생겼구나, 했는데 커피 맛이 어떤지 맛보고 한 잔은 담아서 가자고 했다. 봄을 맞으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주차장에 차가 가득했고, 식당 앞에도 사람이 많았다. 식당 자판기 커피를 든 사람이 많아서인지 까페에는 몇 안 됐다. 진한 커피를 한 모금 넘기자 다시 죽음의 형제인 잠으로부터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은하수가 여기 커피 괜찮네, 했다. 보온병에 커피를 담은 뒤 운전자를 바꿔서 봄이 오는 길을 달렸다.

 

큰길에서 신호를 받아서 샛길로 들어갔다. 도로변에 벚나무가 줄지어 있었고, 중간중간 한두 그루는 벌써 벚꽃이 한창이었다. 저거 벚꽃 아닌가? 하자 나무가 그랬잖아, 농산물센터 쪽에 벌써 피었더라고, 하는 은하수 말에 맞아 그랬제, 신기하네, 꼭 모난 놈이 있어요, 했다. 어디든 친구들과는 다르거나 특별한 누군가는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를 대수롭지 않게 있는 그대로 봐주지 못하는 누군가 또한 늘 있기 마련인 것 같았다. 그게 신기하고 모날 것까지야 있겠는가. 다만 다른 친구보다 생장이 다를 뿐이었을 터인데. 줄지은 벚나무 뒤로 들판은 파릇파릇한 봄의 싹이 올라와 초록 물결로 빛났고, 논 가운데 허물어진 비닐하우스는 빛바랜 포장 자락이 봄바람에 펄럭거렸다.

 

율포해수욕장 주변 주차장이 차로 가득했다. 백사장에서 노는 아이가 많았고, 솔숲에 텐트가 즐비했다. 해수탕 안에서도 노천탕에서 놀려고 아이에게 물놀이 옷을 입히거나 물놀이 기구를 챙기는 아빠가 많았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하며 힘들게 물놀이 옷을 입히려는 아빠에 아랑곳없이 아이는 형이 먼저 가버릴세라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로 버둥댔다.

 

냉탕과 온탕을 계속 오락가락했다. 78냉을 꽉 채우니 무거운 겨울 파카를 벗는 것처럼 가벼워졌다. 단지 냉온욕만 하고 나왔는데도 한 시간이 지났다. 별로 하는 일이 없어도 시간은 금방 갔다. 수영장에서도 은하수랑 같이 탈의실에 들어가면 은하수가 먼저 풀장에서 돌다가 뭐 하느라 이제 와, 하기 일쑤였다. 군대에서 꾸물댄다고 그렇게 얼차려를 받았어도 여전하다. 그런데 오늘은 은하수가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다. 한 시간이 더 넘어서 며칠 전부터 찌뿌둥해서 사우나를 오래 했어, 하며 말간 얼굴로 나왔다.

 

우리는 백사장을 지나 솔숲을 한 바퀴 돌았다. 사람은 없고 텐트만 쳐진 일명 장박 텐트가 많았다. 봄을 이렇게도 기다리는구나. 텐트를 치우라는 말인지 자기 텐트이니 놔두라는 말인지 모호한 메모와 연락처를 쓴 메모지가 붙은 커다란 텐트 앞에서 메모의 의미를 해석하려 했지만 결국 못했다. 소나무 사이사이에 친 크고 작은 텐트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속삭이고 있었다.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 쌀쌀했지만 뒤끝이 살랑거렸다. 봄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바다는 잔물결로 찰랑거렸고, 아이 몇이 바짓가랑이를 걷고 첨벙대고 있었고, 멀리 어선 한 척이 물결을 가르며 지나가고 있었고, 바닷가 산기슭에 하얀 꽃을 수북하게 피운 목련 한 그루가 외로이 서 있었다. 백석 시인의 노래 한 구절이 어렴풋했다. 가장 귀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처럼 거기 산기슭에 목련이 홀로 서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메모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몽하리사람들 백제를 만나다  (4) 2024.11.05
기온(紙園)역에서 너를 만나다  (4) 2024.03.15
두 남자가 꾸는 꿈  (0) 2024.03.02
저기 마지막이 온다  (1) 2023.12.22
캠핑의 추억  (0) 2023.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