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자시(子時)에 별이 총총했다. 상관은 다급하게 석부리를 찾았다. 석부리가 상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때까지 한식경이 온밤이라도 되는 양 더디게 갔다. 상관은, 여전히 잠결인지 조막손으로 눈두덩을 비비며 휘적거리는 석부리를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다그쳤다. 왕께서 침소에 아니 계신다. 그런디요? 석부리가 하품을 하며 상관을 빤히 쳐다봤다. 네 이놈. 갑자기 높아진 목청에 스스로 놀란 상관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석부리의 귓불을 틀어쥐고 추켜올리며 주위를 살핀 뒤 귀에 대고 나지막이 엄포를 놨다. 이놈아, 정녕 니가 명을 다하고 싶지 않은 것이냐? 숨도 쉬지 말고 이 길로 별궁으로 가서 왕의 그림자를 찾아라. 아아, 아파요. 석부리가 버둥거렸다. 이놈이 그래도. 상관이 손에 힘을 줘 다시 한번 틀어쥐고 힘을 빼자 석부리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달도 없는 오밤중에 너른 연밭에서 어찌 찾는데요. 석부리가 귀를 움켜잡고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뻔히 거기 계실 것인디 머하러 찾아라 그런다요. 이놈이 아직도 잠이 아니 깨었구나. 상관이 석부리를 쥐어박으려다 그만두었다. 상관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왕은 그믐달이 뜨는 밤이면 별궁 앞 연밭과 연못을 헤매다 동틀 무렵에야 별궁 침소에 들고는 했다. 상관은 그저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대소신료의 입길에 오른 지도 오래되었던 터라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왕은 미동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상관은 잘 알고 있었다. 석부리가 코를 훌쩍이며 돌담을 돌아서 사라졌다.
상관은 저 아이보다 더 어릴 적에 궁에 들어왔고 어느덧 한 갑자가 훌쩍 흘렀다. 금 이전에 선대 왕 두 분을 모셨고, 보냈다. 상관은 금이 궁에 들어오던 날을 잊을 수 없었다. 금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고, 인중에 허옇게 콧물 자국을 그리고 있었다. 금은 어미를 잃고 땅을 헤집어 마를 캐고 팔아서 연명하고 있었다고 했다. 금의 몸집은 컸으나 어렸다. 작금에 이르러 선왕을 따랐던 무리는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를 일이었고, 변방은 밤낮으로 적국의 말발굽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계속된 가뭄에 농사를 짓던 백성은 저잣거리를 헤맸다. 왕의 뜻을 좇아 거년(去年)에 궁을 이곳 사비로 옮겼으나 왕은 여전히 그믐밤에 잠들지 못했다. 상관은 백마에 올라 긴 칼을 휘두르며 변방을 누비던 선왕을 떠올렸다. 금이 선왕의 뜻을 이을 수 있을 것인가. 상관은 석부리가 사라진 어둠 속을 바라보며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연못가에서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아리따운 여인 같은 버드나무 아래에 몽하리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긴 여름 끝에 찾아온 초가을 햇볕은 따가웠지만 버드나무 그늘은 선선했다. 키가 큰 연은 연밥을 이미 연못으로 되돌려보내서 푸석거렸지만, 연못에 가득하게 무리를 지어 있었다. 할머니! 하진이가 장로님을 보고 달려가 안겼다. 할머니 보고 싶었어? 응. 장로님이 하진이를 토닥이며 물었고, 하진이가 야물게 대답했다. 몽하리 사람들 백제기행 둘째 날 오전에 예배를 보러 세종시 어디쯤 있는 교회에 할머니와 몇 분이 다녀오셨고, 부여 궁남지에서 몽하리 사람들과 재회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연못을 돌았다. 꽃이 한창이거나 이미 꽃이 졌거나, 키가 훌쩍 크거나 방바닥에 깔린 요처럼 수면에 펼쳐졌거나, 갖가지 연이 연못마다 가득했다. 궁의 남쪽에 별궁을 짓고 연못을 파고 정원을 가꾸고 배를 띄웠던 천오백 년 전 왕은 지금 몽하리 사람들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음이, 사랑이를 필두로 아이들이 줄을 서서 연못가에 솟대처럼 하늘 높이 솟은 그네를 탔고, 아빠가 지난밤 숙취를 날려 보내려는 듯이 아이를 태운 그네를 힘껏 밀었다. 차례를 기다리다가 지친 누군가 1분 다 됐다고, 외쳤다. 아이들이 맑고 투명한 가을 하늘 하얀 뭉게구름 속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했고, 늘어뜨린 주렴처럼 연못가에 줄지어 서서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 아래로 몽하리 사람들이 백제 왕과 왕비의 행렬 사이에서 느리게 걸었다.
왕과 왕비는 오층석탑을 향해 합장했다. 몇 걸음 뒤에서 상관은 조심스레 왕의 뒷모습을 살폈고, 석부리가 하품을 하다 멈칫했다. 어김없이 그믐달이 떴고, 그믐밤 까만 어둠 속에서 절집은 고요했고, 오층탑은 형형하게 빛났다. 잠시 후 석부리가 등을 들고 앞장서고 왕과 왕비가 탑을 돌았다. 상관은 가만히 왕의 그림자를 에돌아 뒤를 따랐다. 어미를 잃은 왕은 사비로 와서 왕비를 맞아들였다. 변복한 왕은 국경을 넘어 적국의 궁을 맴돌며 짊어지고 온 마를 적국의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고, 아이들에게 금이 공주를 범했다는 노래를 부르게 했다. 노래를 들은 적국의 왕은 이미 더럽혀진 공주를 내칠 때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내다보지 않았다. 왕은 적국의 공주를 취했고, 공주는 왕의 어미를 닮았다. 왕비를 맞이한 왕은 함께 연못가를 걸었고, 절을 시주했고, 탑을 쌓았고, 어미를 생각했다. 왕이 기도할 때 왕비가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왕과 왕비가 오층석탑을 향해 다시 합장했다. 왕이 허리를 숙이고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상관은 별궁으로 길을 잡았다. 왕비가 사비의 궁에 들어온 지 몇 해가 흐른 팔월 그믐 자시(子時) 무렵이었다.
몽하리 사람들은 궁남지를 한바퀴 돌고 주차장 앞 노부부가 주인인 천막 가게에서 쉬었다. 할아버지가 간판에 새겨진 냉커피를 한 잔 한 잔 느리게 따랐고, 아이들로 북적이는 아이스크림통 앞에서 할머니가 아이스크림 종류와 개수를 헤아렸고, 조금은 느릿한 아들인 듯한 중년 남자가 탁자 위에 수북한 냉커피와 아이스크림를 뒤적이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후마가 어제오늘 둘러봤던 유적에 관한 내용을 퀴즈로 냈고, 아이들이 손을 들어서 대답했다. 아니야, 내가 먼저야. 아이들과 어른들 소리로 천막 가게가 왁자지껄했다.
후마가 날도 뜨거운데 여기서 오층석탑, 설명할까요? 하자, 사람들이 예, 여기서 끝내요, 하며 웃었다. 동이 트는 새벽의 땅 사비, 부여는 외세를 등에 업은 신라에 의해 모든 게 불타버렸지만, 정림사 터에 홀로 남은 오층석탑은 천오백 년 동안 백제를 지켰다. 단순하고 정갈한 자태로 화려한 듯하며 장중한 오층석탑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지켜봤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의 번뇌를, 기쁨을 함께 나눴을까? 몽하리 사람들이 오층석탑 앞에서 합장하고 탑돌이를 했고, 탑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청명한 하늘에 하얀 구름이 무리 지어 흐르다가 오층석탑 끝에 걸렸고, 백제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풍선과 함께 가을 하늘에서 나부꼈다. 오층석탑 옆 박물관을 지나오면서 일본의 사찰, 건물 따위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낮고 단순한 듯 은근한 화려함을 풍기는 박물관 외벽을 따라서 일본 호류사가 백제 영향을 받았다고 후마가 말했다. 우리 것을 보면서 일본을 닮았다고 여긴 것은 우리가 무지한 탓이겠지, 했다.
주차장에서 모둠별로 차에 올라서 백제를 떠났다. 소금이 올 때 탔던 나무 차에 타는 걸 깜빡하고 오전에 타고 온 은하수네 차-예배 보러 가느라 배차가 바뀌었다-에 탔다. 뒤늦게 소금이 전화했지만, 나무는 벌써 오층석탑을 벗어나서 멀리 가고 있었다. 승차 정원을 초과했고 안전벨트도 그렇고 혹시 사고라도 나면 더 크게 날 것 같아서 평소보다 여유있게 몽하리로 향했다. 벌써 몽하리에 도착한 사람들이 사랑어린 운동장 평상에서 어젯밤에 남은 술과 안주를 처리하고 있었다. 몽하리 노을은 가뭇없었고, 저녁이 스미고 있었고, 어제 우리를 환대했던 최은숙 선생님의 글쓰기 수업을 받으러 학생이 하나둘 모이고 있었다. 우리는 몽하리를 떠나 백제를 만나고 몽하리로 돌아왔다.
보름날 밤에 왕과 왕비가 성 밖으로 나섰다. 상관이 무리를 이끌고 뒤를 따랐다. 오층석탑을 쌓은 왕은 나성(羅城) 밖 선대 왕들을 모신 무덤 곁에 사찰을 짓고 예불을 드렸다. 세상에 없는 향로를 만들어 보름달이 뜨는 밤 향물(香物)을 올릴 것이다. 왕의 말에 상관은 손이 맵고 입이 진중한 대장장이를 수소문했고, 왕의 의중을 전했고, 대장장이는 뭉툭한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며 듣고만 있었다. 재궁사찰(齋宮寺刹)에 다다른 왕과 왕비가 대웅에 합장했다. 주지가 키와 허리께가 두 척 반쯤 될 법한 금동향로를 앞세우고 들어왔다. 향로 끝에서 봉황이 날개를 펼쳤다. 향로를 대웅 앞 수미단에 모실 때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금빛 소리가 명징했다. 왕이 향물을 넣자, 주지가 불을 사르고 산악도를 새긴 뚜껑을 덮었다. 향내음이 피어났고, 왕의 어미를 닮은 부조 하나가 달빛에 찡, 울렸다. 왕과 왕비가 합장했다. 주지가 목탁과 경을 읊으며 108배를 했고, 왕과 왕비가 따라서 했다. 상관과 석부리는 허리를 구부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왕이 선대 왕들 곁에 어미를 두려 하자 대소신료가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왕은 향로를 지어 어미를 품었다. 어미 내음이 향로 안에서 뿜어져 나올 때 왕은 이마를 마룻바닥에 찧었다. 왕이 상관을 불러 향물이 오래 가지 아니하니 구멍을 더 뚫으라 했다. 돌아온 보름날 밤에 향물이 뭉근하게 탔고, 연기가 오래 피어올랐다. 왕이 사비로 와서 왕비를 맞아들였고, 왕비를 맞이한 지 십여 해 만에 후사를 보았다. 개 짖는 소리만이 변방의 정적을 깨웠고, 바다 너머에서 온 물산이 저잣거리에 넘쳤다. 왕과 왕비가 보름달이 뜰 때마다 대웅께 향물을 올렸다.
나무에게 몽하리 사람들의 백제기행 소식을 들은 최은숙 선생님은 당신이 사랑어린에서 받은 환대를 갚을 기회라며 숙소와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 최은숙 선생님은 사랑어린에서 아이들과 어른들 글쓰기를 도와주신다. 우리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고맙게 잘 받기로 했다. 우리가 선생님이 안내했던 숙소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은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나무는 우리를 위한 깜짝 선물이라며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비밀에 부쳤다.
둘째 날 아침 일찍 아이들이 마당을 뛰어다녔고, 지난밤 흔적을 치우느라 어른들이 부산했다. 몽하리 사람들 모두 최은숙 선생님의 배려로 편안한 밤을 보냈고 백제에서 아침을 맞았다. 하진과 하민은 엄마 없이 아빠와도 밤을 잘 보냈고, 은하수와 후마는 각자 가져온 1인용 텐트에서 잤고, 부족한 술을 끝까지 보충했던 아빠 몇은 옆집에서 외박을 하고 부스스하게 나타났다. 부산하게 마당을 치우고 아침을 차렸다. 누룽지와 최은숙 선생님이 끓여준 쌉싸름한 다슬기 된장국에 속이 편안했다. 어른들이 설거지와 짐을 쌀 때 마당에서 할머니와 게임을 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할머니를 모시고 몇은 예배를 보고 합류하기로 했고, 우리는 능산리 왕릉원을 찾아 부여로 향했다.
왕릉원의 하늘은 맑고 높았고, 천오백 년을 잠든 여러 왕의 능은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백제 사람들이 돌을 나르고 흙을 다져 쌓은 나성을 울타리 삼은 재궁사찰-무덤을 지키고 명복을 빌기 위해 무덤 근처에 지은 절- 터는 초록빛 잔디로 뒤덮였고 끝이 없을 것처럼 드넓었다. 나성 안쪽 산 자의 세계와 나성 바깥 죽은 자의 세계의 경계인 사찰에서 쓰였을 금동대향로는 주차장 공사를 하다가 논에서 발견되었다고 후마가 말했다. 후마는 이번에도 재치있는 입담과 해박하고 정확한-특히 숫자에-역사 이야기로 우리를 들었다 놨다 했다. 어른들은 절터를 천천히 걸었고 아이들은 뛰었다. 지금껏 한 번도 아이 중에 누구도 울지 않았는데, 하진이가 넘어져서 처음으로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 절 윤곽을 복원한 유리판 너머로 왕과 왕비가 금동향로에 향을 피우고 108배를 하는 모습이 어렴풋했다. 가을 햇살이 따끔거렸다.
부여국립박물관으로 옮긴 우리는 금동대향로를 마주했다. 향로에서 피어오른 향내음이 부처님 세계까지 퍼져서 부처님이 우리를 굽어살피시리라. 제 한 몸을 불살라 맑은 향으로 주변을 물들이고 나쁜 냄새를 지우는 향을 담는 그릇인 향로는 바로 우리 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진한 향내음 못지않은 짜장 향을 찾아서 우리는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다며 거절당하고 옆집에서 해장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왕의 연못인 궁남지와 오층석탑을 찾아갔다. 사비 백제의 땅, 부여 읍내 거리는 조용하고 한적했다. 경주기행 때는 사람에, 차에 치여서 힘들었어, 누군가 말했다. 우리는 궁남지에서 할머니와 다시 만났고, 향원이 후마에게 이번 기행의 고마움을 전했다.
우금티에 오른 왕이 고삐를 당겨서 백마를 멈춰 세웠다. 백마가 갈기를 털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뒤늦게 무리를 이끌고 도착한 상관이 왕의 백마 발치에 섰다. 상관이 자신이 탄 말을 쓰다듬었다. 사비로 갈 것이다. 왕은 사비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수일 내로 그리 할 것입니다. 상관이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웅진에서 지난날 선왕을 따르던 무리의 불미스러운 일도 그러하려니와 사비 이남 곡창지를 정비하여 변방의 외적에 맞섬이 옳았다. 상관은 왕이 품은 또 다른 뜻을 모르지 않았으나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선왕의 뜻을 잇기만을 바랐다. 그믐날 밤에 왕은 백마를 타고 우금티에 오르고, 내쳐 청벽산까지 거칠게 달렸다. 그때마다 상관이 소리 없이 따랐다.
왕이 선대 왕들을 모신 무덤 앞에서 사비로 갈 것임을 고하였고 술을 바쳤다. 상관이 왕의 술잔을 받아 선대 왕들이 흠향하도록 하늘 높이 들었다. 상관은 왕이 사비로 간다고 했을 때 왕이 선왕의 뜻을 이을 때가 비로소 다가왔음을 알았고, 왕이 그믐밤에 잠들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왕은 사비에서도 그믐밤에 쉬이 잠들지 못했다. 웅진에서 마지막 그믐밤인 오늘도 왕은 이곳 우금티를 거쳐 청벽산으로 내달릴 것이다. 청벽산 깎아지른 벼랑 끝에 올라 강물을 굽어볼 것이다. 상관은 날이 밝는 즉시 사비로 떠날 채비를 재촉하리라 마음먹었다. 웅진에서 사비로 떠날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어린 앞에서 모여 미리 배정된 차에 나눠 타고 백제의 첫 번째 목적지인 우금치를 향해 출발했다. 할아버지는 이번 여정도 여정이거니와 동물가족 때문에도 사랑어린에 남았다. 동학농민군은 웅진, 공주를 거쳐 한양으로 내달리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만 했던 우금치를 향해 맨몸으로 돌진했다. 새로운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절규가 그들을 우금치로 향하게 했으리라. 우리는 우금치전적탑 앞에서 마음 모으고 기도했다. 불순한 쿠데타를 혁명으로 위장하려 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흔적을 새긴 비를 치우는 게 맞지 않나, 라고 말했지만, 그동안 누구라도 했을 이야기였다는 걸 알았고, 그들의 위장을 알 수 있으니 되었다, 싶었다. 후마가 근현대사의 아픔을 이야기했고, 관련해서 할머니께서 당신 아버지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셨다. 할머니 이야기는 대륙을 넘나들었고 시공을 초월해서 어제 일 같았다. 우리는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형형색색 도시락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우리는 무열왕릉에 들렀고 박물관에서 부장품을 봤다. 금으로 만든 갖가지 노리개와 그릇, 온갖 유물이 천오백 년을 건너서 우리를 맞이했다. 죽은 왕을 지키는 진묘수는 해학적이어서 귀여웠고, 귀여워서 살아 움직였다. 공주는 웅진 백제의 도읍이었다. 공주는 조용하고 한적했다. 도시 어디에나 있는 마천루 같은 아파트 단지가 보이지 않아서 좋다, 누군가 말했다.
우리는 나무가 알려준 주소를 네비에 입력하고 숙소로 향했다. 금강 옆으로 자동차가 즐비했다. 하늘 높이 백제축제를 알리는 깃발과 풍선이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웅진, 공주를 가로지르고 금강을 따라서 세종시 외곽으로 갔다. 도로변 언덕배기의 숙소는 금강이 한눈에 보였고, 맞은편 청벽산은 깎아지는 절벽이 금강으로 스미고 있었다. 최은숙 선생님이 앞치마에 손을 훔치며 달려 나왔고 저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고소했다.
저녁거리를 사러 장을 보러 가고, 고기를 구울 불을 피우고, 밥을 하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당에서 뛰어노는 마음이, 사랑이, 하진이, 하민이 아이들과 어른들의 부산한 모습을 보니 가족끼리 모여서 여기저기 다니던 젊은 아빠였던 적이 까마득했다. 이제는 아이들을 보고, 우리 딸, 하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때가 됐다. 은하수가 우리 애기, 하면 되지. 우리 손주, 할 수는 없고우리 애기가 맞네, 싶었다. 이런 우리 아이들이 엄마아빠랑, 언니누나랑 열심히 놀았고, 숯불에서 고기를 옮겨 놓기가 바쁘게 없어졌다. 밥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든이가 우리 라면 언제 먹어요? 했고, 아이들이 라면 몇 봉지를 순식간에 먹어 치워서 어른들이 입맛만 다셨다고도 했다. 금강의 밤공기가 맑았고, 청벽산에서 부는 선선한 바람이 몇 순배 술에 불콰해진 어른들 얼굴을 스치고 뒷산으로 넘어갔다.
왁자지껄한 마당으로 밤이 깊어졌다. 아이들 잠자리를 봐주던 어른들도 저마다 누울 자리를 찾아 들었고, 아빠 몇이 남은 술과 안주를 챙겨 옆집으로 갔다. 아무래도 술이 부족할 거 같다는 말에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이 술을 사러 또 갔다. 그믐달이 뜬 한밤중에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네비에 의지해 차를 몰았다. 산골짜기로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았다. 골짜기에서 내려올 때 강 건너 청벽산 능선이 어슴푸레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말을 탄 사람처럼 보이는 희끄무레한 형체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말갈기인지 옷자락인지 바람에 흔들리듯이 느리고 길게 나풀거렸다. 얼른 상향등을 켜고 힘껏 가속 페달을 밟으며 핸들을 꽉 움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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