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야마에 온지 3일째 밤이네요. 어찌됐든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곳에서도 시간은 흘러가고 주린 배는 채워지고 가보고 싶은 곳은 찾아가게 되네요. 신기하게도...
지난번 봄에 연극 공연이 끝나고 티켓판매한 것과 전남도에서 지원금이 남았는데 연극선생님께서 이걸 어떻게 쓰면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고민하다가 매년 8월 말에 일본 도야마 도가라는 마을에서 연극축제를 하는데 거길 가면 좋겠다고 학생은 반액, 어른은 3분의 1정도 극단에서 부담할테니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초등학생 포함해서 11명이 간다고 했고 비행기 예약에 들어갔습니다. 근데 확정된 줄알았던 예약이 취소 되고 도야마행이 취소됐는데 다시 추진해서 이번에 오게 됐지요. 처음과 다르게 이틀이 늘어나긴 했지만요.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천천히 걸으면서 도야마라는 동네를 알아보자고 했습니다. 굳이 숙소라든가 기차표라든가 하는 것들을 예약하지도 말고 현지에서 찾아보자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본을 가본 사람도 없고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없는데 학생 7명에 어른 4명 총 11명이, 말하자면 무턱대고 가는 게 가능할까, 고생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나에겐 많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느긋했지요. 다른 사람들은 뭐 다들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하면서요. 저는 워낙에 무슨 일을 할 때 걱정도 많고 또 그만큼 준비도 하고 하는 타입이라...아무튼 말 그대로 무대뽀로 일본으로 왔답니다.
근데 역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소소한 거지만. 입국신청서에 우리가 묵을 호텔명을 적는 난이 있었는데 우리는 모두 당연히 공란이었지요. 왜냐면 현지에서 알아보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입국장에 한국영사관에서 나왔는지 한국사람이 볼펜 한 주막을 쥐고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서 신청서를 확인해주고 있더라고요. 그분이 묵을 호텔이 없으면 임국 거절될 수 있으니 아무 호텔이나 적어라고 해서 급하게 검색하고 적어서 통과됐답니다.
공항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잡고 호텔이나 시장 있는-시장을 가야 먹을가리가 있을테니- 데가 어딘지 공항버스 타고 어디서 내려야 되는지 안 되는 영어, 일본어 회화책 들고 물어 물어서 숙소를 잡았답니다.
그렇게해서 구한 데가 일본 요리료칸 키요타였답니다. 전통 일본식 다다미방에 아침밥 포함해서 11명이 74,000엔에 일본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답니다. 그나마 좀 깎아서. 근데 알고보니 비싼 데서 묵은 거였어요. 잘 모르지만 일본에서 료칸은 되게 비싼 말하자면 일류 호텔인 거 같던데 여긴 그런 료칸도 아닌데..ㅠㅠ
일본에서 첫날 숙소를 잡고 오후에 남은 날을 묵을 숙소를 찾아 헤맸습니다. 아무래도 전통여관이라는 키요타는 말은 료칸인데 일반적인 일본의 고급스런 그런 료칸은 아닌데 비싸기만 한 거 같고 사실 하루에 74만원을 주다가는 방값만 5일에 얼른 계산해도 350만원이 넘으니...ㅠㅠ 일본에서 첫날 밤은 전통 여관에서 잤지만-사실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 일단 여기서 하룻반 묵자, 라는 맘이 더 컸지만- 7만4천엔은 오기 전에 대강 검색해봤던 호텔 가격과는 너무 격차가 컸지요.
그래서 우리는 도야마시 역전 번화가를 찾아가서 호텔마다 물어보러다녔습니다. 역전에는 15층 가까이 되는 호텔이 진짜 많았는데 11명이 한꺼번에 4박을 묵기에 무리였는지 가는 데마다 방이 없었어요. 아이들에게는 밥먹을 만한 식당을 찾아보라는 미션을 주고 어른들은 방을 구하러 다녔지요. 예닐곱군데 이상을 다녀봐도 방이 없을 때는 좀 깝깝하고 걱정스럽고 예약하자니까 무대뽀로 그냥 왔다고 화가 나고 내 집 없는 설움이 이런 걸까 싶더라고요. 딸린 아이들도 많고..ㅠㅠ
엄마들은 관광안내소를 찾아가서 매달리고 나는 뒷골목에서 담배 한대 피우다가 몇군데만 더 찾아보자, 하고 들른 두번째 호텔에서 방 4개에 아침밥까지 주고 4박에 17만 6천엔, 쉽게 우리돈으로 170만원에 구했답니다.
아, 돈도 중요했지만 진짜 다리 아프고 힘들게 다녀서인지 연극페스티벌 하는 도가라는 동네에 가기 전까지 4박을 지낼 방을 구했다는 것에 무조건 결정했지요. 계산해보면 하루 방 하나에 조식 포함 11만원이니까 비싼 것도 아닌 거 같고... 손짓 몸짓에 일본어 번역기에-이건 사실 오류가 크더라고요. 집에서 연습해볼 땐 와따 좋네, 이거만 있으먼 일본 다 다니겄네 했는데 주변이 시끄럽고 로딩도 오래걸리고..- 콩글리시에 아, 너무 힘들었답니다.
어른들이 방을 구할 때 아이들에게 먹을 만한 식당을 알아보라했더니 즈그들 구경하기 바빠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고등학생들이란 하고 말았습니다. 방 구하면서 본 라면집으로 가서 생맥주에 이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블랙라멘으로 먹었지요. 간장라면은 달고 짜고 돈까쓰덮밥도 달고 짜고... 숙소에 돌아와 편의점에서 산 사케와 맥주로 입을 달랬습니다.
낯선 일본 도야마의 첫날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사진도 못찍었으니...ㅠㅠ
이틀째 되던 날, 숙소를 옮기고 도야마시내 구경에 나섰습니다. 도야마 관광안내서를 보고 가까운 데부터 둘러보기로 했지요. 첫째날과 둘째날은 숙소 잡고 도야마 알아보기였으니 안내서를 뒤적였습니다. 3일째부터는 나름 계획이 있지만 아무튼 이틀은 무작정 돌아보기 입니다.
그래서 정한 곳이 이와세라는 도야마 북쪽 바닷가 마을입니다. 도야마역에서 전차로 25분을 가면 나옵니다. 해안가에 앞으로 도야마만을 뒤로 다테야마를 바라보는 전망대가 있고, 200년이 넘은 모리집안의 고택을 중심으로 일본의 옛날 집들이 골목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리가의 고택에 걸린 일본지도가 우리가 지금까지 본 것과 반대네요. 우리나라와 대륙이 지도 아래쪽이고 일본이 위에 있어서 태평양을 바라보는 형태로 걸려있어서 처음에 거꾸로 걸어놨다냐 했는데아니었습니다.
주변 골목 상가는 간판이 있는 듯 없는 듯 해서 식당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따가운 햇살에 골목을 느릿하게 걷는 게 힘든지 아이들은 온갖 인상을 짓고 언제 숙소로 갈 건지만 물어봅니다. 식당을 찾아보라했더니 그나마 배고픈 건 면하고 싶은지 한참동안 흩어졌다가 마을 소개 팜프렛을 들고 왔습니다. 아이들이 알아온 식당은 방금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온 곳이었는데...ㅠㅠ
메뉴판에 사진이 있었기에 그래도 뭔가를 먹을 수 있었네요. 뭐 대부분이 딸고 짜긴해도... 어렵게 밥을 먹게돼서 좀 짜증이 났는지 아이들은 볼 것도 없는데 여길 왜왔나하며 뾰루퉁합니다. 몇시간 자유시간을 주고 현해탄을 바라보는 전망대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구빈이와 구빈이보다 한 살 어린 예온이는 둘이서 뭐가 좋은지 깔깔대며 여기저기를 누빕니다.
고등학생들을 보내고 우리는 고즈넉한 골목길을 걷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한 까페에서 커피와 주스를 마시며 여유를 즐겨봅니다. 까페 주인장이 할머니인데 커피를 내리는 게 특이하네요. 알콜램프로 둥근 비커에 물을 끓이고 그 비커 위에 머그컵 같은 비커에 커피가루를 넣고... 연극선생님이 대학 때 내리던 방식이라며 이름을 얘기해줬는데 잊어버렸네요. 사진도 휴대폰으로 찍을 건데...ㅠㅠ
바닷가 전망대에서 현해탄을 보고 구름에 휩싸인 3000미터 봉우리가 이어진 다테야마를 오르는 걸 살짝 동경하다 내려옵니다. 다테야마에서 내려온 물이 도야마 앞바다로 흘러 들어옵니다. 그 강을 따라 배가 다닙니다. 숙소로 돌아갈 배를 타러 터미널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마지막 배는 끊겼고 아이들은 그때서야 자기들이 이 근처까지 왔었다고 말합니다. 그럼 배 시간을 보고 왔어야지, 했지만 배를 탄다고만 말했지 시간을 보람는 말은 안했잖아요, 식당도 알아봤는데 이런 것도 알아봐야돼요 툴툴댑니다. 다시 전차역으로 이동, 또 걸으니 햇살은 따갑고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숙소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돈과 자유시간을 주고 저녁을 해결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쉬었다가 날이 어두워질 때 호텔 옆 선술집엘 갔습니다. 도야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테이블을 길에 내놓은 가게였습니다. 밤바람은 선선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호텔 근처에 도야마역, 시청, 현청이 있어서 사람들 왕래가 빈번합니다. 주변 선술집에도 사람들이 북적이고 젊은 종업원들의 인사와 주문을 넣는 외침소리가 섞여 왁자지껄합니다. 사케는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고 도야마의 밤공기는 불콰해진 목덜미를 쓸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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