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 몇 장

구례 우리읍내

 

 

 

 

 

재작년부터 배움터의 학부모 연극반 수업이 연극선생님 일정으로 인해 구례로 옮겨졌습니다. 우리들 이야기로 만든 짧은 연극 <영숙이>를 펼쳐놓은 이후 무지개, 소리샘, 저 이렇게 셋이서 연극선생님을 따라서 구례에 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구례극단 <마을> 단원들과 함께 연극수업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러저러한 일들 때문에 쉬기도 했지만 무지개와 소리샘은 계속 다니셨고 윤수와 미르가 작년 가을부터인가 합류했습니다. 간단한 몸풀기, 발성 연습 그리고 대본을 읽는 수업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구례분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비록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는 하지만 구례까지 가는 길은 녹록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불가피한 일이 생길 때면 어쩔 수 없이 빠지기도 했지만 그냥 괜히 가기 싫은 날엔 소주나 한잔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셋 중에 누구라도 빠지면 허전한 마음이 들거나 연극반 존재 자체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한켠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윤수와 미르의 합류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구례에서 수업을 마치고 순천에 돌아오면 <처음처럼>에서 우리가 연극을 하는 마음, 이유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처음처럼 쭉~ 해나가자고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표현은 하지 않았더라도 서로의 마음은 그랬습니다. 몇 번의 상처를 나누기도 하고 말입니다.

 

 

 

 

 

희곡을 읽는 일도 쉬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읽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러시아 사람들 이름이 어려워 내용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업이 계속 될수록 우리는 <갈매기>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갈매기>는 몰락해가는 러시아 귀족 집안의 영지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일들이 소소하게 펼쳐집니다. 귀족 집안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는 배역을 맡아 읽어볼수록 희곡의 배역에 따라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순천의 세 명은 <갈매기>를 좋아했습니다. 순천팀은 갈매기를 상연하자는 의지가 강했지만 무대에 올리기엔 무리라고 선생님께서는 생각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좋아하는 것과 제대로 표현해내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일테니까요. 그즈음에 손톤 와일더의 <우리읍내>를 만났습니다. 빠른 전개와 단순한 대사, 생략된 무대장치와 상상으로 그려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잔잔하지만 강렬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갈매기>의 불발에 따른 불만섞인 우리의 투정은 지난겨울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던 구례 읍내 연습실 계단을 내려올 때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례 사람들 혹은 우리들 이야기로 바꿔서 펼쳐봐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해가 바뀌고 와온 앞바다로 단원들 모두 MT를 떠났습니다. 우리는 둘러앉아 동네 사람들에 대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 말 한마디 한마디는 대사였고 몸짓은 이미 연기였습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웠고 MT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구례로 돌아와 초고를 읽어가며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보탰습니다. 어릴 적 동네 사람들이 마을 일을 울력으로 해나가듯이. 나의 겁없음으로 시작됐지만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아 무대에서 펼쳐질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거의 1월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본을 읽어나가면서 고치기도 하고 보태기도 했습니다. 원작에 나오는 그로버즈코너즈라는 동네 사람들과 구례 사람들, 우리들이 잘 어울려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극이 잘 흘러가도록 우리의 생각과 선생님의 생각을 나눴습니다. 읽는 작업이 마무리 되고 동작을 표현할 때 선생님은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짓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힘들어졌습니다. 다들 40대가 넘어섰으니 머리속으로, 마음으로는 어떤 상황인지 충분하게 이해가 되지만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표현하고, 자기 목소리로 들려주는 일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인 발성조차 되어있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배역이 정해지고 각자가 자신이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겨울밤은 깊어가도 <구례, 우리 읍내> 사람들과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소리샘이 맡았던 순천댁이 쌍둥이를 받고 돌아오는 새벽길을 걷는 '흐뭇한 발걸음'으로 대변되는 어려움은 모두에게 있었습니다. 각자 자신에게 찾아온 배역 속의 인물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그 사람은 누구일까, 왜 지금 이때에 찾아왔을까, 그와 어떻게 만나야 하나? 연극선생님의 디렉션에 따라서 자신의 생각과 몸짓을 덧붙였습니다. 진달래가 피고 산수유꽃이 피어갈 때에도 우리는 <구례, 우리 읍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 하고 힘겨워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자신을 투영하기보다는 자신을 잘 드러내는 일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될 때 쯤 수업을 끝내고 순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일이 공연 시작하는 날이라면 오늘 마지막 연습을 끝내고 어떤 생각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알 수 없으니 내가 지금 그 사람과 충분히 만나고, 연습하고 그때에 생각을 받아보자, 하고 윤수와 미르랑 얘길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밤에 별은 총총했고 구례의 겨울바람은 매서웠습니다.

 

 

 

 

 

공연날이 다가왔지만 제가 해야할 역할에 별다른 진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습시간은 마치 오디션을 보는 듯이 긴장과 떨림으로 가득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어떤 몸짓을 하는지 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던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편의 연극이 펼쳐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조화롭게 움직이며 돌탑을 쌓듯이 하나하나 자신의 역할을 해나갑니다. 그 안에서 저도 하나의 돌맹이였고 얼마나 조화롭게 올려질 것인가 그리고 그때 나에게 10여 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짧지 않은 그 시간만큼은 무대 위에서 내가 온전히 주인공이 된다. 재미있게 즐겁게 주인공으로서의 시간을 보내야지.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발 딛고 사는 이곳에서 사람들, 자연, 우주만물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데 나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가, 이곳에서 사는 시간도 우주의 저 망망한 시간 속에서 본다면 10여 분이 될까 아마도 찰나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읍내>의 에밀리와 미자처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오늘을 되돌아보며 눈물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공연 전날 마지막 연습시간이 끝났습니다. 순천으로 오는 길에 굳이 오늘 어떤 마음인지 확인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지금껏 해온 대로 오늘과 같은 내일을 맞이할 뿐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일주일 간의 공연은 끝이 났고 지금은 마치 긴 여행에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겁없이 나섰던 설렘의 여행길에서 오르막을 걷는 힘듦,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매는 막막함, 동행했던 이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과 그걸 넘어서려는 몸짓들 또 예술이 주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서 찾는 소박한 기쁨과 소소한 일상이 가득한 지금, 오늘로 돌아왔습니다. 그 여행길을 온전히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여행길에 보내준 많은 격려와 응원이었습니다. 사랑어린배움터 식구들은 늘 사랑어린 눈길로 지켜봐주었고 아낌없는 박수와 환한 미소로 여행길에 동행해주었습니다. 다른 어떤 무엇보다 저에게,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온 마음을 모으고 두 손을 모아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그해 겨울은 길었습니다. 대략 열흘 정도가 지나면 4월이 되지만 여전히 추웠습니다. 사람들은 지리산으로 달려가는 바람을 보며 아직은 겨울이여, 했고 산수유나무를 쳐다보며 봄이 오긴 오겄제, 했습니다. 지난밤 산고를 이겨낸 백련리 새댁은 동이 터오자 쌍둥이를 쑥 낳았고, 밤새 곁을 지킨 산파는 싸늘한 새벽공기에도 열에 들떠 흐뭇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지리산 왕시루봉에서 서서히 아침 햇살이 퍼지듯 우리 읍내의 하루도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어느 틈에 해는 불쑥 솟아오르고 아침이 되기만을 기다린 사람들처럼 이집 저집이 왁자지껄했습니다. 아버지들은 밤을 새우고 막 들어왔거나 새벽에 나갔고, 어머니들은 수십년 동안 해오던 아침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들어갔고, 아이들은 따끈한 아랫목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호통을 듣고서야 어기적거리며 마루로 나왔습니다. 왕시루봉으로 찬찬히 햇살이 퍼지듯 구례 읍내의 하루도 서서히 시작됐습니다신문을 돌리는 누구네 손자의 활기찬 목소리가 아침을 한껏 열어젖혔습니다.

 

안녕흐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