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 선암사에 갔습니다. 비는 사람들 머리 위로, 꽃과 나무 위로 거칠지 않게 살짜기 내려앉습니다. 선암사, 용화사, 다연사, 향림사 등 절집 식구들 한마당잔치에 사랑어린사람들이 초대를 받았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로 가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는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매표소에 양해를 구하고 사람들이 걷는 길을 차를 타고 갑니다. 걷는 사람들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입니다. 이 길은 언제나 상쾌하고 맑아서 좋습니다. 비가 내려앉은 숲은 온통 초록물로 일렁거리고 사람들은 알록달록한 우산을 쓰고 그 길을 걸어 갑니다.
부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연등에서 파랗고 노랗고 빨간 물감이 되어 뚝뚝 떨어집니다. 사월초파일이 어느 때인지 휴대폰의 달력을 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연등은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집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절 마당, 화단이 온통 꽃무더기입니다. 비를 맞은 수국은 긴 머리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초록의 보리밭을 뛰어가는 맑고 청순한 스테파네트처럼 보입니다. 비를 머금은 철쭉꽃은 투명 립스틱을 살짝 바른 그녀의 입술처럼 예쁘게 빛납니다. 선암사 곳곳에는 오래된 나무가 많고 그만큼 많은 꽃들이 한창입니다. 그 꽃을 보며 감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비가 오면 아이들은 신이 납니다. 질퍽한 진흙을 주무르고 그림을 그리고, 물꼬랑인지 토성인지를 쌓기도 합니다. 그걸 바라보는 어른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오늘이에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비는 선암사 대웅전 앞 마당 돌탑에도 오늘이에게도 연등에도 골고루 내립니다. 가늘게 내리는 빗줄기는 겨울밤 소담스럽게 내리는 눈처럼 소리도 없이 살짝 내립니다.
사람들은 오늘을 추억하는 사진을 찍습니다. 매화나무가 둥그런 터널을 만들자 사람들은 그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이상하게 나왔어, 다시! 몇 번을 찍고 확인한 뒤에야 됐어, 합니다. 그 모습을 오래된 매화나무가 내려다봅니다. 빗줄기는 점점 더 가늘어지고 공기는 더 맑아집니다. 법당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도를 합니다. 저마다 마음으로부터 울림을 따라서 혹은 그 울림을 마음에 담은 채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입니다. 사람들의 기도는 잠깐 끊어졌다가 이내 다른 사람으로 이어집니다.
비빔밥으로 점심공양을 끝낸 사람들이 대웅전 앞으로 모여듭니다. 대웅전 앞 만세루에서 노래자랑이 열립니다. 괘불이 내려다보는 무대자리에는 미라볼, 사이키 조명이 돌아가고 전문 MC가 재밌게 진행을 합니다. 각 절을 대표해서 두 팀씩 참가합니다. 우리 배움터에서도 두 팀이 참가합니다. 함박꽃과 아이들, 오늘이와 오늘이 아빠 두 팀이 참가신청서를 냅니다. 심사위원이 맨 뒷줄에 앉아서 점수를 매깁니다. 점수표를 슬쩍 봤더니 음정 박자 가사 각 30점, 무대매너와 관객 호응도가 10점 해서 100점 만점입니다.
초대가수가 여러 명 나와서 노래를 들려줍니다. 순천 인근지역에서 연예활동을 하면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다들 노래를 어찌나 맛깔스럽게 잘 하는지... 전국노래자랑에서 대상을 탄 분도 있다고 합니다. 그 분들이 주로 다연사를 다니시는지 다연사에서 오신 분들은 다들 가수입니다. 초대가수를 필두로 우리 식구들 하고 몇 팀만 살짝 들춰보기로 합니다. 일명, 함박꽃과 아이들은 한돌님의 한발짝으로 우리를 소개한 다음 본격적으로 무대매너와 관객호응도는 무조건 10점인 무대를 선보입니다. 인기상을 탄 게 당연합니다.
괘불이 있고 학승들의 강학 장소에서 사이키조명이 돌아가고 대중가요가 선암사 경내를 떠들썩하게 울립니다. 스님들은 대중과 어울려 박수를 치며 즐거워합니다. 속 모르는 사람이 보면 뭐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서로의 방식으로 어울리는 일이라 생각하면 재밌는 풍경입니다. 축하 무용을 끝으로 점수가 집계되는 동안 축구장으로 이동합니다. 더불어 축구시합이 끝날 때 경품과 시상을 한다고 합니다. 한번도 당첨된 적이 없는 경품추첨이지만 오늘은 혹시 또 모르니 응모딱지를 들고 기다려봅니다. 우리 식구들 중에 구랑실이 5만원권에 당첨되어 오늘 짜장면, 탕수육으로 저녁 공양을 했습니다.
축구시합은 선암사와 다연사, 사랑어린배움터와 용화사가 예선전을 치른 뒤 각각 이긴 팀끼리 결승전으로 우승팀을 가립니다. 선암사는 스님들로 구성되었고 용화사와 다연사는 신도들인 거 같습니다. 다들 축구화도 갖추고 준비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선암사와 다연사 전에서 다연사가 결승에 진출합니다. 우리팀과 용화사가 그 다음 게임입니다.
지켜보며 용화사의 미래가 밝다고 할 정도로 젊은 친구들로 구성된 용화사가 결승에 진출합니다. 아쉽지만 우리는 3, 4위전에서 선암사와 겨루기로 합니다. 스님들과의 축구 한 판에 어른, 아이가 총동원 되고 엄마들이 열띤 응원을 펼칩니다. 작은별이 심장파열을 호소하며 안되겄그마, 하고 일부님, 태언아빠, 멀리 진주에서 온 예림아빠, 민준아빠, 골키퍼로 선방한 오늘이아빠, 소성이, 현보, 준서, 민준이, 태언이가 투혼을 불사르고, 유일한 홍일점 구랑실 덕분에 스님들의 소림축구를 0대0, 무승부로 막아내고 승부차기로 넘어갑니다.
비록 두 게임 중 승부차기로 준서가 넣은 한 골이 유일한 득점으로 4위에 그쳤지만 우리 아이들, 어른들 모두 열심히 뛰었답니다. 어깨를 밀치고, 넘어지고, 발에 밟히고, 이제 더는 못 뛸 거 같은 호흡곤란이 오고, 축구공에 맞을까 움찔하기도 했지만 헛발질에 웃고, 넘어질 때 서로 토닥여주는 멋진 축구였습니다. 사랑어린배움터 대표 선수이니까요! 축구가 끝나는 것을 보고 선암사를 나섰습니다.
절을 내려가는 길에 연등이 줄지어 달려 있습니다. 색색의 연등마다 저마다의 사연과 마음을 담습니다. 어디에 사는 아무개가 마음을 담아서 연등을 답니다,라고 이름표가 붙어있습니다. 번지수까지 적어서 달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부처님의 공덕이 혹시라도 나를 못보고 지나가면 어쩌나 하는 애달픔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저 멀리 어느 곳, 어느 골목 몇 번지에 사는 조아무개에게도 복을 주시기를 빌어 봅니다. 저 연등이 세상 어느 골짜기, 어느 골목, 어떤 사람들의 어둠을 밝게 비춰주기를 빌어봅니다.
비는 진작에 그쳤고 초록은 짙어집니다. 이제는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길 웅덩이에 고인 물이 튀지 않게 앞 차가 가는 길을 따라 갑니다. 유리창을 내려서 조계산 공기를 들여오고 싶지만 걷는 길을 차로 지나가니 그러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예쁜 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절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즐거워하고, 절에 있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웃고 떠들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절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부처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부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람결에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차유리창으로 후두둑 떨어질 때 잠깐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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