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K에게 몽하리(夢下里)에서 살기가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K는 별다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촌에서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몽하리가 불편할 것 같다고 했다. 그가 불편할 것 같다던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아내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렇게 급하게 가지 않아도 돼, 한다. K가 생각해도 몽하리 가는 길에 설치된 과속방지턱이 많기는 많았다. 출퇴근을 할 때 가끔 몽하1리 쪽 외곽으로 나가 산업도로를 타기도 한다. 차에서 올라오는 덜컹거리고 삐걱거리는 잡소리를 듣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급하게 시내에 갈 일이 있을 때도 있으니까. 과속방지턱이 많은 것은 몽하리 가는 길을 따라서 자연 부락이 이어져 있고, 그런 만큼 들고나는 차량 통행도 빈번하고, 농기계도 많이 지나다니기 때문이겠지. 아이들 유모차를 본떠 만든 노인용 보행기에 의지해서 길을 오가는 노인네들도 많고...
K의 어머니는 구순이 넘은 노인네지만 아직 유모차를 밀고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K의 마음 한 구석에 뭔가가 늘 걸려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치매든 노환이든 뭐가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데 여전히 정정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끝인 모양이다. 한 달하고도 보름 전에 형님 집으로 옮겨간 어머니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혼자 살기 싫고, 사람 냄새를 맡고 살아야겠다며 옷가지며 이불을 챙겨서 형님 부부를 따라 나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0년 넘게 혼자 사셨으니 그럴만도 한데 왜 하필 형님 부부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당신을 모시겠다는 형님 부부를 따라서 형님 집으로 갔다.
K는 사람이 사람 냄새를 맡고 살아야제, 하면서 형님 차를 타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K가 사는 몽하리에서 북서쪽 방향에 K의 고향집이 있다. K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한 달 반 전까지 50여 년을 살았다. 스마트폰 화면에 형 이름이 떴을 때 K는 뭔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K는 어머니가 계시는 형 집을 한 달 반 동안 한 번도 가지 않았을 뿐더러 흔한 안부 전화도 하지 않았다. 거기에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가봐야 된다고 늘 자신을 설득 했지만 설득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했나 싶었지만 어쨌든 전화 통화조차도 하지 않았다. 형이 먼저 전화를 걸어오기 전까지는...
K의 형은 세상 모든 고통과 짐을 짊어진 자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줬다. 그의 습관인지 스타일인지 그는 평소에도 K에게 전화를 할 때면 그런 목소리를 냈다. 그럴 때마다 K는 스마트폰에서 얼굴을 돌렸고, 스마트폰을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걸 참았다. K가 들은 말은 어머니가 막내인 K를 찾는다는 말뿐이었다. K가 묻지 않았지만 그는 그동안 어머니가 이러저러 했으며, 자신은 할 만큼 했다는 따위의 말을 계속 했다. K가 듣지 않은 건지, 들리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고, 뭘 알았다는 건지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K는 알겠어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K는 시내로 나가며 급하게 과속방지턱을 넘는 중이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차는 덜컹거리고 하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올라온다. 지난 번 엔진오일을 교체할 때 정비소에서 뭐가 나갔다며 교체할 거냐고 묻기에, 안전에 크게 지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정비소 사장이 뭐든 안전에 지장을 주기는 주겠지만, 방지턱 넘을 때 좀 더 신경이 쓰이는 겠죠 뭐, 하면서 웃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수리하라고 할 걸! K는 과속방지턱이 나타날 때마다 신경질적으로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옮겨 밟았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조수석에 탄 K의 아내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채 앞을 응시하며 차분하다기 보다는 냉철하게 말했다. 어차피 올 일이 왔을 뿐이니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
K는 과속방지턱을 타고 넘는 순간이 마치 길고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가 내려가는 일처럼 아득했다. K가 사는 몽하3리는 마을 뒤에 산이 있고, 마을 앞으로 섬에 둘러싸인 호수 같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겨울에도 길고 나지막한 햇볕 덕분에 따스하고, 바다 건너로 해가 질 때면 노을이 진한 날이 많아서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을로 들고나는 길 양쪽에 오래된 벚나무가 무성하다. 벚꽃이 한창일 때마다 K는 드론을 구입해서 하늘에서 벚꽃길을 찍어야지 했지만 몇 해가 지나도 하지 못했다. 마을 어귀의 간척지 논을 따라 벚꽃길을 크게 돌아 얕은 언덕바지를 올랐다 내려가면 몽하2리와 몽하1리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삼거리라고 하지만 우회전을 하면 20미터쯤에 또 다른 삼거리가 있으니 삼거리라기보다는 사거리에 가깝다. 두 번째 삼거리 왼쪽 길 옆에 오래된 학교가 있고, 학교를 지나면 몽하1리와 자연 부락 몇 개가 이어지고, 이어서 산업도로에 오르면 대처로 나갈 수 있다. 학교 앞에는 교문 양쪽으로 무, 배추 등속의 푸성귀와 감나무 몇 그루가 심어진 작은 밭이 있다. 몽하리 아이들과 어른들은 밭에서 봄과 여름이면 채소 모종을 심고 풀을 매고 뛰어다니며 놀고, 가을이면 감을 따먹고 콩깍지를 턴다.
첫 번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긴 언덕을 오르면 몽하2리다. 주말이 되면 자전거 라이더들이 숨을 헐떡거리며 오른다. 그리고는 기나긴 내리막을 페달도 돌리지 않고 쏜살같이 내려가며 오르막을 오를 때 느꼈던 심장 터질 듯한 괴로움을 보상 받는다.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숨을 헉헉거리며 언덕을 오르는 중년 남자가 보인다.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펴야 오르막 오르기가 쉬울 텐데, 라고 K는 자전거를 추월하며 생각한다. K도 주말이면 가끔 이 언덕을 오른다. 언덕을 거의 올랐다 싶은 곳에 몽하리 이장이 산다. 이장은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퇴근 후에 이장일을 아주 가끔 한다. 이장으로서 그가 하는 일은 동네 사람을 불러내서 막걸리를 추렴하며 꿈속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가 공식적이며 행정적으로 이장인지, 다만 마을에서 이장으로 불렸는지에 대한 설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그가 이장이 된 과정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하기는 몽하리가 생겨난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았으니! K는 이 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는 그저 이장이었다. 긴 언덕을 올랐다가 내려가는 거기에 몽하2리가 있다. 그리고 면소재지까지 자연 부락 몇 개가 이어지고, 그에 맞춰서 과속방지턱이 신라의 고분군처럼 연달아 솟아있다. 면소재지의 파출소 사거리에서 산업도로와 만나서 북쪽 시내로 들어가거나 남쪽의 다른 시(市)로 간다. 형네는 시내 어디쯤 주택에서 산다.
K는 언덕을 빠른 속도로 내려오다가 내리막 끝에 놓인 과속방지턱을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넘어선다. 아내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선택하신 일이고, 형님네는 할 일을 한 것뿐이니, 우린 우리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K는 우리가 할 일 아니,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지만 막상 떠오르지 않았다. 몽하2리에 사는 D의 1톤 화물차가 길가에 주차돼 있었다.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났나 보네. 느지막이 집 짓는 일을 배웠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치밀함으로 벌써 집을 여러 채 지은 그였다. K는 D를 좋아한다. 풍물패에서 꽹과리를 칠 때나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할 때면 신명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그래서 집짓는 일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여러 채를 지었는지도 모른다고 K는 생각했다. K는 소탈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D의 얼굴을 떠올렸다. D는 자신의 부모나 주변 사람들 부모를 부를 때면 늘 <어른께서>, 라고 했다. 어른은 다 큰 성인과는 다른 말이겠지. 어르신하고도 다른가? K는 문득, 왜 그렇게 부르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D의 집을 지나 몽하2리를 벗어나자 얼마 전 리모델링을 해서 외관이 현대식 건축물 기분을 낸 식당에 불이 환히 켜져 있었고, 주차장에 차가 가득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 차로 반대쪽 차선이 밀렸고, 주차를 하고 식당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차선을 침범했다. 어김없이 과속방지턱을 올랐다가 내려갔다. 차는 여전히 덜컹거리고 삐걱거린다. K는 마침내 말을 하고 만다. 우리가 아니, 내가 할 일은 뭘까? 저 집은 맛도 별로고 비싸기만 한데 늘 차가 많네. 아내는 다른 소리를 한다. 그리고는 덧붙인다. 어제는 관광버스가 몇 대나 있더라니까. K는 관광버스가 몇 대씩이나 와서 손님을 내려놓을 정도로 식당이 컸었는지 슬쩍 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 집에서 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누구랑 먹었는지 생각했다. 식당 뒤편으로 해가 지고 노을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나왔는지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차장에서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이빨을 쑤시고 있었다. 차가 한 번 더 덜컹거렸다. 차 하부의 볼트나 나사 따위가 꼭 들어맞지 않은 채 헐거워서 부속이 제각각 따로 노는 것 같았다.
K는 지난 해 일 때문에 인근 도시를 오간 적이 있었다. 고속도로를 지날 때마다 터널이 몇 개인지 궁금해서 세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톨게이트를 나올 때마다 터널 개수를 세다가 말았다는 걸 알았다. 근 반 년 동안 일주일마다 고속도로를 다녔지만 한 번도 끝까지 성공하지 못 했다. 터널 개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특별한 일도, 중요한 일은 더욱 더 아니었지만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오늘 과속방지턱을 넘는 중에 문득 떠올랐다. 몽하리 가는 길에 과속방지턱이 몇 개나 놓여 있을까? 터널 개수를 세지 못 했는데 과속방지턱을 셀 수가 있을까? 둘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과속방지턱 개수를 센다면 터널 개수도 끝까지 셀 수가 있을 거 같았다.
K는 노인들이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두 손 손가락을 번갈아가며 세는 TV 정보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치매예방센터에서 나온 여자가 진행자와 게스트들을 상대로 시범을 보였고, 사람들은 어머, 자기는 잘 하네, 난 잘 안 돼, 이것도 못 해요, 하며 웃었다. 자동차가 덜컹거리고 삐걱댈 때마다 K는 과속방지턱이 몇 개인지 처음부터 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K는 어머니가 집을 나갔어 경찰에 신고는 했고, 하면서 말을 흐리던 형의 목소리가 지겨웠다. K는 어머니가 형 집을 나간 게 치매 때문인지 불화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형 부부와 어머니의 불화는 오랜 습관이었다. K는 어머니가 어디 계실까, 라고 말하기 전에 요즘은 CCTV가 많아서 금방 찾을 수 있어, 하는 아내의 말을 들었다. K가 CCTV도 많고 과속방지턱도 많구나 할 때 사거리 신호등에 좌회전 신호가 들어왔다. 산업도로를 타고 시내로 접어들자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무수한 빨간 브레이크등이 초저녁의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점멸했다. 빨간 불이 켜지고 꺼지는 점멸의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엄마가 있을 지도 몰라, 하지만 K는 말하지 못했다. K는 형 집 대문의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멈추고 심호흡을 하며 엄마, 하고 마음으로 불렀다. 그리고 생각했다. 몽하리 가는 길에 과속방지턱은 몇 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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