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겪은 후에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진실을 알게 했”다고 노래했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그 시절에 무작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불렀지만 지금은 잊힌 노래가 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예의 나도 있었고, 당연하게 나도 잊어버렸다. 문득 떠올라서 다시금 웅얼웅얼 불러보니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건 진실일 거란 확신이 든다. 다만, 지금까지 여러 번 아팠을 텐데 여전히 미성숙한 걸 보니 노래를 잊어버린 대가인 거 같다는 하나마나한 생각이 떠올라 씁쓸하다. 잊힌 노래를 불러들여야 우리는 아니, 나는 성숙해지는가?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진실을 알~게 했어요.” 시시때때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아플 때면-몸이든 마음이든-이 노래를 상기해야만 성숙해진다는 것 또한 진실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좋은 말도, 아무리 좋은 공부도 그때뿐이고 돌아서서 잊어버리면 시쳇말로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 것이니까. 그러니 수시로 되뇌고 상기해야 내 것이 되고, 내 안에 쌓여서 성숙한 내가 되겠지?
온몸에 들이닥친 아픔으로 잠들지 못 하고 뒤척이는 불면의 밤은 유독 길기도 길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입에서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사람이 부럽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는다. 다만, 아플 뿐!
그날은 구례 천은사 아래 마을에서 여러 사람이 어울려 저녁을 먹었다. 특별하다면 특별한 날이어서 다양한 음식과 술이 올라왔다. 처음 접한 음식도 있었고 맛도 있어서 이것저것 집어 먹었다. 근래에 들어서 예전과 다르게 오후 늦은 시각이 되어도 허기를 느끼지 못 하고 배부른 느낌이 남아서 저녁을 적게 먹던 차여서 더 많이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밥을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오후에는 간식을 놓지 않았었다. 더욱이 간식이며 군것질을 해도 살찌는 체질이 아니라며 더 즐겨했었다. 그런 식습관으로 나이를 먹게 되니 당뇨가 문 앞에 와서 노크를 하려고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앗,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며 놀라서 잡다하고 다양한 맛-어린이 입맛-을 끊고 저녁이면 당뇨에 좋다는 차를 오래 마셨다. 그래서 배가 쉬이 꺼지지 않고 혈당 조절이 되고 있는 갑다,라고 생각했다. 당뇨는 허기진 느낌을 달고 산다고 하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그것이지만, 어쩌면 미리 싸인을 보내준 전조증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잘 먹고 집에 돌아왔는데 소화불량에 찜찜했다. 매실을 마시고 소화제를 먹었다. 다음 날 새벽에 여수 앞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바다수영은 실내에서 하는 수영과 달라서 환상적이다. 드넓은 바다와 높고 맑은 하늘, 흐리면 흐린 하늘, 수영을 하다가 마주하는 일출은 바다에서 수영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거기다가 비까지 살짝 내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헤엄을 치다가 숨을 쉬려고 고개를 돌리면 수평선이 보이고 저 멀리 섬이 보이고 하늘을 나는 갈매기가 보인다. 그러다가 산 너머로 올라오는 해를 마주하고 바다에 햇살이 퍼지면 바다는 따스하고 나른한 포만감으로 나를 띄운다. 하지만 오늘은 몸이 무거워 바다수영을 맥없이 끝냈다. 이렇게나마 바다수영으로 운동을 하면 소화가 좀 될라나 싶었지만 바다에서 올라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후부터 소화불량은 그대로인데 두통이며 근육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요즘 같은 때에 열이라도 나면 큰일이었을 텐데 다행히 열은 없었다. 저녁을 거의 거르다시피 하고 두통약을 먹고 저녁산책을 했다. 저녁밥을 먹고 아내와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일은 즐겁다. 뾰루퉁할 때는 서로 살짝 거리를 두고 걸어도 좋고, 사랑이 살랑거릴 때는 손을 잡고 걸어도 좋다. 선뜻 나서기에는 식후 게으름이 몸을 잡아당기지만 이것만 이겨내면 저녁과 밤 사이를 가로지르는 공기의 상쾌함과 계절을 느끼기에 그만이다. 이리저리 담장을 휙휙 넘나드는 동네 고양이들, 평생 묶여 살다가 이젠 너무 늙어버려 쉰소리로 반기는 옆집 개, 맹랑하게 높은 음으로 짖어대며 쫓아오는 강아지 몇 마리,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매화며 등나무꽃, 공원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시내에서 온 사람들, 바닷물이 들고나는 것과 달이 차고 기우는 걸 보며 날짜를 헤아려보는 일 같은 것들은 저녁산책이 주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집에 올 때쯤이면 소화가 다 된 듯 가벼워진 몸을 느낄 수 있으니 더 좋다. 하지만 그날은 산책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소화가 되지 않고 두통이며 근육통은 더 심해졌다.
진통제를 한 알 먹었다. 진통제는 통증을 진정시키는 것인지 통증을 진작시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옆에 잠든 아내는 잠의 세계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는지 숨소리를 새근거렸다. 숨소리가 규칙적일수록 내게 오는 통증의 강도는 단계를 밟아가며 올라갔다. 손오공의 머리에 대고 주문을 외며 그를 길들이는 이가 삼장법사일진대 내 머리에 대고 주문을 외는 이는 누구인가? 나의 삼장법사님이시여, 당신의 말 한 마디, 몸짓 하나라도 내게는 귀감이 될지니 노여움을 푸시고 내 고통, 내 아픔을 놓아주시라! 창밖이 환해졌다가 어두워졌다. 옆집 아들이 귀가하는 모양이다. 몇 시나 됐을까?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소리가 커졌다가 사그라들었다. 옆집 아들은 진짜 집에 들어왔나, 개나 닭이 진짜 울었나? 이것은 망상이고 이명인가? 손톱 밑에 가시만 박혀도 참을 수 없으니 어떤 통증, 어떤 아픔이든 내게 왔을 때가 진짜다.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지금, 내가 겪고 있으니 당신은 알지 못하리라, 나의 고통을. 이제 옆에서 잠든 이를 부러워하는 마음도 일어나지 않았고, 몸을 뒤척이기도 어려워 반듯하게 누운 채 앓는 소리만 저절로 흘러 나왔다. 이 고통의 최종 단계는 어디인가?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은 끝이 없으니 그대, 어서 와서 내 아픔에 칼을 꽂으라. 내 아픔은 그대의 칼집일지니! 밤은 깊어가고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 새벽이 오면 아침도 오겠지. 아침이 오면 희디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맞이하겠지.
내 마음, 내 아픔을 알아줄 거라 믿었던 흰 가운을 걸친 그는 나를 배신했다. 지난 밤 잠들 기 전 스마트폰으로 폭풍 검색을 마친 아내가 내려준 진단은 대상포진. 얼마 전인가 나무가 앓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게 이건가? 그때는 그런 병이 있구나, 아팠구나, 하고 넘어갔던 내가 떠올랐다.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내 고통이 진정이기 때문이리라. 날이 밝자 아내는 사촌여동생에게 물어서 그가 근무하는 병원의 내과를 소개받았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안타까운 표정까지는 아니었지만 나에게 문진을 하고는 고개를 젓더니 신경외과로 가라고 했다. 대상포진에 걸맞는 증상이 아니란 이유였다. 근육통은 비대칭적이지 않고, 두통이 심한 걸 보니 뇌검사를 하는 게 맞을 거 같다고 했다. 신경외과 담당의는 MRI를 찍어서 봐야지 알 것 같단다. 한참을 대기하다 MRI를 찍고 집으로 돌아와 결과를 기다렸다.
점심 때가 지나서 나온 결과는 지극히 정상. 아내는 분명 대상포진인데, 하며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얼마나 다행이야, 한다. 별수없이 시간마다 진통제를 먹으며 간밤에 잠들지 못했던 잠을 잤다. 벌써 몇 끼째인지 알 수 없이 굶었지만 복통에 배고픔은 생각나지도 않았고 통증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후 늦게 통증병원 몇 군데에 전화를 했더니 환자가 많아서 지금 오면 진료가 어렵다고 했다. 몇 차례 더 검색을 하던 아내는 율촌면으로 나가자고 했다. 시골 약국이나 병원은 깐깐하게 진단하지 않을 거라며 여러 정황으로 대상포진 처방을 해줄 거라고.
병원이 끝나버려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몽롱한 상태로 차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병원 대신 면사무소 사거리 약국으로 들어간 아내는 한참만에 약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세상에는 신기한 일이 참으로 많다. 콩알 만한 알약 하나가 몸속에 들어가 어떻게 아픈 부위를 낫게 하는 걸까? 알약 하나가 어떻게 머리까지 찾아가서 아픈 걸 없애고 저 발끝에 닿아 치료를 하는 것인지... 아내가 받아온 약을 먹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통증이 반쯤으로 줄었다. 아침에 하나를 더 먹자 확연히 줄었다. 이로써 대상포진임이 확실해졌다. 아내는 어제 그 약국에 가서 안내를 받아 병원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약국에 제출하라고 알려줬다.
나이든 약사는 내 이름을 말하자 반갑게 웃으며 초기에 얼렁 치료해야 돼요 저기 수협 앞에 병원으로 가보세요 원장님께 연락드려놨어요, 한다. 병원에 가니 할아버지 의사는 아이고! 잘됐네, 하며 박수를 쳤다. 자신이 어제 내린 처방이 맞았음에 대한 뿌듯함 같았고, 말 그대로 아픈 게 잡혀서 잘됐다는 거 같기도 했다. 할아버지 의사는 웃으며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일이든 운동이든 심하게 하지 말라고 한다. 적은 나이가 아니네, 하며. 고통 끝에 행복인가? 나도 따라서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주사를 맞고 어제 내원하지 않은 나의 처방전을 받아서 약국에 전달했다. 그리고 3일 뒤 다시 주사를 맞고 약을 탔다.
두 번 처방 받은 약을 다 먹자 소화불량 같은 더부룩함도 같이 잦아들었다. 아내는 약사에게 운동을 많이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스트레스 상황도 많다며 아픈 부위에 대해서도 설명했고, 약사는 퇴근한 근처 병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내와 번갈아가며 통화를 했다. 정황과 현재 증상으로 처방을 내려준 게 맞아 들었다. MRI까지 찍었는데,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큰 병원은 그 병원 나름의 진찰이 있을 테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는 시골 병원은 또 그 나름의 진찰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업무 마감 후에도 대처를 해주고 응대를 해준 그들에게 감사하고 시골살이-순천 시내가 도시라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에 대한 기지를 발휘한 아내에게 더 고맙다.
5월의 태양은 8월의 태양을 시기하고, 하늘은 높고 푸르고, 바람은 살랑거리고, 흰구름은 여유롭게 흐른다. 산과 들은 초록빛 물방울을 뚝뚝 흘리고, 꽃과 풀은 저마다 자기 빛깔로 반짝이고, 계절은 거침없이 제 길을 간다. 우리 삶도 자연과 같으면 좋으련만 삶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작동을 멈추고 삶을 돌아보게 한다. 아니, 작동을 멈출 때 대면하는 삶이 진정한 우리 삶일지 모르겠다. 불면의 밤이 언제였나 싶을 때 우리는 다시 생활의 권태 속으로 빠져들고, 고통의 신음이 잦아들 때 우리는 일상의 신산함에 대해 토로한다. 불면의 밤을 보낼 때 나와 대면하며 알았다. 늙고 병들어 고통에 겨워할 때가 오면 순순히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겠다는 호기롭던 다짐은 다만, 하나의 말뿐이었다는 걸. 그때 이런 고통을 겪는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삶의 마감을 받아들여 순순히 고통의 끈을 놓을 것인가, 고통의 경감을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할 것인가?
더불어서 사람이든 기계든 혹은 각각의 마음이든-기계도 마음이 있겠지-작동을 멈추기 전에 신호를 보낸다. 나 지금 많이 힘들어, 하고.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내가 있고, 기계 운전원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작동을 멈췄을 때 우리는 당황해서 대처하지 못하거나 실기를 하게 된다. 예전에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다, 하면서. 사랑으로 아프고, 몸으로 아프고, 사람들 속에서 아프다.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아프고 고통을 겪는다. 그 아픔과 고통은 내 몸과 마음이,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보내는 제 각각의 신호를 감지하지 못 한 탓이리라. 너는 무리하고 있어, 지금은 쉬어야 할 때야, 어서 나를 봐줘, 하는 시그널말이다.
우리의 사랑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 나를 봐주세요, 내 마음은 이렇다구요, 하는 당신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 한 날이 오늘도 무심히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첫소절만 기억하는 오래된 노래를 꺼내서 불러본다. “한번쯤 겪어야만 될 사랑의 고통이라면, 그대로 따르겠어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몽사_바람개비 <몽하리사람들>3호 2021.05.31
'메모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실댁1 (0) | 2022.04.07 |
---|---|
월하야행月下夜行 연하정담年賀情談 (0) | 2022.04.07 |
달빛은 시냇물처럼 흐르고 (0) | 2021.04.08 |
몽하리 가는 길에 과속방지턱은 몇 개인가? (0) | 2020.11.18 |
무화과 나무는 하늘로 간다. (0) | 2012.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