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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하나

달빛은 시냇물처럼 흐르고

 

 

 

 

 

 

 

 

 

 

 

달천댁은 칭얼대는 아가를 안아서 달랬다. 아가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달천댁을 올려다봤다. 달천댁은 아가에게 까꿍, 하고는 자신의 왼쪽 뺨을 어루만졌다. 아직도 얼얼하고 화끈거렸다. 문딩이 같은 년, 그런다고 요로코롬 해불어야 쓰겄어? 여수댁이 손찌검을 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변명이고 자시고 할 사이도 없이 솥뚜껑 같은 손이 날아들었다. 눈앞에서 불길이 일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여수댁은 씩씩거리며 덮칠 기색이었다. 옆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남산만 한 여수댁 배때지에 밀려서 달천댁은 동네 어귀 개천에 빠졌을 것이다. 누군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고, 여수댁이 엉거주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달천댁은 잽싸게 빠져나와 집으로 내달렸다.

  달천댁은 키가 작고 아담했지만 어릴 적부터 날래다는 소리를 들었다. 동무들이랑 고무줄을 할 때 훼방을 놓던 사내아이들을 매번 쫓아가서 잡았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여자가 방정하지 못하다고 나무랐지만 어린 달천댁은 그런 아버지가 싫지 않았다. 여자가 무슨 죄인이다요? 하며 아버지 뒤로 돌아가 깡총 뛰어올라 넓은 등에 업히기를 즐겨했다. 아이쿠! 아가, 다친다. 아버지는 어린 달천댁을 추스르며 호탕하게 웃었다. 어린 달천댁도 꺄르르 웃으며 아버지 어깨를 두드렸고 발을 굴렀다. 달천댁은 이태 전에 마흔을 넘겼지만 달음박질은 여전했다. 동네 울력을 할 때나 들일을 할 때면 손이 빠르다는 말도 곧잘 들었다. 일머리도 있고, 일손도 빨랐다

  괄괄한 여수댁 목소리가 달천댁 발길을 따라서 쫓아왔지만 우리 달덩이가 나를 얼매나 기다리는디, 하며 못 들은 척 달렸다. 언덕배기를 돌아서자 달천댁은 머릿수건을 풀어 치맛자락을 털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생각만 해도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내색은 안 했지만 달천댁은 너무나 행복했다. 사람들 앞에서 좋아하는 내색을 한다는 게 욕먹을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속창시를 신작로 한길에 갖다버렸다는 말을 들어도 싸다는 것쯤은 달천댁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남들한테 욕을 얻어먹을지라도, 속창시를 내다버렸다고 여편네들이 수군댄다고 하더라도 좋은 건 좋은 거였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어여, 가자. 우리 달덩이가 배고플 텐디... 한숨을 돌리고는 달리듯이 걷듯이 고샅을 지났다.

 

  싸리문 밖으로 칭얼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 같았다. 늙은 시어매는 노망이 들어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그런 시어매한테 달덩이 같은 아가를 맡겨놓는 게 애당초 될 일이 아니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한창 농번기철이라 큰아이에 둘째까지 들로 내몰았다. 허리 펼 새가 없었고 시어매라도 들로 나가자고 할 판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는 가을볕에 달천댁은 애가 탔다. 논바닥에 떨어진 나락 한톨이라도 주워 담을 손이 귀하고 귀했다. 그렇다고 해도 남들보다 못하다는 소릴 듣지 않으려고 동트기가 무섭게 산으로 들로 내달렸다. 산에 가서 땔감을 구하고, 들에서 콩이며 들깨를 갈무리하고, 나락 한줌이 어딘가 싶어서 논바닥을 훑었다. 농사일에서 소소한 집안일까지 달천댁 혼자 해냈지만 아들과 딸이 있어서 그나마 힘이 됐다. 두 아이가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남들은 아이를 굴비 엮듯 줄줄이 낳는데 달천댁은 둘 밖에 낳지 못했다. 영감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지만 달천댁은 새벽마다 냉수 사발을 떠놓고 치성을 드렸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포기한 것이 여러 해 됐다.

  큰아이는 열다섯을 넘기더니 제법 코밑이 거뭇거뭇해졌고 그런 만큼 부쩍 제 몫을 해내서 대견했다. 문딩이 영감탱이, 진득허니 집에서 지게질이라도 가르치제는. 하루하루 사내가 되어가고 있는 큰아이를 볼 때마다 영감을 원망하는 마음이 커졌지만 바깥일 하는 남정네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랜 출타에서 영감이 돌아오면 큰아이는 동네 성들한테 배웠당께요, 하면서 지게질을 곧잘 해보였다. 일꾼 한 사람 몫을 했지만 중학교에 다니는 놈을 늘상 잡아둘 수도 없었다. 둘째인 딸아이는 이번에 국민학교만 졸업하면 그만이지 싶었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것도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시내라도 배와야제. 배우는 데에 가시내 머시마가 먼 말이당가! 달천댁도 소학교에 다닌 친구가 부러웠었다. 그래서 딸아이가 중학교 진학 얘길 꺼낼 때마다 짠한 마음이 들었다. 딸아이는 저녁밥상을 치운지 한참만에 들고양이마냥 살금살금 마당에 들어섰다. 요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틈만 나면 친구들이랑 몰려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감은 한번 집을 나서면 보름이 넘어서야 돌아왔다. 영감은 석탄을 캐는 광업소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영감은 광부들을 모두 내보낸 막장에 폭탄을 설치하고 서둘러 갱도를 지나 굴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굴 안쪽을 한번 흘깃 보고 고개를 푹 숙이며 도화선이 연결된 점화스위치를 힘껏 눌렀다. 지축이 흔들렸고 시커먼 탄가루가 자욱했다. 굉음이 잦아들자 영감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하늘을 뒤덮은 탄가루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탄가루를 뒤집어쓴 영감은 칠흑 같은 밤이었고 눈동자 흰자위만 허연 달처럼 허공에 떠있었다. 영감은 보이지 않는 굴 안쪽을 무심히 들여다봤다. 눈동자는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삶의 길과 석탄의 길이 다르지 않았다. 탄가루가 갱도에 가라앉자 영감이 도화선과 점화스위치 따위를 거둬들였다. 뒤이어 광부들이 막장으로 들어갔다. 광부들이 숨을 헐떡거리며 굴을 넓혔고 석탄을 퍼서 담았다.

  영감은 사과 궤짝에 담긴 폭탄을 집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요것이 다이나마이트여, 까딱허먼 펑 해불어. 영감이 웃으면서 궤짝을 들이대며 하는 말에 달천댁은 움찔했고, 똑 가래떡 같네이, 했다. 가래떡은 희디흰데 폭탄은 누르스름했다. 가래떡은 별미여서 멀었고, 폭탄은 시렁에 걸린 보리밥처럼 가까웠다.

  영감은 폭탄을 터뜨리고 받은 돈을 달천댁에게 줬다. 돈이 든 누런 봉투를 쥐던 날이면 아이들을 일찍 재웠다. 달천댁이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며 모르긴 해도 돈이 더 많을 것인디, 했지만 영감은 대꾸하지 않고 돌아누웠다. 영감의 벗은 등줄기에 맺힌 땀방울이 달빛에 번들거렸다. 봉창으로 들어온 달빛이 방안에 가득했고 마루 밑 귀뚜라미 소리만 고요했다. 영감이 주는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서마지기 논을 샀다. 더 이상 남의 논을 부쳐 먹을 일이 없어졌다. 쌀 스무 가마니 값이니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근방에서 좋은 논이라고 동네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인자 시작이여. 두고 보장께. 달천댁은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고, 동네사람들처럼 대놓고 내색하지 않았다.

 

  싸리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자 앙, 하는 울음보가 터져 나왔다. 그놈, ! 나가 온 줄 어찌케 알아 불었다냐? 시어매는 오늘도 윗목에서 방바닥을 손으로 훔쳐 보자기에 담고 있었고, 아가는 무언가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울고 있었다. 오냐, 오냐 배 고프제, 아먼! 때가 언젠디... 얼른 아가를 끌어안아서 입안에 든 걸 빼내고 젖꼭지를 물리고 얼굴을 들여다봤다. 아가가 방긋 웃었고 달천댁은 까꿍, 하며 어르고 달랬다. 한숨 돌리고 나자 왼쪽 뺨이 얼얼했다. 똥 싸고 밑 닦을 시간도 없는 농번기철에는 논에 물 대는 일이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달랐다. 여수댁이 그런 일 하나 모를 사람이 아니었고, 평소에 그럴 만한 사이도 아니었다. 달천댁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수댁이 과했다 싶었고, 제대로 대꾸도 못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가는 나오지 않는 공갈젖이지만 힘차게 빨았다. 아따, 그놈 힘도 좋네. 어찌먼 요로케도 허옇고 이쁠까? 큰아이도 갓난이였을 적에는 달덩이 같다는 말을 꽤 들었지만 아가만큼은 아니었다. 영감이 워낙 훤칠하고 키도 큰데다가 그 젊은 여편네도 어찌나 곱고 희던지 아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니가 어디 가겄냐?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달천댁은 아가를 보며 인자는 막둥이라고 불러야쓰겄네, 막둥아! 하고 아가를 가만히 불렀다. 아가는 한참을 빨아도 젖이 나오지 않자 짜증스럽게 젖을 쪼물락거렸다.

 

  형님...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겄지요? 달포 전이었다. 시뻘건 입술을 오물거리며 젊은 여자는 달천댁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달천댁이 보기에 자기보다 한참 젊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묘해서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화장 때문인 것 같았다. 형님, 지송스럽게 됐지만... 형님, 지도 어찌케 헐 수가 없그마요. 달천댁은 한번도 칠해본 적이 없는 입술에 피칠갑을 한 젊은 여자가 나타나서 아가를 내려놓고는 휙 가버렸다. 포대기에 싸인 아가는 방글거리고 있었다. 그때도 이런 생각을 했다. 아따, 어찌먼 이리 달덩이 같으까이! 영감은 보름이 넘은지 한참이 됐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나가 멀 잘못 했다고 나를 때래야? 니년이 먼디 나 빰을 때래? ? 이 죽일 년아! 달천댁은 밀리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여수댁이 씩씩거리며 달려들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달천댁은 여수댁을 표독스럽게 노려봤고 뒤이어 몸으로 밀쳐내며 버둥댔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장께, 하며 달천댁이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부아가 오른 달천댁이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는 여수댁 멱살을 잡고 흔들 때 엄마, 하고 달천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어깨를 흔드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려고 했지만 머리가 몽롱하고 무거웠다. 엄마, 머허고 계신가? 막둥이 K였다. 달천댁은 순간적으로 어딘가 싶었다. 방안은 환했고, 이부자리는 구석에 뭉뚱그려져 있었고, 옷가지며 가방 따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 ! 오냐, 우리 막둥이그마. 니가 먼 일이다냐? 달천댁은 앉은 채로 고개를 돌려 K에게 눈길을 주고 손으로 방바닥을 쓸었고 옷가지를 가방에 주워 담았다. 눈은 흐릿해도 왜 이렇게 집안에 더러운 게 많은지 모를 일이었다.

  얼렁 자세. 벌써 새벽 3시가 넘었당께. 막둥이 말에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요사이 보이는 것은 흐릿하고, 들리는 것은 희미했다. 봐도 본 것이 아니고 들어도 들은 게 아니었다. 연속극을 봐도 사람들이 뭘 하는지 도통 들어오지가 않았다.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고, 알 수가 없으니 재미있을 리가 없었다. 동네 할망구들이랑 속닥거리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사는 게 기름이 빠진 뼈다귀처럼 푸석푸석했고, 하루 종일 집안에서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았다. 오냐, 얼렁 자자. 걱정 말고 건너 가그라. 달천댁이 앉은걸음으로 이부자리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막둥이가 이부자리를 펴고 달천댁을 자리에 눕혔다. 달천댁이 뭔가 생각이 난 듯이 누운 채로 얼굴을 돌려서 막둥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근디, 니는 몽하리에 안 갔드냐? 얼렁 느그집에 가그라. 나는 동무도 많아서 암시랑토 안 허당께. 저 봐라 좀. 아이, 금자야.

 

  아부지, 같이 가장께! 아버지는 어느새 저만치 가고 있었다. 어린 달천댁은 앞서 가는 아버지를 쫓아서 쪼르르 달려갔다. 새벽녘에 눈을 비비며 아버지 등에 업혀서 집을 떠나왔는데 해거름이 다 되어가는 거 같았다. 걸음을 멈춘 아버지가 웃으면서 어린 달천댁을 보고 손짓을 했다. 어린 달천댁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아버지 품에 안겼다. 얼렁 외가에 가서 외숙모가 채려주는 저녁밥 묵자이! 아버지가 뒤돌아서 어린 달천댁에게 등을 내밀며 말했고, 어린 달천댁은 기다렸다는 듯이 팔짝 뛰어올라 아버지 등에 업혔다. 어린 달천댁은 외갓집에 가는 길이 늘 즐거웠다. 육십 리 가까운 길을 걷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아버지 등에 업혀서 잠이 들거나, 아버지 손을 잡고 걸으며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도 좋았다. 어린 달천댁이 사는 산골과 다르게 외갓집 앞에 탁 트인 바다를 보면 딴 세상이었다. 아버지 등에 업힌 어린 달천댁은 또래인 금자하고 경자랑 놀 생각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어린 달천댁은 외가에서 몇 해를 지냈다. 그 무렵 정월 대보름에 뒷동산에서 동무들이랑 함지박에 그득한 찰밥을 손으로 퍼먹었다. 찰밥은 어쩌다 입에 들어왔고 쌀밥하고 산나물, 미역줄기에 보리밥도 씹혔지만 이건 경자엄니, 아니당께! 금자엄니가 만든 것이여, 하면서 까닭 없이 즐거웠다.

  바닷물이 찰랑거렸고 하얗고 거대한 보름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대낮 같아서 동네가 한눈에 보였고 바닷물은 윤슬로 반짝반짝 빛났다.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달님으로부터 반짝이는 시냇물이 기다랗게 바다를 갈랐다. 달빛이 시냇물처럼 흘렀고 별이 조약돌처럼 박혀서 반짝였다. 어린 달천댁은 찰밥을 우물거리다 한참을 쳐다봤다. 밤이 대낮처럼 환해서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까맣게 어두웠던 밤이 대낮처럼 환해서 지난날 저지른 소소한 잘못을 들키기라도 할 것 같았다. 달님에게까지 닿을 듯이 불꽃을 피우던 달집은 어느새 사그라들었고, 이따금 되살아난 불꽃 한줄기가 유성처럼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나가 명이 길랑갑다. 막둥이가 떠먹여주는 죽을 받아먹다가 달천댁은 창호문을 바라보며 무심히 말했다. 어지럼증이 잠깐 일어서 막둥이가 어깨를 부축했다. 날이 환한 것이 밤중은 아닌 것 같았다. 잠에 취해서 그런지 깜빡 잠들었다가 일어난 것도 같고 며칠이 지난 거 같기도 했다. 방안만 더러운 것이 아니라 마당이며 창고, 목욕탕 깨끗한 데가 없었다. 달천댁은 자꾸만 눈은 흐려지는데 너저분한 집안 꼴은 이상하리만치 잘 보였다. 여태껏 청소에 유난을 떠는 성격도 아니었는데 죽을 때가 되어서 그런가 싶었다. 하긴 막둥이 부부가 부쩍 자주 오기도 하고 며칠씩 자고 가기도 하니 늙은이 냄새가 날까 걱정스럽긴 했다. 온종일 냉장고 밑이며 부엌 바닥을 쓸고 닦고, 마당에 쌓아놓은 땔감 나무 따위를 치웠었나, 알 수 없었다. 어제가 언제인지, 오늘이 언제인지 아득하고 희미했고, 종일 방안에 누워있었나 마당을 돌아다녔나 어지럽고 까마득했다. 온몸이 몽둥이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쑤시고 얼얼했다.

  막둥이며느리가 쑤었다는 죽을 몇 모금 들이키자 피가 도는 거 같았다. 어려서 나 위로 오래비 둘이 차례로 가불었어. 그래, 우리 아부지가 나한테 뭘 많이 해맥였는디... 그래서 그렁가 나가 명이 길랑갑다. 넘다가 걱정허지 말어라. 말인지 신음소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달천댁은 흘러나온 대로 내버려뒀다. 달천댁은 죽그릇을 물리고 자리에 누웠다. 막둥이가 물컵을 내밀었지만 얼굴을 돌렸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천근만근이었고 어지럼증 때문이라도 싫었다. 소피를 보느라 일어나느니 물을 넘기지 않는 게 나았다.

  니는 어지께도 여그서 잤다냐? 달천댁이 자리에 누워 등을 돌리며 물었고, 막둥이가 대답을 하는 거 같은데 들리지 않았다. 나가 어찌됐든 간에 니한테는 폐를 안 끼칠라고 했는디... 목구멍을 가까스로 올라온 말은 입안에서 맴돌았다. 달천댁은 막둥이가 안쓰러웠다. 나가 얼렁 죽어야 헐 것인디... 언제부터인가 죽음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여전히 죽음은 살아가는 일만큼이나 아득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이 가슴이 턱, 하고 막히는 일이라 살아서 죽음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일어났다. 달천댁은 살아서 삶을 생각하고 죽어서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아는 것은 다만 아는 것일 뿐이었다.

 

  달천댁은 아흔하고도 몇 해가 지나자 혼자 사는 게 불현 듯 도무지 싫어졌다. 달천댁은 사람이 살라먼 사람 냄새를 맡아야제, 라는 말을 동네 사람들에게 남기고 큰아들 집으로 갔다. 막상 도시의 집은 감옥 같았다. 대문이 잠긴 집에서 온종일 혼자 우두커니 지내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인가 큰아들 부부는 달천댁이 치매라며 보건소와 병원을 데리고 다녔고 약을 먹였다. 달천댁은 자신이 노망이 들었다니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몇 번 약을 받아먹었다. 그렇지만 떨칠 수 없는 늙은이의 의구심은 약을 큰아들네 몰래 숨기게 했다. 엄니, 치매랑께요. 근디 약을 안 묵으먼 어찔라그러요? 큰아들은 어설펐고 조급하게 말했다. 큰아들은 어설프고 조급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다그치며 보채는 일이었다. 큰아들은 사람이 늙어서 다시 아기로 돌아간다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그 일이 자신에게 온 것을 몰랐다. 달천댁은 사람 냄새가 어떤 냄새보다 역하다는 걸 알았고, 역한 냄새를 피해 대문 옆 무화과나무 밑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달천댁은 비가 오던 날 무심코 열린 대문으로 집을 나갔다. 어딘지 모르는 데를 돌아다니다가 다리 밑에 주저앉아 비를 피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나가 어찌케 장만한 살림인지 아시요? 그 좋은 논이랑 동네 뒷산을 다 팔아먹은 놈이당께요, 그놈이! 달천댁이 자신을 찾으러 온 경찰에게 큰아들을 고발했고, 막둥이 K를 봤느냐고 물었지만 경찰은 달천댁을 큰아들 집으로 데리고 갔다. 며칠이 지나서 달천댁은 워매, 워매! 두 연놈이 나를 몰라 죽이네, 이보시오 경찰 좀 불러주씨요,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외쳤고, 옆 집 사람들은 경찰을 불러주는 대신에 수군댔다. 달천댁은 바짝 말라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또 그 집을 나왔다. 젊은 경찰은 웃으면서 어머니 교통사고라도 나면 어쩔라고 그러요, 하며 달천댁을 큰아들네로 다시 데리고 갔다.

  그날 막둥이 K가 왔다. 나가 어찌됐든 니한테만은 폐를 안 끼칠라고 했는디... 달천댁은 무릎을 세우고 앉아 걸레로 발가락을 박박 문지르며 말했다. 발가락이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달천댁은 막둥이를 따라서 살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막둥이한테 짐이 되는 게 싫어서 잠을 자다 깨지 않기를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그 일이었다.

  약 묵고 주무시소. 막둥이가 모로 누운 달천댁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몸을 일으켜 앉은 달천댁은 막둥이가 내민 약봉지를 물 한 모금으로 넘겼다. 혈압이 높은지는 꽤 됐다. 농사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덩그러니 혼자였다. 영감이 간 후로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이었지만 혼자 끼니를 챙겨 먹는 건 여전히 귀찮고 고역이었다. 끼니때마다 그냥저냥 넘어간 적이 많아서 그런지 몇 해 전에 코피를 세숫대야로 받아냈다. 그 후로 잊을만할 때마다 어지럼증이 도졌다. 병원에서 혈압이 높다고 약을 지어줘 때때로 먹었다.

 

  혈압약이 남았는데도 며칠 전에 막둥이 부부랑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또 약을 받아왔다. 혈압에다가 어지럼증 약이라면서 거르지 말라고 막둥이가 몇 번씩 다짐을 했다. 달천댁은 참말로 의사가 별스러운 걸 다 물어보네이, 하고 생각했다. 변소에 다니면서 볼일을 볼 수 있느냐고 해서 못 한다면 죽어야지, 했고 끼니때에 밥을 챙겨먹는 일은 사실 귀찮고 지겨운 삶이었지만 그랬다가는 늙은이의 투정으로 흉이라도 잡힐까 싶어 늙어서 더는 못한다고 해버렸다. 옛날 일은 어제처럼 생생하고 오늘 일은 옛날 일처럼 까마득한 것이 늙은이라면 감당해야 할 당연한 일이니 기억력이 어떠냐 하는 건 이상한 질문도 아니었다. 병원을 나오는데 혈압이라도 한번 재보제는,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약을 계속 묵었응께 괜찮아졌을랑가,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지만 요즘은 어지럼증이나 핏대가 서는 일이 잦아들어서 젊은 사람들이 어련히 알아서 했겄제, 했다.

  달천댁이 약이든 밥이든 잘 챙겨먹겠다고 했지만 막둥이는 막무가내였다. 그날부터 막둥이 부부가 저녁밥을 챙겨 와서 같이 먹었고, 막둥이는 자고 아침에 일을 나갔다. 달천댁은 혼자 사는 일에 이력이 나서 한사코 말렸으나 혼자일 때보다 든든했고, 뻔한 얘기라도 건넬 수 있어서 좋았고, 사람은 사람 냄새를 맡고 살아야제, 하는 생각을 막둥이도 하는 거 같아서 내심 더 좋았다. 젊은 사람들한테 그저 밥 잘 챙겨 묵어라, 하는 말 밖에 더 할 얘기가 뭐가 있겠나 싶지만 말이다.

  막둥이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이 웅웅거리는 텔레비전을 끄고 잘 자라며 나갔다. 7시가 넘었나, 8시나 됐을까? 그믐날인지 새까맣고 두터운 밤이 창호문 밖에서 방안으로 스며들었다. 달천댁은 슬금슬금 눈꺼풀이 감겨오는 걸 느꼈다. 달천댁은 이불을 끌어당기며 요번 혈압약은 별라도 잠이 잘 오는 거 같그마, 하는 생각이 드는가 싶더니 까무룩 잠에 빠졌다.

 

  아부지, 외갓집은 아직 멀었는가? 어린 달천댁의 작지만 옹골찬 목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어린 달천댁은 아버지의 큰 손을 꼭 잡고 종종걸음으로 아버지를 따라갔다. 하늘이 잔뜩 찌푸린 것이 곧 눈발이라도 날릴 모양이었다. 어린 달천댁 부녀를 뒤쫓아 왔는지 북쪽에서 세차게 바람이 불어왔다. 북쪽에서 불어온 바람은 어린 달천댁의 빨간 털목도리 속으로 파고들었고, 아버지의 검은 두루마기를 흔들었다. 산마루에서 길쭉한 소나무 몇 그루가 이리저리 서로 몸을 부대끼고 있었다. 인자 요 고개만 넘으먼 된당께. 가만히 들어봐라이. 파도치는 소리 들리제? 아버지는 어린 달천댁의 쪼그마한 손을 맞잡고 입김을 호호 불며 말했다. 어린 달천댁은 얼른 아버지 두루마기 속으로 쏙 들어가서 얼굴만 내밀고 귀를 쫑긋 세웠다.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인지 바람이 산등성이를 휘감아 도는 소리인지 멀리서 무슨 소린가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