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할 땐 운전에만 집중하지? 몸이 있는 데에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걸 몰라서 그래? 옆자리에 꼿꼿하게 앉아 앞을 바라보며 아내가 말했다. 감정이 담기지 않는 말이 이런 건가 싶었다. 무미건조한 아내의 말에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곧이어 또 나오는 과속방지턱을 이번에는 속도를 줄이고 차에 집중해서 부드럽게 넘었다. K는 운전을 한지 오래됐다. 그렇다고 자기 운전 실력을 과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넋을 놓고 무심하게 늘 하는 숨쉬기처럼 습관적으로 차를 몰았다. 아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골똘히 생각했지만 방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앞만 보고 있었고, 운전대만 잡고 있었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몸이 있는 데에 생각이든 마음이든 함께하게 하는 건 쉬운 일인 듯 보여도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K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몸은 운전을 하고 있었지만 생각은 멈춰 있었다. 이런 일은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어서 그때마다 바로 잡으려 했지만 그대로였다.
요양원에 입소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요즘 유행하는 코로나 검사는 말할 것도 없고 종합 건강검진을 받고 입소용 건강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 코로나 검사를 할 때 K의 어머니는 온몸을 움찔하고 부르르 떨었다. 단체 생활인 만큼 폐결핵이나 B형 간염 따위 전염병, 현재 신체 상태를 알기 위해 피를 뽑고 혈압을 재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병원 건물 뒤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했던 간호사가 어느새 혈압을 재고 있었다. K의 어머니는 집을 나서기 전에 먹은 약 기운 때문인지 맥을 못 추었다. 일주일 전 담당 의사는 심할 때 반 알만 드리세요, 하며 새로운 처방전을 써줬다. 그렇지만 님이 한번 오실 때면-요양보호사들은 돌보는 노인이 치매가 심해질 때 ‘님이 오셨다’고 표현하며 특히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릴 때 심해진다- 한 알을 입에 넣어 드려도 끄떡없이 기운이 넘쳐서 발길질을 하고 살림을 집어 던졌다. 간호사는 할머니, 괜찮으세요? 제가 코로나 검사해드렸는데, 한다. K의 어머니는 간호사를 보며 웃는 듯 마는 듯하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K는 휠체어를 밀면서 자꾸 고개를 떨구는 어머니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았다. 병원 직원은 검사 결과는 하루가 지나야 나온다며 진단서나 확인서 따위는 내일 받으러 오라고 했다.
그러니까 요양원으로 모셔야 된다니까! 도대체 몇 번을 말해? K의 아내는 전화를 끊고 전화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K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K는 후배 H와 통화를 했다. 한 건물에 실버타운과 요양원을 함께 운영하는 H와는 몇 번 통화를 했다. 어머니가 초기일 때나 이번처럼 심할 때나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마침내 H를 생각해냈고 자문을 구했다.
치매라는 게 너무나 다양해요. 이년 저년 욕하는 건 예사고, 나를 죽일라고 약을 먹인다면서 약을 던지면서 난동을 부리기도 하고... 그렇지만 예쁜 치매도 있어요. 우리 요양원 김할머니가 그렇게나 욕하고 때리고 그랬는데 요즘은 좋아지셨다니까요. 어떤 줄 알아요? 사람을 볼 때마다 오메, 안녕하셔요? 어찌나 새색시 같은지! 볼을 비비고 안아주고 늘 웃고 계세요. 고칠 수 있냐고요? 그랬다면 전 세계적으로 대박이 났겠죠? 치매는 고칠 순 없지만 진행속도를 좀 더디게 하거나 예쁜 치매로 변화시킬 수는 있어요. 혹시 어느 병원에 다니세요? 아예, 거기도 많이들 가셔요. 병원을 한번 바꿔보세요. 어머니하고 맞는 병원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가족이 돌보는 것보다 요양원에서 전문인력이 모시는 게 훨씬 나을 거예요. 또 혼자 계시는 것보다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게 낫고요. 아무리 치매라고는 하지만 가족한테는 함부로 대하다가도 남에게는 체면을 차리게 되거든요. 너무 심하지 않다면 최소한의 예의 같은 게 남아있어서 돌보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기도 하거든요. 그러니 요양원에 모시세요. 그러게요. 우리 요양원에 모시면 좋을 텐데 지금 자리가 없어요. 혹시라도 빈자리가 나면 연락드릴까요? 그런데 잘 되는 요양원에 빈자리라는 게 나기가 좀 어렵긴 해요. 모시는 분이 돌아가셔야 빈자리가 나는 것인데 돌아가시기를 바랄 수도 없고... 어머, 내 정신 좀 봐. 호호호. 네, 오라버니. 그러잖아도 우리 요양원은 실버타운을 겸하고 있어서 거긴 자리가 나기도 해요. 누가 돌아가시지 않더라도. 실버타운에 계시다가 요양원에 자리가 나면 옮겨요. 그러면 국가지원금도 있어서 부담도 덜할 거예요. 네, 그래요. 거기라도 모시면 훨씬 좋아지실 거예요. 오라버니 어머니니까 내가 모셨으면 좋겠는데... 오라버니,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예쁜 치매로 바뀌기도 하니까요.
K는 H의 말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이제는 어머니를 감당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선뜻 요양원이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기본 3시간을 돌봐주던 요양보호사에게 K가 퇴근할 때까지 어머니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요양보호사가 돌아간 후로 K가 올 때까지 어머니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실제로 며칠 간 태풍이 몰아치는 거 같았고, 어머니는 기력이 다했는지 그 이후로 보름 동안 자리보전을 했다. 더이상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었다. 요양보호사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기본 3시간은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가외 시간은 전적으로 K의 몫으로 별수 없었다. 퇴근해서 다음 날 출근할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중학교 졸업 후로 처음인 거 같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있는 것은.
K의 어머니는 1928년생이니 구순이 훨씬 지났다. 다른 집 어머니처럼 허리를 굽히며 걷지도 않았고, 병이 나거나 다치거나 따위로 병원에 입원 한번 안 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가 십 년만 젊었으먼 한 달에 백만 원은 벌어서 우리 손주 줄 것인디, 백만 원이 머여? 이백만 원도 되제,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실제로 K의 어머니는 팔순을 한참 넘겨서도 근동에 있는 비닐하우스며 철쭉밭 같은 데로 일을 다녔다. 주말에 본가에 들른 K는 비닐하우스 부부의 승합차에서 내리는 K의 어머니와 동네 어머니들을 본적이 있었다. 아따, 젊은 사람들이 살라고 그러코롬 열심으로 허는디 어찌 못 간다고 헌다냐? 이제 들일은 그만 다녀라고 K가 사정을 할 때마다 K의 어머니는 비닐하우스 주인 내외 핑계를 댔다. 그리고는 아나, 우리 손주 앞으로 딱 모타놨다가 대학 갈 때 줘라이, 하며 통장을 건네주기도 했다. 야가 어쨌는지 아냐? 국민학교 댕길 때 학교에서 통장을 만들었는디 졸업 탈 때 이십만 원이 넘게 모타놨드랑께, 그때 돈으로 얼매나 큰돈인디, 하며 K의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말했고, K의 아내는 예, 걱정마셔요 허투루 돈 쓰는 사람은 아녜요, 하며 K를 흘겨봤다. 아먼, 그래야제! 행오나도 술 담배는 입에도 대지 말어라이. K의 어머니는 손주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K를 단도리했다.
그렇게 일을 하고도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는 일이 잦았다. 먹는 일에 별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혼자 사는 세월이 길어서인지 귀찮아했다. 주말에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도 몇 숟가락 뜨고 말았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엔가 코피를 세숫대야로 하나를 쏟았다고 했다. 의사는 혈압이 높고 코피가 터져서 다행이라고 했지만 늙으먼 다 글제머, 하며 K의 어머니는 혈압약을 먹고 밭으로 나갔고 들일을 다녔다.
나가 저만 했을 때 우리 아부지 손을 잡고 백 리를 걸어서 외가를 안 갔드냐. 얼매나 추운지 요새 추운 건 추운 것도 아니제, 하며 어린 손주딸을 바라봤다. 많이 커불었네 우리 손주! 먼 아가 밤마다 통 잠이 없어서 니를 업고 아파트를 왔다갔다 했는디 알랑가 모르겄다, 하며 손주 엉덩이를 토닥였고, 유치원생이 된 손주는 할머니, 하며 품에 안겼다.
K는 신혼 때 살던 복도식 아파트가 떠올랐다. K의 집 양쪽으로 세 집 부부가 또래였고 아이들도 서로 비슷한 나이여서 잘 어울렸다. 늘 열린 현관문으로 아이들이 뛰어들었고, 아빠들은 복도에 모여서 담배를 피우며 하루를 나눴고, 엄마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복도로 낮게 깔렸다. K는 늦은 밤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복도를 오락가락하던 젊은 어머니를 생각했다. 나이 든 부부가 반려견을 안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 K는 난 저 나이에 더 좋은 아파트에 살아야지, 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 부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K는 복도로 연결되었고, 아이들로 연결되었다. 그 시절 복도와 아이들이, 아이를 업은 젊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호우시절(好雨時節)이었다는 걸 K는 지금 알 것 같았다.
아침이 되자 K는 요양보호사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병원에서 각종 서류를 챙겨왔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는 가만히 누워있었고, 요양보호사가 K의 어머니 옷가지며 짐을 챙겼다. 얼마나 계실지 가늠할 수 없기는 요양보호사나 K나 마찬가지여서 뭘 어떻게 챙길지 몰라서 되는 대로 주섬주섬 가방에 넣었다. K는 어머니가 쓰는 변변한 가방 하나가 없다는 걸 알았다. 낡고 작은 가방은 푸석거렸다. 요양보호사가 급하게 걸레로 가방을 닦았다. K는 후배 H의 말이 떠올랐다. 오라버니, 요양원 가자고 한다고 순순히 따라나서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병원에 검진받으러 가야된다고 말씀하시고 모시고 오세요. K는 요양원이란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데에 마음이 더 무거웠다. 잠을 잘 때도 쓰던 털모자를 쓴 K의 어머니는 K가 운전하는 차 뒷자리에서 요양보호사의 어깨를 기대고 있었다. K의 어머니는 한겨울에도 보일러 기름값이 아깝다며 보일러를 끄고 전기장판을 켜고 털모자를 쓰고 잠을 잤다. 전기장판 온도는 추위와 무관하게 늘 1단계였다. K는 룸미러에 비친 어머니의 털모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K의 어머니는 약을 먹은 탓인지 눈의 초점이 흐렸다. K는 얼른 룸미러에서 눈을 뗐다. K는 아침에 병원 서류를 받아와서 오늘 한 번 더 병원에 오라니까 가세, 이것부터 먹고, 하며 지난번 처방받은 약 반 알을 K의 어머니 입에 넣었다. K는 이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여겼지만 형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지난밤 전화를 받은 K의 형은 요양비가 한 달에 얼마인지부터 물었고 서로의 부담에 대해 말하려 했다. K는 어머니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은 그와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K의 자동차는 동네를 벗어나서 서쪽으로 달렸다. 구불구불 산길을 돌며 K는 지게 대신에 자동차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 사이로 난 길은 이런 생각을 더욱 깊게 했고, 아니라 해도 어쩔 수 없나 싶었다. K는 요양원이란 게 공기 좋고, 풍경 좋은 데에 있어야지 어머니에게도 좋을 거야, 라며 자신을 위안했지만 차 안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K의 어머니는 요양보호사에게 어깨를 기대고 잠이 든 건지 눈을 감고 있었다. 이따금 요양보호사가 얼굴을 쓰다듬었다. 요양보호사가 후배 H에 대해 물었고, K는 짧게 대답했다. 다시 침묵과 짧은 몇 마디가 오가자 요양원 푯말이 스쳐 지나갔다.
K는 룸미러에 비치던 어머니 모습에 늙은 K가 겹쳐지는 걸 봤다. K는 자동차 뒷자리에 앉은 쭈글쭈글하고 꾸부정한 자신을 봤고, 운전석에 앉은 딸을 바라봤고, 요양원으로 달리는 또 다른 산길을 느릿한 몸짓으로 쳐다봤다. K는 아내를 찾으러 힘들게 고개를 돌려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세상이 흐릿하게 흐물거리며 흘러갔다. 몸이 있는 데에 마음이 있어야지요. 지금 어디 가는지 알아요? 당신 집으로 가는 길이에요. 당신 몸이 있는 데가 당신 마음이 있는 곳, 당신 집이란 걸 잊지 말아요. 부드럽고 낮은 아내 목소리가 들렸다. K는 느릿하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K는 지금 집으로 가는 길이다. 몽사_바람개비 <몽하리사람들>4호 20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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