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대성부부와 헤어진 뒤 두어 차례 전화 통화를 했다. 서로 안부를 물었고, 대성의 큰딸이 취직을 했다든지 준호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됐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나눴고, 혜선이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얼렁 털고 일어나야제, 하는 대성의 말을 준호는 들었다. 준호의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2학기가 시작될 때 준호부부는 아이를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준호의 아내가 운전을 했고, 준호는 조수석에서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준호는 문자메세지 알림에 스마트폰을 보다가 좌석 등받이를 똑바로 세웠다. 내일 오후에 대전에 가야겄는디. 왜, 혜선씨 무슨 일 있대? 어... 혜선씨가 갔다네. 암투병한 지 한참 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하며 준호의 아내는 말끝을 흐렸다. 밤이 늦은 시각이라 국도는 한적했고, 준호부부는 말없이 앞만 바라봤다.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상을 치르는 집도 대성네뿐이었고, 대성이 대전에 특별한 연고가 없는 탓이기도 했다. 대성의 고향 친구들과 대성의 두 딸 친구들 몇몇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바람을 쐬러 나온 준호를 본 대성의 아버지가 멀리서 와줘서 고맙다며 준호 손을 잡았다. 대성의 아버지가 둘러서서 담배를 피우는 동네 아재들에게로 갔다. 준호는 꾸벅 고개 숙여 아재들에게 인사를 했다. 아따, 그렁께 그리 억척시럽게 살았는 갑네. 요집으로 시집을 오기 전에 아들이 하나 있었다더랑께. 친정어매가 키웠다든디 친정어매도 죽은 지 꽤 됐다드마. 아까 본께 아들이 장개갈 때가 다 됐겄든디. 동네 아재들이 두런거렸다. 금매 말이시. 나도 대성이가 인자사 말을 해서 알았당께. 여그 대전서 아들이랑 살다가 대성이를 만났는 갑드라고, 하며 대성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준호는 환하게 웃는 혜선의 영정 사진 옆 상주 이름이 낯설었던 이유를 알았다. 준호는 까만 밤에 환하게 빛나는 장례식장 옥상 간판을 올려다봤다. 송아지 한 마리가 주춤주춤 논 가장자리 둠벙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송아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둠벙에 머리를 숙이고 수면을 핥을 듯하더니 이내 머리를 들었다가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서서 둠벙에 비친 자기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송아지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둠벙이 가득 찼다. 작은 둠벙의 잔잔한 수면에는 소금쟁이가 무수한 개구리밥 사이로 썰매를 타듯 미끄러져 갔고, 물속에서는 개구리 몇 마리가 뛰어다녔고, 가녀린 올챙이 떼가 새카맣게 무리를 지어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아먼, 송아지 둠벙 쳐다보기당께. 할머니 말이 들렸다. 그러게, 할매 말이 맞는 갑네. 준호는 혼잣말을 하며 불빛이 환한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주차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을 태운 자동차 불빛이 끝없이 이어졌고, 여전히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환한 불빛 속에 있었다. 준호는 두 돌이 갓 지난 준호가 뒤뚱뒤뚱 걸어서 송아지 곁을 지나 둠벙으로 다가서는 모습을 봤다. 송아지가 머리를 흔들어 어린 준호를 조심스럽게 둠벙에서 밀어냈다. 준호는 바지 주머니에 든 스마트폰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다가 꺼내서 시간을 확인했다. 일일연속극이 끝나고 막 9시 뉴스가 시작할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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