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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하나

이상한 이발소

 

 

 

얼른 옷 벗고 오시라고요. 예, 갑니다. 에어컨 바람 아래 큰 대자로 드러누워 유튜브의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호출 소리를 몇 차례나 듣고서야 움직였다. 숨이 턱 막히는 무더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에어컨 바람 아래 쓰러지기 일쑤였다. 올여름은 폭염과 열대야로 역대급 최고 기온이라든가 며칠째 이어지는 열대야가 역대 몇 번째라든가 하는 뉴스가 계속됐다. 온열질환자와 사망자가 지난 몇 년도에 비해 몇 퍼센트 증가했으며 이는 역대 몇 위에 해당하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최고 기온을 갈아치웠다는 기사가 매일 이어졌다. 날이 이런 지경이니 에어컨은 이제 필수품이 됐고, 퇴근하고 미동도 없이 쭉 뻗은 모습은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몸짓이었다. 기후 변화와 이상 기후가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니 한반도 최남단 촌에서 뭘 어찌 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 하루 폭염의 열기를 식히느라 단지 대자로 퍼져 고요할밖에. 상황이 이러하니 날 부르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몇 번이나 불러도 몸을 일으켜 세우는 건 여간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스마트폰을 한쪽으로 밀쳐놓고 느릿느릿 일어나는데 살짝 어지러웠다. 기립성 현기증이다. 그러니까 계속 누워있어야 하는데, 쩝. 천천히 윗도리를 벗어서 동그랗게 뭉쳐서 구석으로 한 번에 휙, 던졌다. 언제 켰는지 평소와 다르게 천장 전등이 다 켜져 있었다. 7촉짜리 스탠드 하나만 켜다가 대낮처럼 환한 데에서 늙고 마른 몸을 드러내니 여간 머쓱한 일이 아니었다. 두 팔로 가슴을 감쌌다. 전기세 많이 나오그마 먼 불을 다 켰데? 하니 보여야 뭘 하지! 한다.

지금까지 살을 찌려고 몇 가지 노력을 했지만, 늘 헛수고였다. 온갖 다이어트 제품이 횡행하는 시대에 살을 찌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눈총을 받거나 부러움의 대상이거나 둘 중 하나이지만 막상 당사자는 마른 몸이 고역이다. 이런 나를 위해 주변 사람이 주로 했던 조언은 밤에 야식으로 맥주에 라면이든 통닭이든 먹고 자라,였다. 그런갑다, 싶어서 따라서 하다가 살찌는 건 고사하고 역류성식도염에 걸려서 한 달 이상 약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아무튼 군 생활할 적에 일병 때였던가 얼굴이 부은 모양으로 잠깐 살이 쪘던 것 말고는 여태 몸무게에 변동이 없었다. 늘 딱 3, 4kg만 더 나가면 좋겠는데,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몸무게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니 환한 전등 아래에서 앙상한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제 노년을 향해 점점 다가가니 남성성은 엷어지고 흉측한 몸으로 변했다. 뭐, 이것도 잘 받아들여야 할 삶의 몫이겠지만 하다가도 이렇게 다 드러내야 할 때는 살짝 슬퍼진다. 흉측한 육체미라도 발휘할까 싶어 빠르게 푸시업을 몇 개 했다. 뭐 하고 있어? 얼른 오시라니까요. 아, 예. 가요, 갑니다요. 비록 절벽 같은 앙상한 가슴이라도 푸시업 몇 개에 금방 펌핑이 올라와서 은근슬쩍 가슴을 내밀고 다가갔지만 알아차린 것인지 아닌지... 바지도 벗어야지요. 바지도? 뭘, 바지까지. 그래야 바로 샤워를 하지 털어내기도 쉽고. 허리띠를 풀자 허리 사이즈가 낙낙한 바지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멀뚱하게 바라보는 그녀 앞에서 바지를 발목에 걸고 팬티 차림으로 엉거주춤 서서 양손으로 가슴을 감쌌다. 뭐 하냐니까? 얼른 와서 앉으세요. 이런 사무적인 사람 같으니라고. 앞에 앉자마자 그녀는 두 손을 쫙 펴서 손가락을 집어넣고 양쪽으로 쓱쓱 밀어 올리며 가지런하게 펴고 쓰다듬었다. 

거울도 없고, 의자도 없고, 목을 둘러싸는 보자기도 없다. 우리집 미용실에서 손님은 팬티 바람으로 신문지를 깔아놓은 바닥에 앉고, 미용사는 빗 두 개-손가락빗과 진짜 빗-와 눈썹 정리용 면도칼 하나면 충분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근래 들어서 머리카락을 자르러 미용실에 가는 게 일처럼 느껴져서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도 가기 싫은 게 이발소였고 이발소 문을 나오며 목덜미에, 등에 달라붙은 까실까실한 머리카락을 떼어내려고 팔을 뒤집던 일이 떠오른다. 할머니를 따라서 이발소를 갔다. 우리 동네 어귀 무덤-중학생 시절에 야간 자습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올 때 앞뒤도 안 보고 폭풍 페달질로 지나왔던 무덤이었다-을 돌아서 비만 오면 질퍽질퍽하던 흙길을 할머니와 걸어서 옆 동네-상사 평화학교 시절에 자주 가던 족발집이 있던-에 있던 이발소를 다녔다. 이발사는 어린 내가 생각해도 이국적 외모여서 외국 사람같이 멋졌다. 파마머리에 얼굴은 갸름했고, 손가락은 하얗고 길쭉했으며 몸매는 호리호리했다. 지금도 이발소는 영업 중이고 아저씨는 그대로였고, 다시 생각하니 가수 윤수일을 닮았다.

나무틀에 칸칸이 작은 유리창을 넣은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면 연탄난로 위에서 들통의 물이 끓고 있었고, 들통 옆면은 면도붓을 문질러서 비누 거품 자국이 말라붙었고, 난로 연통 아래 빨랫줄에 빨간색에 흰 줄무늬가 들어간 얇은 이발소 수건이 걸려 있었고, 이발소 안은 온기가 훅 끼쳤다. 하얀 거품을 입 주변에 묻히고 크고 푹신한 이발소 의자를 뒤로 젖히고 동네 아재-옆 동네 사람이라도 서로 다 아는 사이라 모두 동네 아재였다-가 누워서 고개를 돌렸고, 이발사 아저씨는 벽에 걸린 허리띠 같은 가죽에 면도칼을 쓱쓱 밀면서 우리를 돌아보고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동네 아재 한두 명은 기다란 대기 의자에 앉아서 두런거리다가 할머니를 보고 오실아짐 오신가요? 하고 인사를 했고, 우리 머시기 이발흐로 왔그마, 하며 내게 아는 체를 했고, 나는 기어드는 소리로 안녕하십니까? 했고 할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할머니 뒤로 숨었다.

대기 의자에 앉아 발을 대롱거리며 이발소 거울을 바라봤다. 지금도 까까머리인데 또 잘라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학교에 가면 대부분이 스포츠머리이긴 했지만 대개 몇 명은 머리가 길었고, 가르마를 멋지게 탔다. 그 모습이 부러워서 나도 머리를 기르고 싶었고, 긴 머리카락으로 가르마를 타고 싶었지만 한 번도 말은 못 했다. 이발사 아저씨가 의자에 빨래판을 올리면 내 차례가 된 것이다. 어떤 스타일? 이라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도, 할 생각조차도 못 했고 빨래판에 앉으면 자동으로 스포츠, 까까머리였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으면 아저씨의 길고 가늘고 부드러운 손가락이 느껴졌고, 바리캉이 목덜미와 귀 뒤를 파먹었고, 사각사각 다듬질하는 가위 소리가 들렸다. 목을 졸라맨 이발소 수건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었고, 얼굴이나 목덜미로 들어간 머리카락 때문에 가려워도 꼼짝없이 부동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발사 아저씨가 아따, 훤칠하네, 하며 내 머리통을 수건으로 털고 목수건과 머리카락받이용 천-요즘 말로 커트보-를 풀어내면 그때서야 후, 숨을 쉬었다. 그리고 난로 위 들통에서 뜨거운 물을 퍼서 타일로 만든 세면대에 붓고 수도를 틀어서 온도를 맞췄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면 아저씨의 손가락은 비누칠로 더 부드러워졌고 내 머리통을 손가락 끝으로 팍팍 누르며 머리를 감겼다. 이렇게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해도 이발소 문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머리카락이 등줄기에서 까실까실했다. 지금도 동네를 지날 때면 이발소를 흘깃 돌아본다. 가끔 이발소 앞에 물을 뿌리고 빗자루질을 하고 어떤 날은 세차를 하던 그때 그 아저씨는 여전히 그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자른다. 그 아저씨는 노인이 됐어도 윤수일을 닮았다.

사실, 이제는 이발소에 언제 갔는지 기억도 없고, 미용실에서 이렇게 저렇게 헤어스타일에 대해 요구하기도 하고, 인테리어도 멋진 미용실에서 편안하게 머리카락을 자르지만 미용실에 가는 게 귀찮고 거추장스럽다. 이것도 나이를 먹어서인가. 사정이 이러니 어영부영하다 보면 상머슴 돌쇠 헤어스타일이 되어 있었다. 겨울이면 그나마 춥다는 이유로 머리통을 덮고 다닐 텐데 여름이면 사정이 다르다. 이제는 머리카락 굵기도 가늘어지고 숱도 옅어져 자꾸 흘러내리고-예전에는 반곱슬머리라서 쫙쫙 펴면 좋겠다고 입에 달고 살았는데-덥기는 또 얼마나 더운지. 시원하게 밀어버리면 좋겠네,라고 말은 하지만 막상 미용실에 가는 건 영 귀찮고 일로 여겨져서 가기 싫어졌다. 이런 말을 하다가 문득, 자기가 한 번 잘라보면 어때? 했고 해본 적도 없는데, 하는 대답에 뭐 어때 대강 짧게 쳐내기만 하면 될 거 같은데 멋내고 다닐 일도 없고, 했더니 이상하다고 뭐라고 하지 않을 거면, 해서 괜찮다니까, 했다. 그러다가 오늘 드디어 미용실에 가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머리카락을 잘랐다. 

머리카락이 거실 바닥에 떨어질세라 조심조심 신문지 미용실을 나와 거울 앞에 섰다. 오! 대박. 그 머냐, 재직자배움인가 뭐 그런 데 가서 한번 정식으로 배워봐. 은하수는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고 눈썹용 칼로 다듬듯이 쓱쓱 머리카락을 쳐냈고, 문구용 가위로 사각사각 다듬었다. 마치 여러 번 머리카락을 잘라서 훈련된 것처럼 거침없이 쓱싹쓱싹 잘랐다. 기존 스타일을 따라서 길이만 짧게 한 것이라고 했지만 마음에 쏙 들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것 같아서 살짝살짝 아프긴 했지만 만오천 원짜리 커트보다 훨씬 나았고 깔끔했다. 아따! 선보러 가야겄그마, 인자부터 미용실은 안 가도 되겄는디,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샤워하고 말린 후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가위로 다시 다듬었다. 숨겨진 재능을 발견했으니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미용 도구도 사고, 교육도 받으라고 부추겼더니 굳이 그렇게까지, 다이소에서 머리카락 받침대나 하나 살까? 했다. 

나이를 먹어서 귀찮아지는 것일까, 나이와 무관하게 천성이 게으른데 이제야-지금보다 젊을 때도 게을렀을지도-드러나는 것일까. 점점 이것저것 사소한 일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미용실에 다니는 일도 그런 것 중 하나이며 옷가지를 사고 입는 것-누군가는 내가 브랜드를 두르고 다닌다고 하지만 은하수가 오만 원에 백 원 빠진 금액으로 티셔츠 5장을 인터넷에서 사준 걸 돌려 입고, 십 년도 넘어서 땀이 배면 냄새가 심해도 아까워 못 버린 것도 있다-처럼 외부를 치장하거나 손발톱을 깎거나, 목욕하면서 때를 미는 것 같은-이런 따위는 자칫하면 더럽고 이른바 나이 든 냄새가 나는 것 아니야? 라고 할 수 있지만, 샤워 위주라는 말이니 오해 없기를-일이 그렇다. 

나를 둘러싼 자질구레하지만 해야 할 일, 또는 하고 싶은 일이라 여겼던 몇 가지가 꼭 해야 할 일이 아닐 수도 있게 되었다. 어쩌면 지금껏 불필요한 데에 에너지를 쓰면서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사소하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됐을 삶의 표면 하나하나에 힘과 시간을 허비하며 살았다는 뜻이리라. 이러한 일은 게으름과 귀찮음을 규정하는 개인적 성향, 생활 습관의 좋음 나쁨을 떠나서 다만 생활에서 드러나는 모습이어서 알아차릴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느지막한 이때에서야 말이다.

우리 삶에서 어디 이러한 것만 그랬을까. 늦었지만 생활 표면만이 아닌 삶을 이어가고 규정하는 많은 것에서 귀찮음과 게으름이 발현되기를 기대한다. 가지에 가지를 치고 거미줄을 치는 생각과 말, 행동이야말로 귀찮음을 핑계로 정갈하고 단정해야 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피어나는 귀찮음이 이제는 삶 속으로 녹아들 수 있게 정갈한 귀찮음과 단정한 게으름을 더 피우자. 퇴근하고 여전하게 게으름을 피우며 뒹구는데, 머리 깎을 때가 다 됐는데 왜 그러고 다니냐며 핀잔을 주는 소리가 들린다. 손님은 속옷 바람으로 입장해야 하는 이상한 이발소는 오늘도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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