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졌다. 이른 더위가 찾아온 게 맞겠지. 우리는 텐트에서 자도 춥지 않겠는데, 하는 생각을 했고, 곧바로 주말에 우리의 오막살이를 챙겼다. 올해 처음 캠핑은 율포해수욕장 솔밭이었다. 사람들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솔밭에 텐트가 가득해서 텐트 난민촌을 방불케 했다.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장박 알박기로 보이는 텐트도 많았다. 올해 첫 캠핑을 다녀오며 우리는, 한적한 데로 가는 게 어떨까, 했고 두번째 캠핑은 유명하지 않은 바닷가로 갔다. 율포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았지만 텐트는 몇 동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여기가 좋겠네, 하며 우리의 오막살이를 펼쳤다. 부피를 줄이고, 짐을 줄여서 둘이서 한 번에 들고 다닐 수 있으니 한갓지게 펼치고 접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올망졸망한 캠핑 가재도구와 텐트가 아이들 소꼽놀이 같아서 재밌고 정겨웠고, 작은 코펠에서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몸으로, 가방으로 버너로 들이치는 바람을 막을 때 오늘 안에 밥을 먹을 수 있겠나, 하며 우리는 웃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가만히 앉는다. 6월에도 뜨거운 한낮 열기는 저녁이 되고 밤이 깊을수록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쌀쌀한 밤바람이 분다. 한꺼풀 옷을 걸치고 사그라드는 모닥불에 한 발 다가간다. 밤바다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바다 건너 편에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반짝거리는 불빛을 바라보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을 올려본다. 작은 솔밭에 텐트 서너 동에서 랜턴 불빛이 새어 나온다. 아이랑 엄마랑 재밌는 놀이를 하는지 어린 아이 자지러지는 웃음 소리가 들린다. 고즈넉한 바닷가를 끼고 돌아가는 도로에 오늘 하루 해야할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지 자동차가 높은 소리를 내며 빠르게 지나간다. 마을을 품은 뒷산에서 불어온 바람이 텐트 자락을 흔들더니, 솔밭 사이로 돌아서 밤바다로 나아가고, 밤바다는 크게 출렁이며 솔밭을 향해 밀고 들어온다.
우리는 둘이 누우면 꽉 차는 텐트 안에서 희미한 전등을 밝히고 얼마 간 꼼지락거리다가 전등을 껐다. 사위가 정막에 휩싸였고,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모로 누워서 가만히 두런거렸다. 무슨 말을 했을까. 우리는 규칙적으로 철썩이는 파도 소리, 이따금 텐트를 흔드는 바람 소리, 멀리 모내기를 끝낸 논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 서둘러 집으로 가는 자동차 배기음 소리를 들으며 바닷물이 들어오나봐, 바람이 센데, 왜 개구리가 운다고 할까, 새도 운다고 하잖아, 늦은 시간인 거 같은데 차가 다니네 따위의 하나마나 한 말을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텐트 안은 새근거리는 숨소리만 들렸다. 집에서보다 더 가깝게 누우니 숨소리도 가까웠다. 나지막하고 규칙적이던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바뀌더니 코를 고는 소리로 변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힘들어 했던 비염은 여전했다. 무릎담요를 뭉친 베개를 고쳐주고 머리를 살짝 돌렸더니 다시 새근거리는 나지막한 숨소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스르르 아침을 맞았다. 늘 같이 보내는 밤이지만 텐트 안에서 지내는 밤은 빠르고 깊었고, 가까웠다.
텐트 차양을 걷으니 바다가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버너에 불을 붙이고 물을 올려서 봉지 커피를 끓였다. 요즘 커피를 많이 마시지 않는다. 오후 늦게 마시면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자주 화장실을 가는 문제가 생겼다. 저녁에 술을 마시고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어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몸은 예전과 같지 않다. 시간도 예전과 같지 않게 빠르게 흐르는지 아침은 빠르게 찾아와서 이른 시각에 잠에서 깬다. 키 큰 소나무가 아침 햇살을 가렸고, 소나무 그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빵을 뜯어 먹었다. 텐트 안에서 아직 잠에 빠진 소리가 자그맣게 들리다가 멈추다가 했다. 텐트 주변을 정리한 뒤 운동화 끈을 묶었다.
바닷가를 끼고 도는 길을 달리면 상쾌했다. 차는 많지 않았고, 논밭으로 일을 가는 경운기가 가끔 보였고, 유모차를 밀고 오가는 할머니를 때때로 만났다. 왐마, 더운디 애쓰요, 용감하게 달리씨요, 하는 할머니 말에 웃었다. 그래, 달리는 일은 용감하게 할 일이지. 달려야지 마음을 먹어도 운동화 끈을 묶고 나서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럼, 용감하게 나서야 하고 용감하게 달려야 가능한 일인 것이었다. 어디 달리기만 그렇겠는가만. 예~ 하고 인사를 했다. 아먼, 운동을 해야제. 할머니는 나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유모차를 밀고 갔다. 할머니는 펴지지 않는 허리로 유모차를 밀고 또 밭으로 가는구나. 주말에 찾아올 아들 딸에게 뭐라도 싸서 보내겠지.
보성 바닷가를 한 바퀴 달리고 오니 은하수가 텐트 앞에서 달그락거리고 있었다. 참치를 넣은 김치찌개와 보슬보슬한 쌀밥이 뚝딱 차려졌다. 그 사이에 바다는 더 멀리 물러나 있었고, 햇살은 따가워졌다. 밥 한 그릇에 김치찌개 하나였지만 달리기를 한 뒤 먹는 밥은 달았다. 우리는 산책에 나섰다. 몇 동 되지 않은 텐트를 구경했다. 캠핑을 할 때 텐트촌을 돌아다니며 텐트와 텐트 살림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은 재미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둘이서 친 텐트를 살짝 엿보니 온갖 짐이 텐트 안에 널부러져 있었고, 아이가 있던 가족 텐트 앞에 어젯밤 고기를 구웠던 불판이 놓여 있었고, 아이는 혼자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다. 솔밭 옆 마을 골목길을 지나서 바닷가 모래밭을 걸었다. 모두가 떠났는지 빈 집이 있었고, 터를 높게 올려서 새로 지은 집이 두 채 있었다. 새로 지은 집에는 차를 넣는 차고를 비닐하우스처럼 만들고 바퀴를 달아놓은 게 보였다. 이리저리 이동이 가능하게 만든 것 같았다. 아저씨가 겁나 부지런한 모양이네, 했다.
작은 마을을 지나 다시 바다로 갔다. 바다가 얼마나 멀리 나갔는지 바닷물이 보이지 않았고, 모래밭이 드넓었고, 모래밭에 작은 꽃게가 부지런히 오락가락했다. 마을 끝자락 횟집 앞을 지나고 모래밭을 걸어서 산모퉁이를 돌아가자 더 넓은 뻘밭이 나타났다. 산모퉁이 자락에 군부대 초소가 허물어지고 있었고, 녹슨 철조망이 아직 남은 걸로 봐서 바다를 지키던 초병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뻘밭은 와온 못지 않게 넓었고, 물때를 기다리는 배 한 척이 뻘밭 가장자리에 누워 있었다. 물이 찰방거리는 어느 새벽 덜 깬 잠을 쫓으며 늙은 어부 부부가 저 배를 부려서 먼 바다로 나가겠지.
우리는 해안가를 따라서 걸은 뒤 달리기를 했던 국도를 따라서 돌아와 짐을 꾸렸다. 많은 것이 작고 적어지면서 텐트와 짐을 부리고 꾸리는 일은 한결 쉬웠다. 우리는 율포해수욕장이 있는 번화가로 나와서 삼각김밥과 간식을 샀다. 산에 올라서 먹을 점심이었다. 우리는 이번 캠핑부터 한적한 바닷가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에는 근처 산을 오르기로 했다. 친구 S가 보성 오봉산에 다녀온 사진을 모임밴드에서 보고 우리도 가기로 했다. 보성 일림산, 제암산은 많이 들었지만 오봉산은 처음 들었기도 했고, 무리하지 않는 동네 산을 오르는 재미도 있으니까.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산에 올르는 터라 가장 짧은 코스를 선택했다. 어제 캠핑 짐을 쌀 때 등산 스틱과 신발을 준비했다. 스틱은 여러 가지로 등산을 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산에 갈 때면 꼭 챙긴다. 주차장에서 곧바로 정상으로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정했고 대략 2시간 반이 걸린다고 했다. 주차장에서 곧바로 정상으로 가는 바람에 줄곧 오르막을 마주해야 했다. 이마에 땀이 주렁주렁 맺혀서 떨어졌고, 우리는 자주 쉬었다. 하늘은 높았고, 구름은 유유자적했고, 햇살은 한여름을 방불케했지만 숲에 들었을 때 나무 그늘은 선선했고,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오봉산은 봉우리 다섯 개 산봉우리가 이어진 산군을 일컸는 이름이었다. 안내문에서 오봉산은 온돌 구들장을 채취한 산이었다고 했다. 산에 오를수록 우리나라 방마다에 깔린 구들장의 대부분이 여기 오봉산에서 생산됐다는 말을 실감했다. 평평하고 널찍한 돌이 도처에 깔렸고, 등산로를 만들 때 나온 돌로 탑을 쌓았는지 돌탑이 많았고, 산은 암벽 등반가가 좋아할 만큼 기암괴석이 즐비했고,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계곡을 이루기도 했다. 기암괴석 중에서도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서있던 칼바위는 칼보다 칼로 도려낸 것 같다거나 코브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모양만큼이나 기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법했다. 너덜지대와 돌탑, 암벽을 보며 그래서 주차장에 자동차와 등산 동호회 버스가 많았고,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꽤나 알려진 산인 갑다, 했다. 동네 뒷산을 찾아 왔는데 알고 보니 숨은 명산이었다.
정상이 가까운 것 같은데, 했을 때 은하수는 오래 쉬었다 간다며 길 옆에 앉았다. 몇 걸음 더 올라가니 정상이었고 전망대가 있었다. 등산의 관용어인 조금만 더 가면,이 말로만이 아니라 그야말로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었다. 산은 돌아가면 나타날 것 같아도 돌아가면 또 가야하고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가도 불현듯 나타난다. 뭐가 됐든 산에서는. 오봉산은 해발고도가 300미터 정도로 낮지만 바다에서 곧장 올라온 탓에 산은 높았고, 바다를 품었고, 멀리 고흥을 담고 있었다. 남녘 산은 산뿐 아니라 바다를 품고 있어서 어질고 지혜로운 이를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우리는 전망대에서 가방을 내려놨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하얀 구름과 함께 산을 넘고 있었고,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어디쯤에 사람의 집이 갯바위에 붙은 조개처럼 올망졸망했고, 산자락에 펼쳐진 논밭은 거기서 일하는 농부가 얼마나 바지런하고 정갈한지 몰라 하듯이 단정했다. 우리는 물을 마시고 삼각김밥을 꺼냈다. 삼각김밥 포장을 뜯을 때 아재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삼각김밥은 포장을 뜯는 순서가 1, 2, 3하고 번호로 매겨져 있다. 1번, 2번까지는 포장지가 무난하게 열려서 삼각김밥 모양을 유지한다. 하지만 늘 마지막 3번은 잘 안 풀려서 삼각김밥은 헝클어진다. 그게 안 돼, 하던 은하수도 3번에서 헤맸다. 모양이야 어떻든 땀 흘린 뒤에야 뭐라도 달다.
누워서 바람과 구름, 하늘과 땅을 느끼는데 사람들 말소리가 들렸다. 연달아서 사람들이 전망대로 들어왔다. 구미에서 왔다는 사람들은 오봉산을 종주하고 있다고 했다. 봉우리 네 개를 넘어서 이제 마지막 정상에 도달한 것이었다. 누가 능선만 따라가면 된다 캤나, 아이고야, 오르막내리막 죽는 줄 알았다카이, 하며 경상도 아지매가 우리 옆에 풀석 주저 앉았고, 경상도 아저씨는 와서 막걸리 한잔 하라는 동료 말에 오늘 새 바지 입었당께, 하며 굿굿하게 서서 막걸리잔을 받았고, 봐라 안 멋있나, 저가 팔영산이라, 하며 사람들이 떠들썩했다.
정상에서 내려오자 내리막길이 가파르다가 다시 오르막이 나타났고, 아지매 말마따나 능선을 타고 가다가 서서히 오르고 다시 내리막이 계속 이어졌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올라오고 있었고 얼마나 남았냐는 질문에 예의 조금만 더 가면 돼요, 했다. 한참 능선을 걸었을 때 일행이 아닌지 뒤쳐졌는지 여자 세 명이 쉬고 있었고 한 명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발이 뭐가 맞질 않는지 벗으면서 힘들어 했고, 다른 한 명은 나는 스틱도 무겁다야, 하며 등산스틱을 접어서 배낭에 달았다. 산에 다닐 때 등산 스틱은 우리 몸 하중의 30퍼센트 정도를 팔로 분산시켜서 체력 소모를 줄이고 무릎과 같은 관절을 보호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특히 내리막 돌계단 같은 데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등산 스틱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지만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서 익숙해지면 등산 스틱을 들어도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등산 스틱을 몇 번 써보지 않은 은하수도 내려오는 길에 스틱 챙기기를 잘 했네, 했다. 남쪽 바닷가 낮은 산이라 해도 바위, 돌이 많아서 조심해야 할 텐데, 하며 주차장을 향했다.
세 시간 남짓한 등산길이었지만, 오랜만에 산에 오른 터라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주차장 커피트럭에서 시원한 커피를 한 잔 사서 나눠 마셨다. 동호회 버스 앞에는 우리보다 먼저 내려온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탁자를 놓고 의자에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주차장이 가까워질수록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더니 여기서 나는 소리였다. 버스에 탁자와 의자까지 싣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커피를 살 때 보니 영감님 한 분이 막걸리에 불콰해진 얼굴로 커피트럭 아주머니에게 농을 걸고 있었다. 안 된당께요. 와따, 오백 원 어치만 주랑께. 땀 흘리며 산에 오르고 내려와서 할 일을 다한 홀가분함으로 마시는 이른바, 하산주가 맛있는 줄은 익히 알지만, 여기 저기 술이 빠지는 데가 없구나, 하며 좌판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차에 올랐다.
바닷가 텐트에서 잘 때 한뎃잠을 자는 노숙이라 온몸이 뻑적지근할 것 같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데가 없었다. 밤하늘, 밤공기, 바닷바람이 감싸서 그런 갑다, 했다. 오랜만에 산에 올라서 다음 날 일어나면 다리가 아플 줄 알았는데 은하수도 괜찮다고 했다. 짧은 시간, 높지 않은 산에 다녀와서 그런 갑다, 했다. 매일 아침에 헤어지고 저녁에 만나다가 1박 2일을 줄곧 붙어서 지냈다. 침대보다 가까운 거리인 바닷가 텐트 안에서 서로 숨결을 느끼고, 산책길보다 더 서로에게 힘이 되는 등산 길에서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1박2일에 대한 평가가 과한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