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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하나

캠핑의 추억

 

 

 

 

 

 

 

 

 

 

 

자동차 트렁크는 이미 빽빽했다. 가로, 세로로 레고 블록을 맞추듯 짐을 이리저리 끼워넣는다. 빈틈이라곤 좀체 찾아볼 수 없다. 뒷좌석에도 채운다. 운전석 룸미러에 뒤에 따라오는 차가 보이지 않는다. 온통 짐으로 가득 찼다. 피난민도, 피난민도 이런 피난민이 있을까 싶을 만큼, 이것은 차라리 난리 통에 짐을 싸서 떠나는 피난민이다. 난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피난 행렬이 시작된다. 

이런 피난 행렬에 끼었던 날이 언제였을까? 아마도 10여 년 전쯤 된 것 같다. 구빈이가 3학년인가, 4학년 때 일이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때 우리 학년은 의기투합했다. 거의 모든 가족이 텐트, 타프, 의자, 테이블 등등 캠핑용품을 샀고, 몇 번 캠핑을 다녔다. 캠핑용품점에서 와, 이런 것도 있네, 이건 사야 해, 이것도 꼭 필요할 듯, 텐트는 4~5인용은 돼야, 같은 말로 이것저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연휴양림 같은 곳에서 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고, 고기를 구워 먹고, 커피를 끓여 마셨다. 아이들은 휴양림 놀이터나 물놀이장에서 어울려서 놀기 좋았고, 부모들은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겼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짐이 많아도 너무 많았고, 그만큼 하나하나 부피도 컸고, 이것저것 바리바리 다 싸서 다녔다. 집 나가면 뭐가 필요할지 몰라, 했는데 이것은 아마 밖에서도 집에서처럼 모든 걸 다 갖춰야만 하는 강박이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고 어쩌면 그땐 그게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집에서와 똑같은 차림을 하자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집에서 차로 옮겼다가, 목적지 주차장에서 텐트 사이트까지 옮겼다가, 사이트를 구축하느라 온갖 것을 모조리 펼쳤다가, 돌아오는 날이면 이 과정이 다시 역순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어 기진맥진했다. 거기에 휴양림 야영장은 텐트와 사람으로 넘쳤고, 텐트마다 고기를 굽느라 연기는 자욱해서 말 그대로 난민촌을 방불케 했다. 우리는 녹초가 되어서도 고기 한점, 소주 한잔으로 이야기꽃을 피웠고, 이른 아침 야영장에서 피어나는 커피향을 음미하며 캠핑은 이 맛이지, 했다. 

몇 번 이런 캠핑을 하다 보니 슬슬 너무 힘든데,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캠핑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그해 11월 초 지리산 피아골 캠핑이었다. 겨울 추위에 대한 대비는 고작 침낭만으로 겨울 캠핑을 나섰다가 혼이 났다. 11월 초였지만 피아골은 추워도 너무 추웠다. 우리 가족은 밤새 서로 꽁꽁 부둥켜안고, 아이고 추워라, 아이고 추워라를 반복하다가 날이 새기가 무섭게 짐을 챙겨서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캠핑을 떠났던가? 자세한 건 은하수가 더 잘 알 테지만 아마 없었던 것 같다. 그해 여름에 시작한 우리 가족의 캠핑 생활은 이렇게 겨울이 채 되기도 전 피아골 캠핑장에서 끝이 났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서 구빈이는 20대 청년이 되었고, 우리 부부는 중년을 지나서 급속도로 초로를 향하고 있다. 구빈이는 기숙사 생활을 계속했던 터라 우리 부부만 집에 남은 게 낯선 환경은 아니었지만, 구빈이가 20대 청년이 되자 멀리 서울까지 가는 바람에 실질적으로 우리 부부만 집에 남게 되었다. 각자 하루를 끝낸 우리는 가능하면 함께 마주 앉아 저녁을 먹으려고 노력했고, 산책을 했고, 전국적으로 유행인 드라마를 우리만 빠질세라 컴퓨터를 켜고 봤다. 

산책할 때면 특히 주말에, 공원 주차장에서 차박을 하거나, 캠핑을 하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우와, 하며 캠핑카 주변을 둘러보거나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굽는 캠핑족을 구경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드라마를 본 뒤 유튜브를 들락거리며 요즘 캠핑은 이렇게 하는구나, 했다. 구빈이 또래가 혼자서 차박을 하는 모습, 눈 내리는 산에서 홀로 텐트 없이 가림막과 침낭만으로 밤을 새우는 사람, 부부끼리 알콩달콩 시답잖은 소리를 늘어놓으며 캠핑을 하는 모습 따위를 봤다. 우리는, 예전하고 많이 다른데 우리도 어디 바닷가라도 가볼까나, 했다. 

그렇지만 나는 캠핑을 떠올릴 때면 예전 피난민 행렬이 떠올라 고개를 저었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하기 나름 아닐까, 하는 은하수 말에 그렇긴 해, 사람들 다 떠난 바닷가에서 작은 텐트 치고 커피잔을 들고 바다를 보며 멍때리다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고 대답했다. 나는 비교적 팔랑귀라 남이 장에 가자고 하면 따라서 가는 편이므로. 

아따, 저 텐트는 진짜 작네이~ 여수 낭도 바닷가에서 밤을 보내고 늦은 아침을 맞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하는 말이 들렸다. 우리는 두 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텐트 안에서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우리는 캠핑을 떠나기 전에 규칙을 하나 정했다. 모든 캠핑 짐을 둘이서 각자 메거나 들 수 있는 가방 하나에 들어갈 만큼만 준비하기로. 그렇게 우리는 여름 끝자락에 피서객이 떠난 바닷가로 갔다.

여름 무더위가 한풀 꺾인 바다에 여전히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서핑보드를 타고, 바닷가 솔숲에 크고 작은 텐트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날이 저물자 사람들은 떠나고 텐트도 몇 동 남지 않았다. 바다와 솔숲에 어둠이 내렸다. 우리는 둘이 겨우 누울 수 있는 텐트를 세우고, 엉덩이를 걸칠 의자를 펼치고, 작은 화로에 불을 피워서 밤공기를 덥혔다. 밤은 깊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싸늘했고, 파도 소리는 규칙적으로 작아졌다가 커졌다. 우리는 화로에서 솔방울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를 들으며 달빛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품은 밤바다를 바라봤다. 우리는 가만히 서로에게 어깨를 기댔다. 밤의 솔숲에서 텐트마다 불을 밝히고 사람들은 소곤거렸고, 밤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졌다. 화롯불이 사그라질 때 우리는 텐트로 들어갔다. 좁은 텐트에서 침낭 하나가 우리를 감쌌다. 멀리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고, 파도 소리는 여전했다. 우리는 무슨 말인가를 소곤거렸다. 

사람들이 떠난 늦은 아침 솔숲은 의외로 깨끗하고 조용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캠핑장 예절이 자리를 잡아서 밤에도 시끄럽지 않고, 지냈던 자리를 잘 치우고 떠난다. 아침 바다는 잔잔했고, 커피향은 은은했다.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적게 준비하고, 작은 걸 챙기니 많은 부분이 간결하고 수월해졌고 우리는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몇 차례 더 호젓한 가을 바닷가에서 밤을 새웠고, 아침 커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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