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어린배움터, 학교 가는 길, 잠자리가 나는 속도보다 조금 빠르게 그렇지만 내가 지금 가는 속도보다는 분명 조금 더 느리게 가야하는데 잊고 가는 길, 나는 그 길을 따라서 학교에 갑니다. 그 길에서 꽃을 만나고, 그 길 끝에서 꽃 같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누가 심었을까? 언제 꽃 피우기 시작했을까? 그 길을 오가며 바람에 흔들리는 무리를 봤습니다. 해를 닮은 꽃은 고속도로 고가다리 아래, 좁고 기다란 돌밭에서 삽니다. 그곳에서 와온바다를 건너고 해룡뜰을 지나온 바람을 어루만집니다. 언제고 한 번은 가까이 가봐야지 하면서도 늘 지나쳤습니다. 그 밭을 지날 때 차는 너무 빨리 달립니다. 하늘친구 천인클럽 900일 회향을 한 뒤 901일에 갔습니다. 바람은 살짝 불고 빗줄기는 잦아들고 꽃잎에 빗방울이 맺힙니다. 비가 와도 해는 떠있겠지, 했습니다.
한결이네 집 밑, 농원집 철조망을 살짝 넘겨보면 농원에서 키우는 나무들 사이로 꽃이 피었습니다. 꽃은 철조망 안에서 그리고 철조망을 뚫고서 핍니다. 나리는 철조망 안에서 인동초는 철조망 틈으로 나와서 핍니다. 지나가는 차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흔들립니다. 겨울은 버티고 지냈는데 사람은 버티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했습니다. 내리막이고 굽어진 길에서 차는 더 빨라집니다. 꽃대가 휘청거립니다. 한결이네 강아지 한 마리가 발치에서 킁킁 거렸습니다. 메리~ 얼렁 들어가라. 한결이네 집에는 개가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학교 옆, 와온 들어가는 삼거리 모퉁이 창고건물 앞 길섶에는 온갖 풀이 무성했습니다. 그 틈에서 몇 그루가 꽃대를 세웠습니다. 분홍색, 하얀색 나란히 나란히. 며칠 전에 갔을 땐 그랬습니다. 오늘 그 길은 단정합니다. 그 옆 이발소에서 스포츠머리를 하고 나온 중학생처럼. 부지런한 누군가가 예초기라도 돌렸는 갑다. 그래도 쭉 뻗어올라가는 녀석들은 그대로 두지, 하다가도 잘나고 못났다고 차별하는 건가 싶어서 누군가 그럴만 했으니 그랬겠지, 합니다.
삼거리집 벽돌담 너머 무더기로 핀 꽃을 훔쳐 봅니다. 슬쩍 부는 바람에 꽃잎이 제각각 하늘거립니다. 자기들끼리, 끼리끼리 올망졸망 재잘재잘 키득키득...
학교 화장실벽 밑에서 밝게 노랗게, 지금은 찾지도 않는 작은 기상대가 있는 뒷뜰에서 희고 노랗게 그리고 이곳저곳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저마다 자신의 꽃을 피웁니다. 크고 작고, 무리지어 또는 혼자서 자기만의 꽃을 피웁니다. 봄을 지나 여름에 피는 꽃,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또 그 녀석에게 맞는 제각각의 꽃을 피우겠지요. 햇볕, 바람, 빗줄기와 어울리면서.
사람들은 하늘친구 천인클럽 900일 회향을 위해 모였습니다. 자리에 앉기 전에 손을 씻습니다. 옹기대야에 담긴 물로 손을 씻으면 몸과 마음이 정갈해지는 걸 살짝 느낍니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사랑어린사람입니다. 나는 하늘사람입니다, 라는 말을 내가 들을 수 있으니. 우리는 함께 노래하고 마음을 모으며 하늘친구 천인클럽 900일 회향을 맞이합니다.
100일 동안 하늘친구 천일기도문을 이어왔던 바람빛의 마음을 담은 글을 함께 듣습니다.
.....백일동안 하늘친구 천일기도문을 이어가는 소임을 받았습니다. 백일기도를 시작하며 나는 그저 메아리일 뿐, 나의 중심을 이끄시는 이의 울림을 들으며 이를 기록하고 잘 모시고 잘 섬겨야겠다 마음먹었지요. 천일기도 첫날의 약속처럼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로 마음 모으기, 매일 백배 절명상, 매일 한 번 하늘 올려다보기 등 좋은 날은 좋은 날대로 싫은 날은 싫은 날대로 정성을 담는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어느날 고요한 아침해처럼 환하게, 갑자기 섬광이 스치듯 떠올랐습니다. 주님, 내 안에 당신이 ‘있음’을 선명하게 느끼고 알게 된거예요! 주님이 내 안에 있는 걸 알게 되니 한없는 기쁨과 평화가 찾아왔어요. 내 안에 있으며 동시에 내 밖에 있는 하느님. 나는 본디 하늘사람인 것을 깨닫고 내 안에 있는 하늘의 소리를 잘 듣고자 했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 감정의 부림을 받을 때도 내 안의 하늘에게 묻고 하늘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들이 점차 늘어납니다.
.....나는 하느님에게 심겨진 씨앗, 삼켜진 밥알입니다. 언제나 눈길을 내 안의 중심에 두고, 내가 배워서 아는 것이 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임을 깨닫고, 내 앎이 가슴으로 내려가고 손발이 되기를 오직 기다립니다. 또한 머리로 아는 것을 깨달음으로 혼동하지 않고, 깨달음을 해탈로 혼동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배우고 자기를 닦아 나가는 인내와 겸손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 바람빛, <하늘친구 천인클럽 900일 회향을 하며> 중에서
푸른솔과 바람빛이 900일 회향에 따른 기도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푸른솔은 200일 회향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900일 회향의 자리를 찾아온 각자의 마음, 기도하는 마음을 돌아가면서 함께 나눴습니다. 구랑실이 차분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시를 낭송했습니다. 사랑어린배움터 가족들의 약속을 담은 약속문을 함께 마음에 새겼습니다.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우리들의 마음을 담아 지은 기도문을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읽고 절을 올렸습니다.
사랑하기 위하여 내가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분명한 사실을 가슴에 새기며 절을 올립니다./ 한사코 사랑하자 사랑이 답이다는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기를 바라며 절을 올립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나로부터라는 것을 알아 나의 눈길을 늘 나에게 두기를 가슴에 품으며 절을 올립니다.
평화학교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사랑어린배움터로의 변화, 그 길에서 우선 할 수 있는 몸짓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 맨바닥에서 몇몇이서 시작했어요. 여러분은 뭣도 모르고 왔지만, 우리는 최소한 900일 동안 이곳에서 여러분을 기다린 것입니다..... 지극정성을 다해야 하지 않겠어요? 100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자기 기도문을 하루만 올려도 되고, 하루 세 번 기도하는 시간에 같이 해주면 됩니다. 하루에 세 번 멈추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혁명입니다. 시대에 온 몸으로 저항하는 것, 여기서부터 기도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묵언수행 중이신 일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동안에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은 작은방에서 통통 거리며 뛰어 놀았습니다. 도서관 안은 사람들의 열에 들떠 발갛게 열꽃이 피었습니다. 이따금 살랑, 바람이 불었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빗소리는 점차 커지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가만히 들었고,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훌쩍였고 또 누군가는 울먹거리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천일기도 중 100일을 남겨 놓았습니다. 100일을 이어나갈 하루 또는 일주일 동안 기도문을 쓰거나, 일요일마다 우리의 기도문으로 절을 올리거나, 천일까지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하거나, 잠자리에 들거나 일어나면서 나는 사랑어린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며 미소짓기 등 우리의 약속을 스스로에게 해봅니다.
아~ 기도문을 써본다는 것, 무언가 마음을 내서 약속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천일 중 100일 기도를 향한 각자의 약속을 담은 쪽지를 모읍니다. 우리는 노래하고 함께 마음을 모으며 900일 회향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자리가 정리된 후 이어진 2부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약속을 담은 쪽지를 한 장씩 꺼내서 돌아가며 읽고 자신만의 다양한 기도 방법을 선보였습니다. 가만히 있거나, 손을 모으거나, 노래하거나, 이야기를 풀어내거나 하면서...
하루가 모여서 100일 됐고 900일 됐습니다. 이제 천일도 내일이겠지요? 기도를 하는 것, 마음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내 마음에 작은 촛불 하나 밝히는 것과 다르지 않겠지 합니다. 기도하는 900일의 밤은 깊었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날이 밝아 901일이 되는 날 학교 가는 길을 따라 사랑어린배움터에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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