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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몇 장

연극은 끝났다

 

 

연극이 끝났습니다. 연극이 끝난 뒤 9학년 친구들은 매듭을 짓고 떠났습니다. 9학년 친구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서 다시 떠나며 새로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연극은 또 다른 이야기로 무대에 오를 것입니다. 끝난 것은 끝난 것이고, 끝난 것은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날에 매듭을 짓고 길을 떠나는 여리고 작은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일은 슬픕니다. 아이가 느끼는 들뜸과 설렘, 걱정과 불안에 더하여 격려와 토닥임이 먼저일 테지만 슬픕니다. 연극이 끝나고 모두가 떠난  뒤 소품이 정리된 텅 빈 무대를 보는 일도 그렇습니다. 끝난 연극을 그대로 다시 할 수 없는 노릇이고, 매듭을 짓고 떠난 아이에게 매듭을 풀라고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지금은 다만, 다 끝난 일은 다 끝난 일이니, 다 끝난 일은 다 끝났다는 걸 알아차리는 시간일 것입니다. 

 

이번 연극은 조명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검은색 페인트를 칠한 전등갓에 백열등을 끼워 조명으로 썼습니다. 배우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암전 없이 배우의 등장과 퇴장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었습니다. 사진도 여의치가 않습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기억 속에서 아련해진 연극을 그랬었어, 하는 마음으로 최종 리허설 장면 몇 장을 보탭니다.

 

 

 

 

 

 

 

 

 

 

 

 

 

 

 

 

 

 

 

 

 

 

 

 

 

 

 

 

 

 

 

 

 

 

 

 

 

 

 

 

 

 

 

 

 

 

 

 

 

 

 

 

 

 

 

연극은 우리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무대에 오를 날이 다가올수록 며칠만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막바지에 아이와 청년할 것 없이 많은 배우들이 감기에 걸리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연습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무대에 올릴 수 있을까, 했고 공연이 잡힌 주간에 어쩌면 모두가 감기에 전염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삶의 빛나는 순간을 때때로 알아차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순간을 무심하게 흘려보냅니다. 어쩌면 매순간 나 자신이 주인공이고, 매순간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줄 모르지만 말입니다. 관객이 둘러싼 무대에 첫발을 내딛고, 첫 대사를 나에게서 내보내는 일은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럴 때 이 순간 이 연극의 주인공이며, 이 연극에서 반짝거리는 나를 내가 본다며 숨을 길게 마시고, 길게 내뱉고 발을 뗍니다. 장면이 바뀌어 어두운 무대 뒤에서 거친 호흡을 고릅니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고 들려오는 배우들 대사를 들으며 다음을 준비합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가슴으로 밀려오는 감동과 환희의 순간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힘들어 하고, 어려워하던 일이 있는 힘을 다해서 펼쳐질 때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두운 무대 뒤에 우두커니 서서 흐르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연극은 우리 삶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실수를 했다면 얼른 털어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실수에 매달린다면 지금 장면이 흔들리고, 다음 장면을 이어가기 어렵고, 함께한 배우들을 힘들게 합니다. 지나간 장면은 지나간 대로 흘려보내야 지금 펼쳐지는 장면에, 다가오는 장면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살면서 지난 일에 매달려 애달복달하며 지금을 살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면 슬픈 일입니다. 대사 하나와 몸짓 하나가 이어져서 한 장면 한 장면을 만들고 연극을 만듭니다. 우리 삶도 매순간 어김없이 이어지고 펼쳐집니다. 가만히 지켜보면 가슴 벅찬 감동과 빛나는 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극은 끝이 났지만, 우리 삶이 계속되듯 연극은 계속됩니다. 한여름밤의 꿈속에서 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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