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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몇 장

그가 죽었다

 

 

두더지의 부음을 보리밥으로부터 들었을 때 당황스러웠습니다. 살아있는 죽음의 장례식이라니. 부음을 전하면서 보리밥은, 그의 죽음은 대사일번大死一番 절후소생絶後蘇生을 위함이며, 죽음에 따른 장례 절차를 3일에 걸쳐서 치른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대사일번 절후소생이 무엇인가요? 크게 한 번 죽어야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 진리의 깨달음, 스승으로부터 깨달음에 이르러 지난날의 자신을 버리고 새롭게 산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니 대사일번은 죽음에 대한 은유일 텐데, 실제로 장례 절차를 진행한다니, 또는 그 3일에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따위에 당황스러웠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보리밥은 부음과 장례 절차를 전하며 나도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 마음이 생길지 지켜볼 뿐 잘 모르겠다,며 우리는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두더지 사진을 정리해서 짧은 영상을 만드는 게 어떠냐고 했고, 며칠 남지 않았지만 간단하게라도 영상을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급작스럽게 닥친 죽음에 고인의 일생을 정리하여 실제 장례식장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아서 마음이 급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근 15년에 걸친 시간을 하루이틀 안에 외장하드디스크에서 추려내야 하는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이후에 장례식 첫째 날을 시작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둘러앉은 자리에서 보리밥은, 처음에는 살아있는 사람의 장례식이라고 하니 유쾌하고 발랄한 시도에서 오는 가벼움이 있었으나 장례식이 다가오자 알 수 없는 절실함이 생겼다, 라고도 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두더지께서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인 2009년부터 최근까지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영상이 사그라든 자리에 짧은 시간 침묵이 흘렀습니다. 침묵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리에 둘러앉아 마음을 모으는 일뿐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장례를 치른 적도 없으려니와 이를 통해서 큰 배움을 갖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일은 더욱 요원하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다만 가만히 앉아 들숨과 날숨을 지켜보며 마음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자리를 파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자리는 늦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순서를 정하지 않았고, 다만 가만히 앉아 있다가 말하고 싶거나, 노래하고 싶을 때 앞으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두더지와 함께한 추억을 나누거나, 다 함께 두더지가 좋아했던 노래를 부르거나, 자신이 좋아하거나 두더지를 위한 노래를 부르거나, 살아있는 사람의 장례식에 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두더지를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처음 두더지를 알게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말하고 노래할 때 소리없이 눈물을 훔치거나 환하게 웃기도 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장례식 첫째날이 지나고 둘째날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당골 박필수 선생님과 함께 산씻김굿을 준비했습니다. 씻김굿은 죽은 자와 가족의 넋을 달래고 한을 풀어서 극락왕생을 비는 굿입니다. 살아있는 죽음을 위한 산씻김굿은, 망자를 위한 씻김굿과 마찬가지로 살아있으나 크게 한 번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고 맺힌 한을 풀어서 새롭게 태어나게 합니다. 우리는 촛불을 밝히고 만들어둔 만장을 세우고 정성스런 제수를 올리고 병풍을 둘렀습니다. 그리고 함께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겨울밤이 시작되자 더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장례식, 살아있는 죽음, 산죽음이 어떻게 펼쳐지고 자신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부정을 삼가기 위해 굿판이 벌어질 도서관을 피해 삼삼오오 모여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되고 도서관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꽃잎을 띄운 물에 손을 씻으며 마음을 정갈하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죽음에 세 번 절하고,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있는 죽음이 자신에게 잘 다가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습니다. 호기심과 기대, 걱정과 두려움이 깃든 사람들을 당골인 박필수 선생님께서 다독이며 안내했습니다.

 

박필수 선생님은 죽음을 위로하고, 살아있는 죽음을 달래는 씻김굿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굿은 당골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죽은 자든 살아있는 죽은 자든, 굿판을 지켜보는 구경꾼이든 모두가 한판 어울려 노는 판이라고 말했습니다. 행위자와 관객이 따로 없이 노래하고 춤추고 어울리는 굿은 한편의 종합예술이라고 했습니다. 씻김굿은 죽은 자와 산 자 모두를 위한 해원解寃인 것입니다. 박필수 선생님은, 여러분이 신명나게 한판 놀아야 죽은 두더지도 다시 새롭게 잘 태어날 거 아닙니까? 하자 사람들은 예, 하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당골 박필수 선생님이 징을 치며 부정不淨을 물리치는 노래를 하며 가택신, 조상신을 불러들여 굿판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선생님은 가늘고 길게, 느리고 빠르게, 낮거나 높게 노래했고, 징이 긴 여운에 여운을 더하면서 울리고, 아쟁과 장구가 어울렸습니다. 선생님이 춤을 출 때 죽은 자를 위한 노잣돈인 지전 꽃다발이 양손에서 하늘로 솟았다가 내려 앉았습니다. 바리데기는 죽은 자를 지옥의 시왕에게서 구해서 극락으로 인도하며 해방시키고 환생을 도모합니다. 사람들이 입장단을 맞췄고,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았고, 아직은 엄마 품이 더 좋은 아이는 엄마랑 놀았습니다.

 

송인효 군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인도 바라나시에서 지은 시 <그림자>에 자신이 곡을 붙인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는 갠지스강 화장터에서 불타는 장작더미 불꽃처럼 거세게 휘날리거나 잦아들었고, 애달프고 애절했고, 가슴 한 켠을 헤집고 들어왔습니다. 어디로 가시나요/ 타는 몸/ 발걸음은 익어가고/ 땡볕 아래 걷는 그림자/ 그대 슬퍼 말아요/ 지친 영혼 쉬어가는 길목에/ 그늘진 나무 한 그루/ 발가벗어 뿌리째 서 있잖아요/ 그대 울지 말아요 -송성영 시 <그림자> 중

 

 

 

 

 

 

 

 

 

 

 

 

 

 

 

 

 

 

 

 

 

 

박필수 선생님이 죽은 자와 산 자의 넋을 들어 올렸습니다. 넋올리기는 죽은 자의 넋을 산 자의 머리에 놓았다가 들어 올리는 것으로 죽은 자, 산 자 모두를 위로하며 어루만지고 달래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머리 위에 넋이 올려졌습니다. 누군가는 쑥 딸려 올라가고, 누군가는 몇 차례 들어 올려야 했습니다. 엄마 품에 앉아있던 하니 머리 위로 넋이 앉았습니다. 몇 번 시도 끝에 노잣돈이 얹히자 딸려 올라갔습니다. 선생님은, 맑은 영혼인 아이들은 잘 안 들어 올려져요, 하며 웃었습니다. 하니가 선생님이 쥐어준 돈을 받고 따라 웃었습니다. 그리고 고풀이로 이어졌습니다. 

 

 

 

 

 

 

 

 

 

 

 

 

 

 

 

 

 

 

 

 

 

 

 

 

고는 매듭의 다른 말인데, 하얀 천으로 매듭을 묶었다가 풀어서 죽은 자의 맺힌 한을 풀어 줍니다. 춤을 추는 바리데기 손끝에서 하얗고 긴 천이 나풀거렸습니다. 허공을 휘감아 돌다가 바닥을 가르고,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날아다니며 어루만졌습니다. 매듭을 지은 하얀 천을 받은 사람은 가만히 잡고 바리데기를 바라봤습니다. 바리데기가 춤을 추며 빙그르 돌자 매듭이 스르르 풀리더니 천을 잡은 사람의 손끝을 떠나 파르르 떨면서 날아갔습니다. 이제 산씻김굿은 절정으로 치달았습니다.   

 

 

 

 

 

 

 

 

 

 

 

 

 

 

 

 

 

 

 

 

 

 

 

 

 

 

 

 

 

당골이 씻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당골 박필수 선생님은, 죽은 자를 쑥물, 향물, 맑은 물로 씻기는 것은 죽은 자를 정화하여 천도하는 과정이에요, 사람이 많으니 너무 물을 많이 뿌리지는 마세요, 두더지가 새로 태어났는데 물에 젖어서 추우면 안되니까요, 라고 할 때 사람들은 알 수 없이 스며든 두려움을 살짝 감추며 웃었습니다.

 

사람들은 한 명씩 병풍 뒤로 들어가 살아있는 죽은 자, 두더지를 세가지 물로 씻겼습니다. 사람들이 씻김 차례를 기다릴 때 당골과 남은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지전 꽃다발을 흔들며 신명난 춤을 추었고, 징과 장구 아쟁과 가창이 어울리며 지전춤을 추는 사람들을 모았다가 흩뿌렸습니다. 원을 씻고 정화하는 데에 죽은 자와 산 자가 따로 없었고, 사람들이 손에 쥔 지전 꽃다발은 천도, 새로 태어남을 향한 염원으로 흔들리며 솟구쳤습니다.

 

 

 

 

 

 

 

 

 

 

 

 

 

 

 

 

 

 

씻김을 끝낸 후 당골이 넋을 모셔둔 넋당석을 들고, 장정들이 살아있는 죽은 자인 두더지를 어깨에 메고 길을 닦으며 나아갔습니다. 넋당석은 죽은 자가 극락으로 갈 때 인로왕보살이 배를 몰고, 팔보살이 호위를 하며 넋을 싣고 간다고 했습니다. 넋당석이 길을 닦으며 극락으로 향할 때 사람들은 노잣돈을 걸었습니다. 당골이 구슬프게 노래할 때 사람들은 두 손을 모았고, 하직이요 소리를 할 때 사람들은 북받치는 슬픔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죽은 자와 산 자, 삶과 죽음 모두를 향한 염원일 것이며 그리하여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산씻김굿은 마지막을 향합니다.

 

 

 

 

 

 

 

 

 

 

 

 

 

 

 

 

 

 

 

 

 

 

당골인 박필수 선생님이 반듯하게 누운 살아있는 죽은 자인 두더지를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몸이 굳을 대로 굳은 두더지를 사람들이 주물렀습니다. 극락왕생과 새로 태어남을 향한 염원과 정성으로 서로가 어울려 어깨춤을 추었습니다. 넋당석을 든 당골이 두더지와 사람들과 함께 만장을 앞세우고 퇴송退送을 위해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동그랗게 둘러서서 만장과 넋당석을 불에 태웠고, 불타는 무구를 뛰어 넘으며 굿판에 온 신, 죽은 자와 산 자 모두를 좋은 곳으로 떠나보냈습니다. 

 

굿은 끝났고, 사람들은 자리를 파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죽은 자에서 다시 산 자로 돌아온 두더지를 꼭 껴안았습니다. 눈물을 훔친 사람이 있었고, 만수무강을 비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 말이 없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두더지는 한 명 한 명 깊게 포옹을 했고, 마음을 담은 선물을 건넸습니다. 어둡고 차가운 겨울밤 서쪽 하늘에 조각달이 떠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큰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이며 빛났습니다. 

 

 

 

 

 

 

 

 

 

살아있는 자의 장례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몇몇이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따스한 겨울 햇살을 받으며 간장 한 종지와 동치미보시기를 앞에 두고 흰죽을 먹으며 3일장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사람들은 돌아가며 살아있는 죽은 자의 장례식, 죽음과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두더지는, 여러 가지 드는 생각 중에도 스승님으로 모시는 관옥선생님께 절을 올려야겠다,고 했고 오랫동안 깊은 절을 올렸습니다. 관옥선생님은 한참동안 말없이 두더지를 바라보고 나서 고맙다,라고 했으며 두더지 손을 잡고 됐어,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살아있는 자의 죽음은 가볍고 유쾌한 놀이로 시작되었지만, 당황스러운 일이었고, 점차 살아있는 죽음은 다만 죽음으로 깊게 다가왔으며, 굿판을 통해서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눈 뜨는 꽃을 염원하며 정화되었고, 꼭 껴안고 깊게 절하고 두 손을 맞잡으며 다시 눈 뜨는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살아있는 두더지의 장례식, 산죽음은 끝이 났습니다. 이제, 대사일번大死一番 절후소생絶後蘇生이 은유의 틀을 깨고 실재하는 일은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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