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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몇 장

봄 맞으러 가야지

 

 

 

여수 오동도에 동백꽃은 피었을까, 은하수가 말했다. 이제 겨울은 막바지인지 하루가 다르게 해는 서서히 길어지고, 햇살은 포근하고, 바람은 따스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길목에 동백은 꽃을 피울 텐데, 꽃이 지기 시작하면 가차 없을 텐데. 조바심이었을까. 몇 년 전에 구빈이랑 셋이서 오동도 동백숲을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동도 동백꽃이 보고 싶었나 보다. 지금쯤 피었을 거 같은데, 갈까? 이번 주말에 일도 없는데, 했다.

 

주말에는 주중에 해결하지 못 한 일을 처리한다. 대체로 토요일 오전이나 오후 한나절이면 해결되기도 하지만 온종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 봐야 한 달에 두어 번이긴 하다. 이런 일이 없을 때나 일요일에는 은하수랑 돌아다닌다. 절집 구경을 하며 숲길을 걷거나, 쇼핑몰에 가서 하릴없이 기웃거리다가 저녁을 사 먹기도 한다. 또 여기 바람과 저기 바람은 어떻게 다른지 살피러 어디든 간다. 며칠 바람이 살랑거리는 걸 보니 겨울 끝자락인지 봄이 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자우림 김윤아의 속삭임처럼 당신과 나 단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

 

그런데 오동도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을 것 같은데. 그렇긴 하제. 그럼, 강진 백련사 동백은 어떨까. 동백나무 군락은 옥룡사지, 선운사, 백련사 같은 절집 주변에 많다. 동백나무가 불에 잘 타지 않아서 많이 심었다고 한다. 절 주변만 아니라 여수 오동도나 제주도 카멜리아힐이 있기도 하지만. 언젠가 백련사 구경을 갔을 때도 동백꽃이 만개했었다. 그래, 백련사 구경하고 다산초당까지 걷고 오면 좋겠네. 커피 한잔 마시고 갈까.

 

 

 

 

나무가 볶은 커피콩을 갈아서 끓여 마신다. 아침밥을 대신해서 바나나를 쌉싸름한 커피와 같이 먹으면 커피 마시기도 좋고 바나나 먹기도 좋다. 그리고 박노해 시집을 펼친다. 박노해 시인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한 권씩 500쪽이 넘는 분량의 시집을 냈다. 중간중간 사진집이나 에세이를 내기도 했지만. 2010년에 나온 빨간 표지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는 우리가 갖고, 2022년에 나온 파란 표지 <너의 하늘을 보아>는 서울살이 기념으로 구빈이에게 선물했다. 서로 다 본 뒤에 돌려보기로 했다. 아침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몇 쪽씩 넘기거나 잠들기 전에 몇 편을 읽는다.

 

은하수랑 돌려보다가 어! 보람줄이 두 개네, 둘이서 사이좋게 보라고 보람줄이 빨강 파랑 두 갠 갑다, 하며 웃었다. 서울에 갔을 때 시집을 사서 구빈이에게 주자 구빈이는 난 시를 잘 모르겠어, 했다. 아침이나 잠들기 전에 몇 쪽씩만 읽어보자, 몰라도 그냥 읽어보자, 했고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다. 500쪽이 넘는 시집을 다 읽는 날이 오기나 할까 싶다가도 빨간 보람줄이 벌써 시집을 반으로 나눴다.

 

아침 열기를 끝내고 집을 나서기 전에 보온병에 커피를 담고 물병에 물을 받고 바나나 두 개와 사과 몇 쪽을 도시락으로 챙겼다. 우리는 순천만을 돌아서 벌교를 지나 느릿하게 강진으로 향했다. 백련사로 가는 국도변과 산등성이에 붉고 하얀 매화가 봄을 알렸다. 우리는 겨우내 꽉 닫혔던 유리창을 내려서 봄을 차 안으로 들였다.

 

백련사까지 두 시간 가까운 운전을 하면서 은하수랑 이런 말,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며칠 전 회사 실장님이 퇴근하고 집에서 두 분이 무슨 얘길 하세요?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글쎄요, 뭐 이런저런 얘길 하죠, 했다. 그분은 나보다 한 살 적고 아이들은 커서 집을 나가고 퇴근하면 남편과 둘만 있는데 통 할 말이 없고, 그러다 보니 둘만의 시간이 어색해진다는 거였다. 사랑하고 결혼하고 달콤하던 때 했던 시시콜콜한 한 마디 한 마디에도 공감하고 웃었던 그 말, 그 이야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이가 들수록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했고 몽하리에서 살며 사랑어린배움터 덕분이라고 실장님에게 말했다고 은하수에게 말했다. 은하수가 몽하리로 이사오라 해, 했다.

 

 

 

 

 

 

 

 

강진 백련사 앞 주차장에 차가 많았다. 승용차만이 아니라 관광버스도 여러 대 있었다. 경상도 어느 절에서 단체로 방문한 모양이었다. 경상도에는 절도 많고 신도도 많다는 게 떠올랐다. 무리 지은 사람들 사이로 리드미컬한 경상도 사투리가 백련사를 넘어 만덕산을 타고 올랐다. 몇 년 전 장일순 선생님 전시회를 찾은 정치인을 상징하던 <만덕산의 저주>의 그 만덕산이 백련사 뒤에 웅장하게 서 있었고, 드넓게 펼쳐진 강진만 바다가 봄바람에 살랑거렸다. 저녁이 있는 삶을 살자고 주장했던 그분은 뉴스에서 안 보인 지 꽤 된 것 같은데 저녁이 있는 삶을 잘살고 있겠지.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뤄 백련사를 감싼 것이 불이 나도 걱정하지마, 내가 덮어줄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에 이르기까지, 절집 주변으로 너르고 높게 동백나무가 펼쳐져 있었다. 아직 때가 이른지 동백나무 하나에 조그마한 꽃이 셀 수 있을 만큼만 피어 있었다. 작은 꽃망울이 어느새 피었다가 어느 틈에 졌는지 동백나무 아래 풀숲에 꽃송이가 툭, 떨어져 있었다.

 

소설가 김훈 선생님은, 동백꽃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러운 꼴을 보이지 않고,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한다고 했다. 동백꽃은 떠날 때를 이미 알고 떠나는 사람처럼 한순간에 돌아서듯 일순 툭, 떨어진다. 초록 이파리 사이에서 활짝 핀 동백꽃보다 바싹 마른 풀숲에 떨어진 동백꽃이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애달프고 애달파서 그이가 좋다. 그것은 제 할 일을 다 한 뒤 찾아온 평온한 모습이거나 제가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길이 다시 열리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모양처럼 보인다.

 

 

 

 

 

 

 

 

 

 

백련사 경내에 붉은 매화가 피었고, 차나무 틈새로 수선화가 노랗게 올라왔고, 감나무에 매달린 감처럼 고목에 연등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휴대폰을 들이댈 때 그의 친구이거나 연인이거나 가족인 사람들은 나무와 꽃 앞에 부동자세로 서 있었고, 우리도 그들 틈에 끼었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오솔길에 들어설 때 우린 가기 싫은데, 그럼 나만 얼른 갔다 올게,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빠른 걸음 하나가 우리를 지나쳐 갔다. 일행은 기다리고 아저씨만 다산초당을 다녀올 모양이었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가볼 곳은 가봐야지, 하는 말을 주고받기가 무섭게 반쯤이나 갔을까 싶은데 그분은 벌써 돌아왔다. 기다리는 사람의 시계는 느리고, 가는 사람의 시계는 빨라서 몸도 날래지는 모양이다.

 

초당 지붕이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사이로 나타났다. 초당 댓돌에 한참 앉아있었다. 은하수가 현판 글씨 사진을 찍는 걸 기다렸다가 일어섰다. 돌아오는 길에 초당을 둘러싼 대나무숲 사잇길을 오르는데 야, 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올 때 통대나무를 잘라 검은 케이블타이로 엮은 울타리를 보면서 아따, 대나무나 초당하고도 어울리는 걸로 울타리를 엮어야지 케이블타이가 뭐다냐, 했는데 그 울타리를 관율이만 한 아이가 나뭇가지로 드르르 치면서 내려오고 있었고, 아이 엄마가 못 하게 말리는 외침이었다.

 

통대나무가 울타리로 이어져 있으니 나뭇가지를 드르르, 치면서 걸어가면 얼마나 재밌겠는가. 아이는 그걸 알았는지 나뭇가지를 울타리에 끌면서 가는데 엄마가 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짜증을 냈다. 그냥 냅두제, 손대지 못하게 할 만큼 중요한 것도 아닌데, 하며 우리가 소곤댈 때 아이가 다시 나뭇가지를 울타리에 대고 끄는지 대나무 통을 울리는 소리가 숲속에 퍼졌고, 아이 엄마의 외침은 더 날카로워졌다. 봄날같이 기운생동한 아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어 있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수석에서 잠이 들락말락 하는데 라디오 진행자가 독일 시인의 시구처럼 봄에는 봄처럼 새로워지면 좋겠다고 하는 말이 들렸다. 시인은 바꾸어라, 당신의 모든 것을, 봄이 가까이 왔다,고 노래했단다. 그래, 온 천지에 봄이 오는구만, 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다 깜빡 잠에 빠졌다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쯤 저절로 눈이 떠지는, 달리는 차 안에서 자는 잠의 달콤함이란.

 

! 엄마,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어디쯤 왔나. 부스스 눈을 뜨니 장모님이 집에 들렀다 가란다. 벌써 두어 번 파김치를 담가주셔서 따끈한 밥 위에 얹어 달게 먹었는데 또 담그신 모양이었다. 쪽파는 대견하다. 꽁꽁 언 땅에서 겨울을 이겨낸 뒤 봄날 햇살에 여리디여린 자태를 드러내서 파김치가 된다. 쪽파를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린 파김치와 함께 쑥향이 가득한 된장국을 후루룩, 들이키면 온몸에 봄이 한가득 들어찬다. 여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장모님 손맛이 더해졌으니 더 말해 무엇하나. 장모님은 쪽파를 어찌나 깔끔하게 잘 다듬는지 처가 동네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이 부탁한단다. 쪽파는 봄을 안내하고, 장모님은 봄을 완성한다.

 

오늘 저녁은 확실하게 봄을 맞이 하겄네, 처갓집으로 봄 맞으러 갑시다, 하며 조수석 의자를 곧게 세웠다. 봄 맞으러 이리저리 싸돌아다녔는데 봄은 벌써 곁에 와 있었다. 지난겨울 나를 누른 두꺼운 더께를 털어내고 새로운 봄으로 단장하려고 했는데 이미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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