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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어린사람들

몽하리 사람들 경주 역사 기행 몽하리 소식지 창간준비1호가 나온 2020년 12월 어느 날 송년회를 겸해서 소식지를 돌려봤다. 이 자리에서 누군가 여행이든 기행이든 몽하리 사람들이 함께 떠나자고 했고, 사람들은 좋아라, 했다. 기왕이면 역사 기행이면 좋겠다고 했고, 후마가 중심이 되어 준비하기로 했고, 2021년 4월쯤을 목표로 했다. 그렇지만 여러 문제로 미뤄지다가 드디어 2022년 10월 한글날 연휴에 2박 3일 일정으로 경주역사기행을 다녀왔다. 역사기행에 대해 생각하고 말이 나온 지 근 2년 만이었다. 언제나 여행은 설레는 일이다. 출발 전날 몽하리 사람들 카톡방이 시끌벅적했다. 오랜만에 여러 가족이 떠나는 여행이라 긴장된다고 했더니 후마가 맴 단디 잡수이소~, 했다. 누구는 숯을, 누구는 불판을, 또 누구는 캠핑용 의자며 텐트.. 더보기
9월 이별꽃스콜레 박필수 선생님 어느 날인가 나는 어젯밤에 당신 꿈을 꾸었어요,하며 꿈 이야기를 당신에게 말했어요. 당신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했어요. 그리고 당신은 몇 모금 남지 않은 커피잔을 쥔 내 손등을 쓰다듬으며 꿈은 반대라고 하잖아요,라고 말했어요. 그 말을 할 때 당신 눈동자는 커피보다 진해 보였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처럼 깊어 보였어요. 걱정 말아요, 꿈은 반대라니까,라고 다시 말하면서 당신이 환한 미소를 지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조바심이 일어나는 걸 느꼈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래요, 꿈은 반대라니까,하며 조바심을 살며시 밀어 넣었어요. 짙은 안개에 휩싸여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어서 우두커니 서 있었어요. 그러다 불현듯 햇살이 내리쬐고 안개가 걷히고 사방이 환해졌지만 당신은 내 곁에 없었어요. 조금 전까지 .. 더보기
이별꽃스콜레_한돌쌤 이별이라는 아픔 안에 숨어 있는 사랑, 연민 그리고 죽음이라는 슬픔 속에 감춰진 평화로움, 고요 등 삶의 깊은 지혜를 이야기 하는 마당이며, 모든 이들이 이별, 이혼, 죽음 이런 것들이 결코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만 아니라 다르게, 새롭게, 깊게 봄으로써 고통에서 피어나는 한송이 꽃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 라고 합니다. 지난번 8월 다섯 번째 는 9월 2일, 순천판에서 한돌 선생님을 이야기 손님으로 모시고 함께했습니다. 이제 이번주 금요일, 9월 30일 저녁 굿하는 사람, 박필수 선생님을 모시고 여섯 번째 이별꽃을 피웁니다.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는 다섯 번째 마당을 한돌 선생님 말씀을 살짝 곁들여서 다시 보고 여섯 번째 마당을 준비합니다. 한돌 선생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하시는 게 너.. 더보기
<살맛 나네요> 농부 박승호, 김은종 7월 22일, 여름날의 태양이 제 할 일을 다하고 서쪽 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여름날의 태양은 서서히 사위어 가며 서쪽 하늘을 불태울 준비를 하고, 사람들은 뜨거운 여름날 하루를 살아낸 뒤 자기 안에 담긴 삶의 조각을 나누기 위해 둘러 앉습니다. 순천판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모을 때 여름날의 매미도 따라서 노래합니다. 오랜만에 순천판이 아이들과 어른들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살맛 나는 이야기를 하고, 듣습니다. 는 보리밥이 계당마을 이장인 박승호 님과 낙안 금산마을 김은종 님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고, 바람빛이 편집하여 만든 책입니다. 두 분은 몇날 며칠 동안 근 20여 시간에 걸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두 분.. 더보기
둠벙 그렇게 대성부부와 헤어진 뒤 두어 차례 전화 통화를 했다. 서로 안부를 물었고, 대성의 큰딸이 취직을 했다든지 준호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됐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나눴고, 혜선이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얼렁 털고 일어나야제, 하는 대성의 말을 준호는 들었다. 준호의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2학기가 시작될 때 준호부부는 아이를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준호의 아내가 운전을 했고, 준호는 조수석에서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준호는 문자메세지 알림에 스마트폰을 보다가 좌석 등받이를 똑바로 세웠다. 내일 오후에 대전에 가야겄는디. 왜, 혜선씨 무슨 일 있대? 어... 혜선씨가 갔다네. 암투병한 지 한참 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하며 준호의 아내는 말끝을 흐렸다. 밤이 늦은 시각이라 국도는 한적했.. 더보기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2022년 새해가 됐다. 아침에 달리기를 해서 조금 이른 시각에 아침을 겸해 점심을 먹는다. 브리카 안에서 커피가 끓어 넘칠 듯 칙칙 소리를 내고 향을 내뿜는다. 맑은 햇빛이 유리창으로 비치고, 바람이 있는 듯 없는 듯 담 너머 대나무 잎이 살짝 흔들린다. 동네 앞바다를 둘러싼 고흥반도 산꼭대기까지 선명해서 바다는 오늘따라 유독 호수처럼 보인다. 창밖은 차갑지만 청명하고, 식탁 위는 따스하다. 새해 첫날 동네를 한 바퀴 달렸다. 우리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면 6km가 조금 못 된다. 느지막이 나와서 그런지 어제 일기예보와 달리 그다지 춥지 않다. 뉴스프로그램의 기상 유튜브 클립에서 연말연시 최강 한파라고 해서 달리기를 할까, 말까 했었는데... 어제, 2021년 마지막 날에 우리집에서 와온바다 노을을 .. 더보기
낮잠 오늘은 수영장에 가지 말고 머리를 깎을까요? 아내가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며 말했다. 고관절을 다쳐 퇴원한 지 1년이 넘어도 수영장 물에 들어가고 나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다니려고 노력했으나 오늘은 몸이 무거워서 수영을 쉬자고 조영감이 먼저 말할 참이었다. 조영감은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그러자고 했다. 아내는 이발도구를 챙겼고, 조영감은 의자에 앉아 가래가 끓어오르는 숨을 골랐다. 언제부턴가 미용실에 가지 않고 아내가 머리카락을 잘랐다. 자른다기보다는 전기바리캉으로 밀었다. 가위질로 헤어스타일을 만드는 게 아니어서 아내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몇 가닥 남지 않았고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져서 그게 여러모로 편했고, 헤어스타일이란 말도 낯선 말이 되었다. 말끔하면 그.. 더보기
집으로 가는 길 운전할 땐 운전에만 집중하지? 몸이 있는 데에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걸 몰라서 그래? 옆자리에 꼿꼿하게 앉아 앞을 바라보며 아내가 말했다. 감정이 담기지 않는 말이 이런 건가 싶었다. 무미건조한 아내의 말에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곧이어 또 나오는 과속방지턱을 이번에는 속도를 줄이고 차에 집중해서 부드럽게 넘었다. K는 운전을 한지 오래됐다. 그렇다고 자기 운전 실력을 과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넋을 놓고 무심하게 늘 하는 숨쉬기처럼 습관적으로 차를 몰았다. 아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골똘히 생각했지만 방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앞만 보고 있었고, 운전대만 잡고 있었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몸이 있는 데에 생각이든 마음이든 함께하게 하는 건.. 더보기